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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결혼 당일 밤, 그는 그녀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 혼전 합의서가 얼마나 값진 건데, 고아연은 그가 동의할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그가 동의한다 해도 그녀는 지금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그와 이혼해서 고 씨 집안에 먹칠하지 않을 것이다.
  • 셔츠를 정리한 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유수영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 “내일 밤 자선 파티에 난 파트너가 있으니 너는 안 가도 돼.”
  • “…”
  • 몇 마디 쏘아붙이려던 고아연은 갑자기 말이 너무 무기력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가 350억이라는 구멍에 내어 더이상 고위 공직자도 아닌데다 금성 전체가 그녀의 고 씨 집안을 입방아에 올리고 있다. 내일 밤 자선 파티에는 각계의 동료들이 참석할 테니 그는 아마 그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창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하지만 내일 밤 자선 파티에는 국회의 사람도 온다 했고 어쩌면 그녀 아버지 사건과 관련 있을지도 몰랐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 체면을 중히 여기는 고아연은 이럴 때 유수영에게 고개 숙여 부탁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절친 조서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 한시간 뒤 고아연의 차가 챠밍 나이트의 입구에 멈춰섰고 차가 멈추기 무섭게 차 문을 열고 내린 그녀는 키를 경비원에게 던져주고 빠르게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 이미 술을 주문한 핫핫 크롭티 차림의 조서희는 불빛 속에서 유난히 매혹적이었다.
  • “아연아, 빨리 와서 앉아! 네가 어쩌다 약속 잡았으니 오늘 밤은 우리 취할 때까지 마시는 거야!”
  • 그녀는 말하며 롱 아일랜드 아이스티 한 잔을 고아연 앞에 밀어놓았다.
  • 고아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 맞은 켠에 앉았다.
  • 조서희가 이어 말했다.
  • “어? 이런 술 기억나? 첫날밤 술! 그때 네가 유수영 씨와 결혼할 때 내가 한 잔 만들어줬잖아! 어때? 그런 느낌 좋지 않아?!”
  • 고아연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은 채 무언가가 목에 걸린 듯 입을 열기 어려웠다.
  • 심지어 결혼 첫날 밤 유수영이 자신에게 손조차 대지 않았다는 말을 어떻게 서희에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 물론 유수영은 신혼 첫날밤만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혼 후 6년동안 단 한번도 그녀를 건드린 적 없었다.
  • “서희야, 나 술 안 마실 거니까 너도 그만 마셔, 더 마시면 취할 거야.”
  • 고아연은 곽승윤이 곧 약혼을 하지만 약혼녀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서희가 속상해서 요즘 알콜로 자신을 마비시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아연아, 술이란 건 참 좋은 거야. 마시면 기분 나쁜 일들은 다 잊을 수 있거든.”
  • 조서희가 입 꼬리를 끌어당기자 억지로 짓고있던 웃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 “안타깝게도 나는 주량이 좋아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아.”
  • “…”
  • 그녀를 위로하려던 고아연은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자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서희보다도 더 비참한 것 같았다. 적어도 서희는 부모님이 건재하고 먹고 입을 걱정은 없지만 그녀는…
  • 차가운 음료수를 한 입에 털어 넣은 조서희는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이내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고아연 앞에 내밀었다.
  • “자! 네가 원하던 자선 파티 초대장.”
  • 고아연은 약간 놀라며 물었다 .
  • “이거 어디서 구했어?”
  • 내일 밤 자선 파티는 입장 요구가 매우 높았기에 고아연은 조서희에게 문자를 보낼 때까지만 해도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조서희는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가 그녀를 데리고 곽 씨 집안으로 시집 갔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재벌가에 들어간 것 같지만 실은 기껏해야 남에게 얹혀사는 정도였다.
  • 고아연은 원래 곽 씨 집안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파티장 안까지는 못 들어가도 밖을 서성일 생각이었는데 조서희가 그녀에게 초대장을 구해다 줄 줄 누가 알았겠는가.
  • “곽승윤에게서 훔쳐온 거야.”
  • 조서희는 냉소를 지으며 매혹적인 빨간 입술을 움직였다.
  • “그는 그토록 예쁜 부잣집 약혼녀가 있으니 앞으로 두 집안이 틀림없이 강한 연합이 될 텐데 이런 자선 파티에 참가해서 뭐 하겠어?! 유명인사들 만나게? 곽승윤은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