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께서 제가 서연 씨를 함부로 잘랐다는 걸 알고 화가 나셨어요. 그리고 서연 씨가 안 돌아오면 저를 자르겠다고 했어요. 서연 씨, 제 잘못 알았으니까 앞으로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보증할게요. 저랑 같이 돌아가요, 네?”
“대표님이 저를 알고 있다고요?”
진서연이 의아하게 물었다.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저도 몰라요.”
진서연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갑자기 진수영과 한 말이 생각나 물었다.
“대표님이 진수영의 약혼자라고 했죠?”
“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인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진서연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진수영이 그렇게 화를 내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재운 그룹에 남아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어요, 내일 출근할게요. 하지만 제 업무량이...”
“따로 세 사람을 보내서 도와주게 할게요!”
진서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팀장은 기뻐서 손가락 세 개를 내세우며 보증했다. 팀장이 떠난 뒤, 진서연은 문을 닫았다.
그때 방에 있던 휴대폰이 줄기차게 울렸다. 열몇 통의 부재중 전화와 영상통화 요청이 있었다. 전화는 모두 기정수가 걸어온 것이었다. 진서연은 짜증이 난 채 통화기록을 삭제하고 천우와의 채팅화면을 열었다.
영상통화를 받자마자 진천우가 불쌍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왜 이제 전화받아요? 천우는 엄마 엄청 보고 싶었다고요.”
“이제 일처리 다 했어. 내일 엄마가 데리러 갈게.”
진서연이 부드럽게 물었다.
진천우는 새끼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할머니는 같이 있어줄 사람도 없어서 너무 불쌍해요. 오늘 천우가 할머니 아들이 쓸모없다고 말해서 할머니가 아들을 때릴 뻔했어요.”
“천우야, 그런 말 하면 어떡해. 그건 예의 없는 행동이야. 앞으로 그런 말 하면 안 돼.”
진서연은 진천우의 말을 듣고 놀라 얼른 아이를 꾸짖었다.
진천우는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천우 말이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할머니한테 들으니까 할머니 아들은 나이를 먹고도 아들 하나 낳지 못하고 있다고 했어요. 의사선생님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사람을 봐도 인사도 잘 안 하고, 제 생각에도 많이 아픈 것 같아요. 할머니 너무 불쌍해요.”
말을 멈췄던 천우가 다시 말했다.
“엄마, 우리 양아버지 찾아가서 할머니 아들 병 고쳐주게 해요.”
“음... 네 양아버지는 외과 의사야!”
진서연이 말했다.
진천우는 천진하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외과의사는 못 고쳐줘요?”
“그 사람은 비뇨기과로 가야 해.”
진서연의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진서연의 말을 들은 진천우는 더욱 의혹스러웠다.
“비뇨기과 의사랑 외과 의사는 달라요?”
“천우야, 착하지. 그만 물어보고 쉬어. 엄마가 내일 데리러 갈게.”
진서연이 상냥하게 말했다.
진천우는 아쉬워하며 베개를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엄마 기다리고 있을게요.”
진서연은 웃으며 영상통화를 끊고 샤워를 한 뒤 잠을 청하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걸려온 허미진의 전화를 받자마자 순간 잠기운이 달아났다. 대충 진서연에게 배은망덕한 것이라고 욕을 하며 진수영의 앞길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진수영을 괴롭혔다며 빨리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 내용이었다.
진서연은 전화를 끊었다. 천우의 생부를 찾기 전까지 그녀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허미진은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발설할 데가 없던 허미진은 옆에 앉아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진수영을 보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진서연 그거 길들일 수 없는 들짐승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죽게 밖에 내버려 두는 건데!”
“엄마, 진서연이 박하석 회사에 들어가고 아직도 6년 전의 일을 조사하고 있어. 만약 뭐라도 조사해 내면 어떡해? 나는 어떻게 해야 돼?”
진수영은 다급하게 허미진의 손을 잡고 느껴본 적 없던 두려움에 떨었다.
