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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부부 사이에 나더러 배상하는 건 아니죠?

  • 고아연에게 개 취급을 당한 남선미는 평소 같으면 진작 펄쩍 뛰고도 남았을 텐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평소와 달리 고아연을 향해 웃기만 할 뿐이다.
  • 그녀의 눈빛이 이상하다고 느낀 고아연이 고개를 돌리자 눈 앞의 불빛이 커다란 실루엣에 의해 가려졌다.
  • 한 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다른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유수영이 편하게 서있는 것 같지만 고아연은 그의 밤색 눈동자에서 무섭게 일렁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 그가 자선 파티에 참석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는 결국 이 곳에 와서 그를 망신시켰다.
  • 그렇다, 그는 무조건 그녀가 부끄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 유수영이 말을 하기도 전에 남선미가 이미 빠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가 팔을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
  • “수영 씨, 그녀가 나를 개라고 욕했어요. 나보고 초대장도 없는데 개구멍으로 들어왔냐고 했어요. 수영 씨… 당신이 그녀에게 내가 당신 파트너로 당당하게 이 곳에 들어온 거라고 얘기해줘요!”
  • 고아연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
  • 정실과 내연녀 사이, 그가 내연녀를 선택한다면 고아연은 평생 내연녀 앞에서 머리를 쳐들 수 없을 것이다!
  • 외모가 딸리지 않고 집안이 범상치 않은 유수영은 어디를 가든 이슈 메이커였다. 얼마 되지 않는 사이 그들은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 주변의 재벌들이 속삭이며 고아연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 유수영이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본 남선미는 조급해졌다.
  • “수영 씨, 잊지 마요…”
  • “선미에게 사과해.”
  • 남선미가 한마디도 하기 전에 유수영이 차가운 목소리가 고아연의 머리 꼭대기에서 들려왔다.
  • 고아연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이를 꽉 깨문 채 억지로 눈물을 참고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
  • “뭐라고 하셨어요, 유 회장님? 제대로 못 들었어요.”
  • “선미에게 사과하라고!”
  •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고 유수영의 두 눈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블랙 슈트에 흰 셔츠, 그리고 고아연이 그에게 매준 회색 넥타이는 그의 주변 공기를 더욱 쓸쓸하고 차갑게 만들었다.
  • “안 그러면 후과는 너도 잘 알 거야.”
  • 고아연은 당연히 후과를 알고 있었다. 금성에서 유수영 그가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약간의 인맥을 통해 고 씨 집안을 영원히 재기할 수 없게 할 수도 있었다!
  • “고아연, 벙어리가 된 거야? 수영 씨 말 못 들었어?”
  • 남선미는 오만하게 설치며 유수영의 팔을 더 꽉 껴안았다.
  • 유수영이 손에 든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고 이내 눈빛이 어두워지자 모든 것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 “미안해요, 남선미 씨, 내가 잘못했어요.”
  • 고아연은 입 꼬리를 끌어 올린 채 돌아서서 언론의 카메라들을 마주보며 말했다.
  • “당신은 대스타이니 그 어느 누구에게 빌붙어도 되고, 그 누구의 파트너가 되어도 되죠. 당신이 매일 내 남편의 교외 별장에서 지내며 내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나는 당신이 틀렸다는 말 한마디 할 권리조차 없네요.”
  • “뭐? 남선미가 스폰 받는다고?”
  • “남선미가 임신 했어?”
  • “…”
  • 고아연이 말을 마치자 주최측이 초대한 언론사는 순간 발칵 뒤집혔다.
  • 남선미는 상대가 자신을 같이 끌어내릴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연예인이 재벌과 스캔들이 나면 사교계의 꽃이 될 수 있지만 일단 “스폰”, “임신” 이라는 부정적인 타이틀이 붙으면 그녀가 안방 마님을 밀어내지 않는 이상 연예인 미래도 불투명해지고 심지어 미래의 결혼, 인생이 전부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이다!
