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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건 네가 우리 유 씨 집안에 빚진 거야!

  • 2층 안방을 한바퀴 뒤진 유가희는 유수영의 명품시계 몇개를 옷장 안에 있던 파일 봉투에 쑤셔넣고 떠나려다 구석에 있는 파란색의 작은 박스를 발견했다.
  • 그녀가 차 오빠에게 사주려는 생일선물은 가격이 상당해서 손에 넣은 시계 몇개를 합쳐도 부족했다. 박스가 정교한 걸 보니 안에 어떤 보물이 숨어있을지 몰랐다.
  • 애초에 금성 제일 부잣집 아가씨였던 고아연은 입고 쓰는 것 전부 제일 좋은 것이니 상자 안의 물건도 무조건 가격이 적지 않게 나갈 것이다.
  •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 유가희였어도 박스를 열고 오래된 시계를 본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파텍 필립 TrossiLeggenda,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수수하기 그지없지만 내부의 반짝이는 빛들은 전부 속에 숨겨진 사파이어가 굴절한 빛이었다. 공식 판매 가격은 가늠이 불가하지만 암시장에 내놓으면 수십억은 문제 없을 것이다.
  • “고아연 너, 이렇게 좋은 물건을 숨긴 채 팔지 않으면서 우리 유 씨 집안의 돈으로 자기 집 구멍을 메꾸려 하고! 쯧쯧쯧, 이 동생이 속이 시커멓다고 탓하지 마, 이건 다 네가 우리 유 씨 집안에 빚진 거야!”
  • 유가희는 더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상자와 방금 전 파일 봉투를 함께 들고 안방을 나섰다.
  • 마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강아란은 급히 계단을 내려오는 유가희와 마주쳤다.
  • “날이 어두워지는데 어디 가는 거야?”
  • 강아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유가희는 어색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품에 안고 있던 물건을 숨기고 웃으며 말했다.
  • “엄마, 새언니가 얼굴 드러내기 불편하잖아요. 오빠가 나더러 오늘밤 자선 파티에 함께 가달라고 했는데 그만 늦잠을 자서 빨리 가봐야 해요!”
  • “오.”
  • 강아란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며칠 있으면 차 오빠의 생일이기에 오늘밤 무조건 물건을 받아야 했던 유가희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액셀을 끝까지 밟고 그대로 암시장으로 향했다.
  • 리츠칼튼, 펜트하우스 로얄 스위트룸.
  • 통 유리창 앞에 앉아 신문을 보는 부시양은 심플한 홈웨어를 입고 있었지만 그가 입으니 매우 고급스러워 보였다.
  • “시양 씨, 귀국하면서 왜 미리 얘기도 안했어요? 공항에 마중 갔어야 하는데 이렇게 소리도 없이 돌아오니까 정말 어쩔 바를 모르겠어요.”
  • 박연은 몸에 맞게 디자인된 드레스에 한정판 하이힐을 신고 손에는 와인 한 병을 든 채 문을 열고 들어섰다.
  • “다른 준비는 못해서 30년산 이 아이를 오픈해서 환영할 수밖에 없겠네요.”
  • 그녀는 손바닥만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계속 부시양을 쳐다봤다.
  • 웨이터가 오프너를 건네고 또 와인 잔 두개를 올려놓았다.
  • 박연은 빠르게 술을 따라 부시양 앞에 건네고 잔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
  • “선배, 한잔 따를게요.”
  • 술잔을 받은 부시양은 예의상 흔든 뒤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박연을 향해 웃었다.
  • “끊었어.”
  • 박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 “무슨 농담이에요, 선배 알콜 중독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건 우리 와이너리에서 가장 비씬 와인이에요. 금성의 수많은 고관들도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는 거라고요. 시양 씨, 당신을 위해 오픈했는데 이렇게 체면 세워주지 않을 거예요?”
  • “진짜 끊었어.”
  • 마침 역광이었던 부시양이 고개를 돌리자 회색빛의 그림자가 그의 차가운 얼굴을 삼켰다.
  • “게다가 내가 금방 돌아온 것도 아니고 벌써 몇달이 지났는데 환영식이 좀 늦은 거 아냐.”
  • 박연이 놀라고 있던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 부시양은 그녀를 향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올리더니 발코니를 가리킨 채 걸어가며 말했다.
  • “전화 좀 받을 테니 넌 편한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