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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아연아, 부탁을 하려면 태도부터 고쳐야지

  • "아연아, 지금 내게 부탁하는 거야?"
  • 부시양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어 몸을 일으킨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부탁을 하려면 태도부터 고쳐야지."
  • 고아연의 낯 빛이 창백해졌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코와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 8년 전, 그가 모질게 그녀를 버렸을 때부터 그녀는 그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은 단지 그녀를 갖고 놀기 위한 것이었다.
  • 서로 사랑했다고 해봤자 고작 2개월이었다. 그 2개월이 지나고 그녀는 성한 곳 하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그녀와 반대로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 8년이란 시간 동안 그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그리고 그 8년이란 시간 동안 그녀는 짧디짧은 2개월이란 시간이 남겨준 상처 속에 살아야 했다.
  • 그런 사람이 그녀를 도와줄 리가 만무했다.
  • "고아연, 아직도 너희 고 씨 집안이 예전과 같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직도 네가 고 씨 집안의 고귀한 아가씨라서 모든 사람들이 네게 허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부시양의 데면데면한 태도를 확인한 이운서는 더욱더 막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 "부 회장님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도 부 회장님께서는 그걸 원하시지 않는 것 같은데!"
  • "장난해? DFO의 시장 가치는 금성의 절반과 맞먹을 정도야. 부 회장님이 어떤 분이신데, 고아연 같은 몰락한 집안의 딸이 어떻게 부시양 씨와 친하며 또 어떻게 부시양 씨가 고아연을 이 파티에 초대 했겠어?!"
  • "이운서 말이 맞아! 고 씨 집안에서 거짓말쟁이가 났군!"
  • 주변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고 씨 집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고 씨 집안의 명성이었던 고아연은 이런 상황을 한시도 참을 수가 없었다.
  • 불현듯 고개를 쳐든 그녀가 입술을 말아 물더니 부시양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고아연이 갑자기 발꿈치를 들며 한 손으로 상대방의 단단한 팔을 잡더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에 속삭였다.
  • "시양 씨, 이렇게 부탁 할게요, 네?"
  • 비록 부탁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 가득 번진 미소와 두 사람의 행동은 야릇하기 그지없었다. 무릇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그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 "정말 아는 사이였나 보네!"
  • "종래로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던 부 회장님이 밀쳐내지 않은 것을 보면 보통 사이가 아닌가 봐!"
  • 눈 깜짝할 사이에 고아연은 전세를 역전해 버렸다.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이제는 아연의 말을 믿고 있었다.
  • 곁에 서있던 이운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제서야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이 아님을 눈치챈 그는 2층으로 도망가 몸을 피하려 했다.
  • 고아연이 부시양의 몸에서 손을 떼려고 한 순간, 그가 갑자기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그러안았다. 손쉽게 그녀를 자신의 곁에 끌어당긴 부시양이 도망가려는 이운서의 앞을 막아섰다.
  • "아저씨, 인사도 안 하시고 가려고요?"
  • 이운서는 난처한 기색이었다. 육십이 다 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뱉았으니 그야말로 제 뺨을 때린 격이었다.
  • "방금 전 뭐라고 하셨죠? 아연이를 오해했다면 직접 아연이에게 사과를 할 거라 하지 않으셨나요? 이리 급히 도망가시는 걸 보니 사과를 하지 않을 생각이신가요?"
  • 손에 들고 있는 와인 잔을 가볍게 흔들고 고개를 숙여 와인을 한 모금 머금은 부시양의 얼굴이 약간 상기돼 있었다. 술에 취한 건지 품에 안긴 사람에게 취한 건지 알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 "어릴 때부터 아연이가 괴롭힘을 당하면 제가 도와주고는 했죠. 비록 지금 고 씨 집안에 문제가 생겼어도 전 아연이를 도와야겠어요."
  • 부시양은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그의 곁에 딱 붙어 서있는 고아연은 그에게서 풍기는 시원한 바디워시의 향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보호해 줄수록 그녀는 점점 더 우스워졌다.
  • 어려서부터?!
  • 우린 죽마고우도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