  • 유수영이 눈빛이 어두워지며 앞으로 한걸음 다가가자 그의 몸에서 나는 옅은 담배 냄새가 순간 그녀를 덮쳤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고아연, 네가 무슨 짓 했는지 알아?”
  • “알죠, 유 회장님이 나에게 사과하라고 해서 이미 사과했잖아요.”
  • 고아연은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 갑자기 그의 면전에서 손에 들고 있던 고개지의 진필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 “유 회장님께도 사과드릴게요. 방금 손이 미끌어져서 회장님이 아끼는 걸 찢어버렸네요. 부부 사이에 나에게 배상하라고 하지는 않겠죠? 아시다시피 이혼을 하지 않는 이상 난 배상도 못해요.”
  • 유수영은 단번에 그녀를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할 듯 손에 힘을 주어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 그가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을 본 적 없는 고아연은 순간 심장이 목젖까지 차올라 그의 카리스마에 눌려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 매스컴이 점점 많아지자 너무 두려웠던 남선미는 유수영 품으로 파고들기만 했다.
  • 유수영은 갑자기 손을 풀고 돌아서서 한 손으로 남선미의 어깨를 감싸고 한 손으로 카메라를 가린 뒤 곧장 호텔 밖으로 걸어갔다.
  •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던 고아연은 어쩐 일인지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 앞이 캄캄해져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 한참이 지났는데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를 감쌌다. 엄지 손가락의 거친 흉터가 뚫린 의상 틈으로 피부에 닿는 순간 익숙한 느낌은 그녀를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다.
  • 고아연이 고개를 돌리자 부시양은 이미 손을 거둔 뒤 빙그레 웃었다.
  • “아연아, 오랜만이야.”
  • 어쩐 일인지 조명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부시양은 분명 웃고 있는데도 어두운 그림자 밑에서 차가워 보였으며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 검은색 눈동자의 시선은 고아연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고 언제라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이 만들었다.
  • 8년이다. 8년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다. 그녀로 하여금 이번 생에는 더이상 그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고 젊고 풋풋한 사랑은 이미 지나간 옛일이 되어 다시는 기억나지 않을 거라고 느껴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었다.
  • 말문을 떼려던 고아연은 긴 손톱이 손바닥에 깊게 박힌 채 입 꼬리를 끌어올리고 되물었다.
  •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우리가 만난 적 있었던지 기억이 나지 않네요.”
  • 찰나의 순간 멈칫하던 부시양의 검은 눈동자에 다시 웃음으로 물들었다.
  • “두달 동안 고아연 씨는 DFO에 와서 나를 스무 번도 더 넘게 찾았으면서 지금은 나와 선을 그으려는 건 무슨 뜻이에요?”
  • 그 말을 들은 고아연은 표정이 더욱 일그러져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 그가 바로 DFO의 부 회장이었다.
  • 그가 DFO의 부 회장님이라니?!
  • 그러니까, 두달 동안 그녀가 투자를 따내기 위해 DFO에서 스무 번도 넘게 거절당한 것이 전부 그가 주도한 거라고? 지금 그녀를 갖고 노는 걸까? 8년 전과 똑같이!
  • “저 여자야, 저 여자가 다른 사람 초대장을 들고 숨어 들어왔어… 당신들 자선 파티 너무 허술한 거 아냐, 어떻게 아무 사람이나 다 들어와!”
  • 고아연이 부시양과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 이운서가 어느새 경비원을 불러와서 고아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 “저 여자 쫓아내!”
  •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귀한 손님들이었기에 경비원들은 이운서의 신분을 알지만 함부로 미움을 살 수 없어 앞으로 한걸음 다가가 고아연에게 말했다.
  • “고아연 씨, 저희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고아연 씨 초대장은 곽 도련님 것이기에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피할 수 없으니 이렇게 하시죠…”
  • “사람들 앞에서 곽 도련님에게 전화 해서 이 초대장이 아가씨가 훔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