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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 사람 아이 아니야?

  • 진서연의 하얗고 예쁜 이마 위에 얇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연약하고 힘없는 몸은 화로라도 되는 듯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앵두같이 붉은 입술을 꾹 다문 그녀가 반복했다.
  • “나한테 손 대지 마!”
  • 하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두 눈을 감더니 쓰러지고 말았다.
  • 다시 깨었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도착해있었다. 침대 옆에 앉은 이는 그녀의 옛 남자친구 기정수였다.
  • 그는 원망 가득한 얼굴을 한 채 의자에 앉아있었다. 눈 밑에는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섞여있었다.
  • “깼어?”
  • 진서연이 눈을 뜨자 그가 담담하게 물었다.
  • 진서연은 이마를 짚고 조금 일어나 앉았다. 불그스름한 얼굴은 정상적인 혈색을 되찾았다.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그녀는 자신의 몸에 완정하게 입혀진 옷을 바라봤다.
  • 기정수는 그녀의 사소한 행동들을 눈에 담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나 너희 집에 갔었어.”
  • “우리 헤어졌잖아.”
  • 기정수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다 하기도 전에 진서연은 고개를 들어 충격으로 가득 찬 그의 두 눈을 바라봤다.
  •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 기정수는 자조적으로 웃더니 말했다.
  • “그러니까 그동안 나를 바보로 생각한 거야?”
  • “그런 적 없어.”
  • 진서연이 고개를 저었다.
  • 하지만 기정수는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그럼 왜 6년 동안이나 숨어 다니면서 돌아오지 않은 건데?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해서 나랑 헤어진 거야? 나를 사랑한 적은 있어?”
  • 진서연은 이불을 꼭 붙잡은 채 침묵을 지키다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입을 뗐다.
  • “예전에는 사랑했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상황들이 변했으니까. 모든 것이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변한 사람이잖아. 너도 느끼고 있을 거 아니야, 나 이제 너 안 필요해. 그러니까 우리 헤어지자.”
  • “그 사람 때문이야?”
  • 기정수가 마음속의 질투를 억누르며 물었다.
  • 기정수의 말을 들은 진서연이 멈칫해있다 물었다.
  • “그 사람?”
  • 기정수는 진서연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큰 박스를 들고 왔다. 안에는 돈이 가득 들어있었다.
  • 진서연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 “무슨 뜻이야?”
  • “그 사람한테서 떠나, 아이는 돌려주고. 나랑 같이 떠나자.”
  • 기정수가 진지하게 말했다.
  • 진서연은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멍해졌다. 방금 자신은 이미 똑똑히 말하지 않았던가? 기정수는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
  • “서연아, 왕 회장님은 가족이 있고 아내도 있는 사람이야. 남은 인생을 그 사람한테 바쳐가면서 살 필요 없다고. 정 그 아이를 그 사람한테 주는 게 내키지 않으면 내가...”
  • 기정수는 여기까지 말을 하곤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이 낯선 사람의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 혼란스러움과 고통이 기정수의 마음속에서 치열하게 얽매어 그를 괴롭혔다. 이천일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그리움 속에서 헤매게 한 얼굴을 바라보던 기정수가 한참이 지나서야 결심한 듯 말했다.
  • “아이를 그 사람한테 주는 게 내키지 않으면 내가 키워줄게. 하지만 너, 다시는 내 곁을 떠날 수 없어.”
  • “지금 천우가 왕 회장님 아들이라는 거야?”
  • 진서연이 의아하게 물었다.
  • “설마 아니야? 너 그때 왕 회장이랑...”
  • 기정수가 말을 하다 멈추었다.
  • 진서연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박스 안의 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박스를 닫았다.
  • “내 아이는 내가 키워, 우리는 이미 끝났어. 앞으로 나 찾아오지 마. 어제는 구해줘서 고마워.”
  • 말을 마친 진서연이 몸을 돌려 떠났다.
  • ‘이 마음은 여기까지 인걸로.’
  • 그녀는 누구의 연민도 필요 없었다. 그 누구도 천우를 진서연의 곁에서 떼어낼 자격이 없었다.
  • 진서연은 바삐 떠나는 바람에 뒤에 있던 기정수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진 씨 저택으로 가 진천우를 찾았다.
