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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잇 하면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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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콩

Last update: 2024-01-11

제1화 유 사모님, 나 임신했어요

  • DFO 투자은행 건물에서 나오던 고아연은 약간 머리가 어지러웠고 손에 안긴 한 뭉치의 기획안이 마치 천근이나 되는 돌덩이처럼 그녀를 숨 쉴 수 없게 누르는 것 같았다.
  • 눈 깜짝할 새에 마세라티 GranCabrio 한 대가 그녀의 무릎을 스칠 정도로 빠르게 마주 달려왔다.
  • 눈살을 찌푸린 고아연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차 안에 있는 사람은 그녀도 아는 사람이었는데 신예 유명모델이자 최근 유수영과 스캔들로 떠들썩한 남선미였다.
  • 남선미는 차 문을 열고 내리더니 고아연을 경박하게 쳐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 “유 사모님, 나 임신했어요. 수영 씨 아이예요.”
  • 고아연은 상대를 힐끗 쳐다보았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빨간 입술을 한 짙은 화장의 여자는 D 브랜드의 신상 A라인 치마를 입고 있어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냈고 위에는 밝은 자주색의 밍크코트를 걸쳤는데 유난히 매혹적이었다.
  • 유수영의 요즘 취향은 정말 종잡을 수 없네!
  • 고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돌아가려 했다. 마음이 급해진 남선미는 팔을 벌려 그녀를 가로 막았다.
  • “유 사모님, 남자아이일 것 같아요 아니면 여자아이일 것 같아요?”
  • “이름을 뭐로 지으면 될 것 같아요? 유 뭐가 좋을까요?”
  • “수영 씨가 매일 밤 나와 같이 있느라 홀로 독수공방 하는 기분이 말이 아니죠?”
  • “유 사모님 차 안 갖고 오셨죠? 지금 어디 가세요, 제가 데려다 드릴까요? 제 새 차 좀 타보세요. 수영 씨가 사준 건데 5억5천짜리에요.”
  • 남선미는 말하며 긴 머리를 휘날려 눈부신 진주 귀걸이를 드러냈다.
  • 고아연은 그것이 Akoya 진주이며 명품 제작 디자인에 14억 짜리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유수영의 코트 주머니에서 본 적 있는 영수증이였다. 유수영은 밖에 둔 여자들에게는 참 대범하면서 그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온갖 방법을 다 해서 철저하게 짓밟으려는 것뿐이었다!
  • “우리 수영 씨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내가 원하는 건 뭐든 사주거든요. 유 사모님, 엊그제 생일이라고 들었는데 수영 씨가 무슨 선물 사줬어요?”
  • 남선미는 의기양양하게 고아연의 목에 걸려있는 진주 목걸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 “진주 목걸이 맞죠? 그건 내가 한달 전에 골라서 지겹게 걸고 다니다가 질려서 당신에게 준 거예요.”
  • 고아연은 몸을 곧게 펴고 말했다.
  • “말 다 했어요?”
  • “고아연 씨, 지금 이렇게 유 사모님 자리를 억지로 지키고 있는 거 재미있어요? 내가 알기로 수영 씨는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애초에 당신과 결혼한 것도 고 씨 집안 세력 때문인데 지금은 고 고위공직자가 그런 일을 벌였으니 고 씨 집안은 수영 씨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 남선미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 고아연을 보며 체면 불고하고 소리질렀다.
  • “눈치껏 지금 수영 씨와 이혼해서 나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서로 못볼 꼴 보면서 얼굴 붉히는 일은 없을 거예요!”
  • 고아연은 눈을 찡그리며 입 꼬리를 살짝 올려 얼굴에 냉소를 지었다.
  • “남선미 씨, 우리 남편이 당신을 그렇게 사랑한다면서요, 그가 이혼하기를 바라면 직접 그를 찾아가지 저를 찾아와서는 뭐해요?”
  • “나, 난…!”
  • 남선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수영에게 반년 넘게 매달리며 생떼를 부렸지만 그는 무서울 정도로 잠잠했다. 겉으로는 그녀를 예뻐해도 속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데 그녀라고 무슨 방법이 있을까?
  • 그녀를 상대하기 귀찮은 고아연은 계속 앞으로 두어걸음 걸어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 “맞다, 아마 그쪽은 모를 거예요. 나와 남편이 결혼할 때 혼전 합의서를 작성했는데 나를 늙을 때까지 사랑할 거라고 한 그는 만약 중간에 이혼을 한다면 그는 고 씨와 유 씨 두 집안 재산 한 푼도 받지 않고 알몸으로 나간다고 했어요!”
  • 남선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 고아연은 또 그녀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 “모든 재산은 내 것이 된다는 얘기예요. 그가 얼마전에 당신에게 선물한 마세라티와 진주 귀걸이까지 포함해서요!”
  • 말을 마친 그녀는 돌아서서 가버렸다.
  • 등 뒤에서는 여전히 남선미의 분노 섞인 욕설이 들려왔다.
  • “고아연! 네가 뭔데?! 수영 씨가 당신과 결혼한 건 그저 박연 씨에게 화난 것 때문이잖아?!”
  • 고아연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품에 안은 종이가 약간 구겨졌고 코너를 돌기 무섭게 핸드폰이 울렸다.
  • “너 어디야?”
  • 전화기 너머에서 유수영의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가 마치 어둠 속의 희미한 빛처럼 순식간에 고아연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 “…”
  • “돌아와. 볼 일 있어.”
  • 고아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탁” 하고 전화를 끊었다.
  • 8년, 그들이 함께 한지 어느새 8년이 되었고 결혼 한지도 6년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시집을 가서 원하던 대로 그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들의 관계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고아연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 6년 동안의 결혼생활 중 유수영의 곁에는 온갖 여자들이 있었고 다들 관계가 친밀했지만 유독 정식 아내인 그녀만 남남처럼 대했다.
  • 그도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6년 전 그는 그녀를 많이 사랑했고 큰 불길 속에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그때 남은 흉터가 지금까지도 그의 팔뚝에 남아있다.
  • 부부인 그들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정말 남선미가 말한 것처럼 그는 박연을 화나게 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