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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능력 있으면 목숨으로 바꿔

  • 진서연은 의혹스러웠다. 자신에게 언제 이렇게 큰 힘이 생긴 건지?
  • “왜 제가 떠나면 팀장님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건데요?”
  • 진서연이 물었다.
  • “대표님께서 제가 서연 씨를 함부로 잘랐다는 걸 알고 화가 나셨어요. 그리고 서연 씨가 안 돌아오면 저를 자르겠다고 했어요. 서연 씨, 제 잘못 알았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보증할게요. 저랑 같이 돌아가요, 네?”
  • “대표님이 저를 알고 있다고요?”
  • 진서연이 의아하게 물었다.
  •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그건 저도 몰라요.”
  • 진서연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진수영과 한 말이 생각나 물었다.
  • “대표님이 진수영의 약혼자라고 했죠?”
  • “네.”
  •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인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진서연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수영이 그렇게 화를 내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재운 그룹에 남아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알겠어요, 내일 출근할게요. 하지만 제 업무량이...”
  • “따로 세 사람을 보내서 도와주게 할게요!”
  • 진서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팀장은 기뻐서 손가락 세 개를 내세우며 보증했다. 팀장이 떠난 뒤, 진서연은 문을 닫았다.
  • 그때 방에 있던 휴대폰이 줄기차게 울렸다. 열몇 통의 부재중 전화와 영상통화 요청이 있었다. 전화는 모두 기정수가 걸어온 것이었다. 진서연은 짜증이 난 채 통화기록을 삭제하고 천우와의 채팅화면을 열었다.
  • 영상통화를 받자마자 진천우가 불쌍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엄마, 왜 이제 전화받아요? 천우는 엄마 엄청 보고 싶었다고요.”
  • “이제 일처리 다 했어. 내일 엄마가 데리러 갈게.”
  • 진서연이 부드럽게 물었다.
  • 진천우는 새끼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 “할머니는 같이 있어줄 사람도 없어서 너무 불쌍해요. 오늘 천우가 할머니 아들이 쓸모없다고 말해서 할머니가 아들을 때릴 뻔했어요.”
  • “천우야, 그런 말 하면 어떡해. 그건 예의 없는 행동이야. 앞으로 그런 말 하면 안 돼.”
  • 진서연은 진천우의 말을 듣고 놀라 얼른 아이를 꾸짖었다.
  • 진천우는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하지만 천우 말이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할머니한테 들으니까 할머니 아들은 나이를 먹고도 아들 하나 낳지 못하고 있다고 했어요. 의사선생님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사람을 봐도 인사도 잘 안 하고, 제 생각에도 많이 아픈 것 같아요. 할머니 너무 불쌍해요.”
  • 말을 멈췄던 천우가 다시 말했다.
  • “엄마, 우리 양아버지 찾아가서 할머니 아들 병 고쳐주게 해요.”
  • “음... 네 양아버지는 외과 의사야!”
  • 진서연이 말했다.
  • 진천우는 천진하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 “외과의사는 못 고쳐줘요?”
  • “그 사람은 비뇨기과로 가야 해.”
  • 진서연의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 진서연의 말을 들은 진천우는 더욱 의혹스러웠다.
  • “비뇨기과 의사랑 외과 의사는 달라요?”
  • “천우야, 착하지. 그만 물어보고 쉬어. 엄마가 내일 데리러 갈게.”
  • 진서연이 상냥하게 말했다.
  • 진천우는 아쉬워하며 베개를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요, 그럼 엄마 기다리고 있을게요.”
  • 진서연은 웃으며 영상통화를 끊고 샤워를 한 뒤 잠을 청하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걸려온 허미진의 전화를 받자마자 순간 잠기운이 달아났다. 대충 진서연에게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욕을 하며 진수영의 앞길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진수영을 괴롭혔다며 빨리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 내용이었다.
  • 진서연은 전화를 끊었다. 천우의 생부를 찾기 전까지 그녀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 허미진은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발설할 데가 없던 허미진은 옆에 앉아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진수영을 보며 말했다.
  • “네 말이 맞아. 진서연 그거 길들일 수 없는 들짐승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죽게 밖에 내버려 두는 건데!”