“박 씨 가문 사모님도 늘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자기에게 손주까지 있다는 걸 알면 무조건 진천우를 집으로 데려갈 거야. 박하석이랑 진서연을 결혼시킬지도 몰라. 그러면 나 어떡해? 인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 거야. 그럼 나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허미진은 가슴 아파하며 진수영을 품에 안고 위로했다.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그렇게 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내일 진서연을 찾아갈게. 내가 주워왔으니 그년 목숨도 내 거야. 엄마 그년이 네 앞길 이렇게 막는 거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야.”
엄마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진수영의 얼굴에 목적에 달성했다는 듯한 웃음이 걸렸다.
하루 저녁 쉰 진서연은 이튿날 아침 일찍 회사로 향했다. 팀장은 매우 기뻐하며 원래 화물들을 처리하고 조사하는 직원 몇 명을 불러와 진서연의 일을 도왔다.
진서연은 그나마 수월하고 자유로웠다. 바쁜 아침을 보낸 그녀는 점심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집으로 가려 했지만 휴대폰이 울렸다.
“회사 앞에서 기다릴게, 나와.”
허미진의 전화였다. 그녀는 진서연에게 명령했다.
진서연은 휴대폰을 꼭 잡은 채 6년 전 허미진이 자신에게 한 말을 되새기며 차갑게 웃었다.
“당신이랑 만날 일 따위는 없어요.”
“네가 안 나오면 내가 들어간다. 그때면 네 동료들이 들어야 할 거 못 들어야 할 거 다 듣게 돼도 내 탓하지 마.”
허미진이 진서연을 협박하며 6년 전의 일을 일부러 암시했다.
한 여자에게 있어서 좋은 평판이 제일 중요했다.
진서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창백해졌다. 예쁜 얼굴에도 부자연스러운 기색이 드러났고 그녀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겠어요!”
두 사람은 재운 그룹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허미진은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큰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채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아마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진서연을 본 허미진은 아래위로 그녀를 훑어보더니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6년 동안 이렇게 밖에 못 살았니? 온몸에 입은 걸 다 합쳐봤자 수영이 양말짝도 하나 못 사겠구나. 도대체 무슨 용기로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거야?”
진서연은 주눅 들지 않고 말했다.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히려 당신들 두 모녀가 몇 년 동안 온갖 나쁜 일을 했으니 언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될지 궁금하네요.”
허미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냈다.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허미진의 목소리가 레스토랑 전체에 울렸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은 매우 조용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근처에 있던 손님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고 그녀에게 눈길을 던졌다. 허미진은 자신의 반응이 지나쳤다는 걸 알고 빠르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랑 쓸데없는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한 가지만 말할게. 네 아이 데리고 떠나. 지금은 너 불쌍한 거 봐줘서 천만 원의 배상금을 줄 수 있어.”
허미진은 거지를 보내려는 듯 은행 카드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던졌다. 그녀는 온몸에 거만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진서연은 눈길도 주지 않고 비웃었다.
“6년 전에는 돈을 위해 제 생사도 따지지 않았잖아요. 제가 이제 와서 당신 말을 들을 거 같아요? 천만 원을 거지한테 준다고 해도 모자라요, 그렇게 능력 있으면 목숨으로 바꾸세요!”
말을 마친 진서연이 은행 카드를 잘라버렸다. 카드가 끊어지는 맑은 소리를 들은 허미진의 얼굴이 분노에 사로잡혀 일그러졌다. 선글라스를 벗은 허미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진서연을 보며 소리쳤다.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하지만 진서연은 몸을 돌려 레스토랑을 떠났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허미진은 진서연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기에 따라가 진서연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복도 끝에서 전찬혁이 박하석의 발걸음에 맞춰 걸으며 업무를 보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멈춰 선 박하석을 본 그는 박하석의 차가운 눈빛을 따라 호기심 어린 눈을 돌리자마자 진서연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