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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나는 희생양 안 해

  • 진수영은 진서연의 경고를 무시한 채 데이터 보고서를 찢어버리고 화물 진열대 쪽으로 다가가더니 안에 있던 샘플들을 죄다 엎었다.
  •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려면 며칠은 걸리겠어. 걱정하지 마, 틈틈이 찾아와서 너 일하는 거 지켜볼게. 네가 쉴 수 있는 시간 단 한순간도 내주지 않을 거야!”
  • 진수영이 팔짱을 끼더니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 진서연은 좁고 긴 눈썹을 치켜뜨더니 몸을 돌려 회사의 보안팀에게 전화를 걸었다.
  • “부를 필요 없어. 올 때 특별히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해놨거든. 보안팀 불러도 소용없어. 안 올 거야.”
  • “믿는 구석이 있어서 두려울 게 없다는 거야?”
  • 진서연이 오른쪽 위 코너에 위치한 감시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 “여기에 있는 물건들을 다 무너트렸으니 깨지거나 망가진 건 너 혼자 다 책임져.”
  • “내가 감시 카메라가 있는 줄도 모르고 왔을까 봐? 다 꺼진 거 발견 못했어? 여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누구도 알지 못할 거야. 재운 그룹에 배상하면서 네 전 재산 다 털어내!”
  • 진수영은 다른 화물 진열대들도 무너뜨리면서 말했다.
  • 그때 진서연은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촬영했다. 진수영의 더러운 면상까지 똑똑히 찍은 진서연은 진수영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동영상을 카카오 스토리에 업로드했다.
  • “몰래 나를 찍은 거야?”
  • 진수영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 “네가 그랬잖아, 누구도 모를 거라고.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으니 계속 부셔봐. 다 부수고 나면 나도 경찰을 불러올게. 경찰들도 눈이 있으니가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정도는 보아낼 수 있겠지.”
  • 진서연이 말했다.
  • “천한 계집애, 감히 나랑 맞서서 싸우려고 해? 휴대폰 내놔!”
  • 진수영이 소리쳤다.
  • 진서연은 휴대폰을 진수영에게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화면까지 잠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진수영은 갑자기 진서연에게 달려들더니 미친개처럼 흉악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 진서연은 몸을 옆으로 기울여 진수영을 피하고 그녀의 종아리에 발을 걸었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진수영은 처참한 자세로 바닥으로 넘어져 얼굴까지 먼지가 묻었다.
  • 그와 동시에 굳게 닫혀있던 창고의 문이 열렸다. 팀장님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얼른 다가와 진수영을 부축했다.
  • “진수영 씨, 왜 바닥에 누워계세요? 무슨 일이에요?”
  • “진수영 씨가 물품들을 부시다가 조심하지 않아 걸려서 넘어진 거예요. 팀장님, 훼손된 샘플들은 진수영 씨가 배상하게 해야죠?”
  • 진서연이 말했다.
  • 팀장님이 고개를 들더니 창고 바닥의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샘플들을 보았다. 유리병에 담겨있던 여러 개의 샘플들이 모두 깨져있었다. 팀장님의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 “진수영 씨...”
  • “다 진서연이 그런 겁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저 여자 찾아가세요.”
  • 진수영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 하지만 진서연은 휴대폰을 흔들어 보이더니 팀장님에게 말했다.
  • “동영상 다 찍었어요. 신고하세요. 저는 희생양 같은 거 할 생각 없어요.”
  • “하지만...”
  • 팀장님은 진서연을 보다가 다시 대표님의 아내가 될 뻔한 진수영을 바라보며 망설였다.
  • 난감한 모습을 한 진수영은 얼른 얼굴을 정리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입을 뗐다.
  • “모 팀장님, 제가 대표님이랑 6년을 같이 했잖아요. 이번에 저를 오해해서 그런 거예요. 제가 해명하고 나면 대표님의 사모님이 될 수 있어요. 제가 이거 다 진서연이 한 거라고 할 테니까 팀장님은 제가 말한 대로만 해주면 돼요. 모든 결과를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 박하석은 여태껏 곁에 단 한 명의 여자도 두지 않았다.
  • 유일하게 박하석과 연관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진수영 밖에 없었다.
  • 인천에서 누가 진수영과 박하석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까? 사실 두 사람이 약혼식을 하기 전부터 모든 사람들은 진수영을 미래의 대표님 아내로 생각하고 있었다.