  • “엄마, 진서연이 박하석 회사에 들어가고 아직도 6년 전의 일을 조사하고 있어. 만약 뭐라도 조사해 내면 어떡해? 나는 어떻게 해야 돼?”
  • 진수영은 다급하게 허미진의 손을 잡고 느껴본 적 없던 두려움에 떨었다.
  • “박 씨 가문 사모님도 늘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자기에게 손주까지 있다는 걸 알면 무조건 진천우를 집으로 데려갈 거야. 박하석이랑 진서연을 결혼시킬지도 몰라. 그러면 나 어떡해? 인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거야. 그럼 나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 허미진은 가슴 아파하며 진수영을 품에 안고 위로했다.
  •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그렇게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내일 진서연을 찾아갈게. 내가 주워왔으니 그년 목숨도 내 거야. 엄마 그년이 네 앞길 이렇게 막는 거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야.”
  • 엄마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진수영의 얼굴에 목적에 달성했다는 듯한 웃음이 걸렸다.
  • 하루 저녁 쉰 진서연은 이튿날 아침 일찍 회사로 향했다. 팀장은 매우 기뻐하며 원래 화물들을 처리하고 조사하는 직원 몇 명을 불러와 진서연의 일을 도왔다.
  • 진서연은 그나마 수월하고 자유로웠다. 바쁜 아침을 보낸 그녀는 점심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집으로 가려 했지만 휴대폰이 울렸다.
  • “회사 앞에서 기다릴게, 나와.”
  • 허미진의 전화였다. 그녀는 진서연에게 명령했다.
  • 진서연은 휴대폰을 꼭 잡은 채 6년 전 허미진이 자신에게 한 말을 되새기며 차갑게 웃었다.
  • “당신이랑 만날 일 따위는 없어요.”
  • “네가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 그때면 네 동료들이 들어야 할 거 못 들어야 할 거 다 듣게 돼도 내 탓하지 마.”
  • 허미진이 진서연을 협박하며 6년 전의 일을 일부러 암시했다.
  • 한 여자에게 있어서 좋은 평판이 제일 중요했다.
  • 진서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창백해졌다. 예쁜 얼굴에도 부자연스러운 기색이 드러났고 그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 “알겠어요!”
  • 두 사람은 재운 그룹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허미진은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큰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채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 진서연을 본 허미진은 아래위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 “6년 동안 이렇게 밖에 못 살았니? 온몸에 입은 걸 다 합쳐봤자 수영이 양말짝도 하나 못 사겠구나. 도대체 무슨 용기로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거야?”
  • 진서연은 주눅 들지 않고 말했다.
  •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히려 당신들 두 모녀가 몇 년 동안 온갖 나쁜 일을 했으니 언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될지 궁금하네요.”
  • 허미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냈다.
  •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 허미진의 목소리가 레스토랑 전체에 울렸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은 매우 조용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근처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고 그녀에게 눈길을 던졌다. 허미진은 자신의 반응이 지나쳤다는 걸 알고 빠르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 “너랑 쓸데없는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한 가지만 말할게. 네 아이 데리고 떠나. 지금은 너 불쌍한 거 봐줘서 천만 원의 배상금을 줄 수 있어.”
  • 허미진은 거지를 보내려는 듯 은행 카드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던졌다. 그녀는 온몸에 거만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 진서연은 눈길도 주지 않고 비웃었다.
  • “6년 전에는 돈을 위해 제 생사도 따지지 않았잖아요. 제가 이제 와서 당신 말을 들을 거 같아요? 천만 원을 거지한테 준다고 해도 모자라요, 그렇게 능력 있으면 목숨으로 바꾸세요!”
  • 말을 마친 진서연이 은행 카드를 잘라버렸다. 카드가 끊어지는 맑은 소리를 들은 허미진의 얼굴이 분노에 사로잡혀 일그러졌다. 선글라스를 벗은 허미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진서연을 보며 소리쳤다.
  •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 하지만 진서연은 몸을 돌려 레스토랑을 떠났다.
  •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허미진은 진서연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기에 따라가 진서연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 복도 끝에서 전찬혁이 박하석의 발걸음에 맞춰 걸으며 업무를 보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멈춰 선 박하석을 본 그는 박하석의 차가운 눈빛을 따라 호기심 어린 눈을 돌리자마자 진서연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