  • 팀장님은 진수영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그녀가 미래에 자신의 여주인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진수영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진서연이 한 것 같지도 않았다.
  • “서연 씨는 여기 정리해요, 저는 진수영 씨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상처부터 치료할게요.”
  • 고민하던 팀장님은 결국 진수영에게 미움을 사지 않기로 결정했다.
  • 하지만 팀장님의 말을 들은 진서연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 “그건 제 일이 아니라서요, 정리할 수 없습니다.”
  • “안 할 거면 회사에서 당장 나가요!”
  • 팀장님이 진수영을 부축해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 진서연은 기가 막혔다.
  • 그녀도 더 이상 이 더러운 곳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 박하석이 사직서를 보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오후였다. 그의 하얗고 예쁜 손이 아무렇지 않게 사직서를 구기더니 말했다.
  • “사람은?”
  • “점심에 떠났습니다. 창고가 어지러운 것이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 전찬혁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 “책임자 불러와.”
  • 박하석의 목소리에 선명한 분노가 억눌러져 있었다.
  • 팀장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두려움에 떨며 물었다.
  • “대표님께서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창고 일 설명해 보세요.”
  • 남자가 얇은 입술을 열고 물었다. 주위의 분위기는 강대하여 사람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
  • 팀장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확 바뀌더니 말했다.
  • “죄송합니다, 대표님. 저는 진수영 씨가 올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병원에 모셔다드렸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 진서연이 왜 사직서를 냈는지 물어보려던 박하석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
  • “진수영이 회사에 왔었다고요?”
  • 팀장은 박하석이 진수영이 다쳤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난 줄 알고 살기 위해 다급하게 설명했다.
  • “네, 진수영 씨께서 대표님을 찾아오셨는데 그때 대표님이 안 계셔서 진수영 씨가 혼자 회사에서 돌아다니다가 새로 온 직원이 모르고 대드는 바람에 다치게 된 겁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그 직원을 이미 잘랐으니 다시는 회사에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 팀장이 의분에 차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현명함과 결단력 있는 행동에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히 자신이 눈치가 있어 진수영에게 미움을 사지 않았지, 아니면 대표님에게 산 채로 가죽을 벗겨질 수도 있었다!
  • “이 회사가 언제 당신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된 거죠!”
  • 박하석이 테이블을 치며 소리쳤다.
  • 팀장은 갑작스럽게 변한 박하석을 보며 다리에 힘을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는 의아하고 망연하게 말했다.
  • “대, 대표님, 저는 신인이 진수영 씨한테 대들어서...”
  • “당장 사람 찾아오세요, 아니면 당신도 더 이상 출근할 필요 없습니다.”
  • 박하석이 차갑게 말했다.
  • 팀장은 울면서 대표님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박하석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 없었기에 진서연의 주소를 찾아 직접 집으로 찾아가 사과를 했다.
  • 하지만 진서연의 태도는 단호했다.
  • “저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이만 가보세요.”
  • “나 서연 씨가 억울한 거 다 알아요. 하지만 진수영 신분이 워낙 고귀하잖아요! 내가 그 사람한테 감히 미움을 살 수 없어서 서연 씨를 고생시켰어요. 내가 서연 씨 주려고 뭐 많이 사 왔으니까 이걸로 사과의 마음을 대신할게요. 내일 다시 회사로 와서 출근해요, 네?”
  • 팀장이 굽신거리며 애걸했다.
  • 진서연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그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팀장님이 저한테 가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또 와서 돌아가달라고 이렇게 부탁하는 거 재미있어요?”
  • “미안해요.”
  • 팀장이 연신 진서연에게 사과를 전했다.
  • “제 마음 바뀌지 않아요, 돌아가세요.”
  • 진서연이 말했다.
  • 팀장은 진서연이 문을 닫으려는 모습을 보고 놀라 문을 잡았다. 진서연은 그 모습을 보곤 눈썹을 치켜떴다. 그녀는 온몸으로 불만을 내뿜고 있었다. 팀장은 그녀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 “서연 씨, 다 내 잘못이에요. 제발 회사 떠나지 마요. 서연 씨 떠나면 나도 잘린단 말이에요. 위로 모셔야 할 어른이 있고 아래로는 키워야 할 아이들도 있고 집세도 내야 해요. 제발 살려줘요, 내가 이렇게 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