  • 하지만 진수영은 집에 없었다. 허미진도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진 씨 저택의 집사들은 진천우가 불을 낸 창고를 처리하느라 바삐 돌아쳤다. 진서연이 사람을 찾으러 왔을 때에도 그녀를 맞이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진서연을 부근의 주민이라고 생각해 구경을 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 진천우가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은 진서연은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긴장했다. 천우 그 어린 것이 처음 오는 이곳에서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
  • 길을 지나가던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린 진서연이 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가지않아 바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휴대폰 넘어 들려온 목소리는 천우가 아니라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진서연은 전화번호를 한 번 확인하더니 진천우의 전화번호가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 “여보세요, 엄마?”
  • 그때, 휴대폰에서 갑자기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진서연은 기뻐하며 물었다.
  • “천우야, 어디 있어?”
  • “천우 지금 엄청 착한 할머니 집에 있어요.”
  • 천우의 목소리는 활기로운 것이 굉장히 기뻐 보였다.
  • “무슨 할머니? 정확한 주소 좀 알려줘, 엄마가 데리러 갈게.”
  • 진서연이 물었다.
  • “나 지금 특급 구역에 있어요,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할머니 좋은 분이셔. 나한테 엄청 잘해줬어요. 지금 할머니가 집에 없는데 엄마가 나 데리고 가면 할머니가 속상해하실 거예요.”
  • 천우가 작은 목소리로 애교스럽게 해명했다.
  • 진서연은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한시름 놓았다.
  • “그래, 그럼 거기서 좀 지내고 있어. 엄마가 일 찾으면 천우 데리러 갈게.”
  • “네!”
  • 천우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진서연은 휴대폰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떠났다. 그녀의 캐리어와 휴대폰은 모두 호텔에 있었다. 다행히 그녀가 도망 나온 뒤, 진수영 쪽 사람들도 호텔을 떠났기에 진서연은 순조롭게 캐리어를 들고 체크아웃을 했다.
  • “그거 들었어? 어젯밤에 하석 도련님께서 습격을 당하셨대.”
  • “대박, 누가 그런 거야? 담도 크네!”
  • “하석 도련님께서 감시 카메라 영상을 받아 갔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화가 나서 돌아가셨어. 그 사람은 이제 죽었다고!”
  • 체크아웃을 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은 진서연은 그 말을 들으니 손이 떨려왔다.
  • 그때 프런트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 “아가씨, 돈 떨어졌어요.”
  • “네.”
  • 진서연은 직원에 말에 대답을 하고는 캐리어를 끌고 빠른 속도로 호텔을 떠났다.
  • 그녀가 이번에 인천으로 온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6년 전의 그 남자를 알아내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반달 전, 재운 그룹의 기획팀에 지원을 해 이번에 면접을 보러 왔다.
  • 재운 그룹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에 월세방을 얻은 진서연은 그날 오후, 옷을 바꿔 입고 재운 그룹으로 가 면접을 봤다.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진서연은 자신이 이미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대표님 사무실에 있던 전찬혁은 아침 내내 웃음을 참고 있었다. 진서연의 이력서를 구겨질 듯 잡고 있는 자신의 대표님을 바라보며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 진서연이라는 여자도 참으로 대단했다.
  • 하석 도련님을 때리고 도망간 것도 모자라 재운 그룹으로 면접을 보러 오다니.
  • 체면을 고려해 어젯밤의 일을 알리기 부끄러워하는 하석 도련님을 얕보고 있는 건가!
  • “대표님, 제가 가서 처리할까요?”
  • 전찬혁이 물었다.
  • 박하석의 눈 밑에 알 수 없는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진서연의 이력서를 쓰레기통으로 던진 그가 차갑게 말했다.
  • “필요 없어!”
  • “그럼...”
  • 전찬혁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 “직접 오겠다는데 놓아줄 수 없지. 하지만 기획팀의 자리는 그 여자한테 어울리지 않으니까 인사팀한테 창고로 가서 밑바닥부터 시작하게 하라고 해. 그리고...”
  • 말을 하던 박하석이 가볍게 웃었다.
  • 소식을 기다리던 진서연은 자신이 창고 하역인부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울해졌다.
  • 과장님은 진서연이 도망갈까 봐 특별히 찾아와 그녀에게 위안을 건넸다.
  • “우리 회사의 고위층 지도자들도 모두 밑바닥으로부터 시작했어요. 진서연 씨 이렇게 훌륭한데 우리 회사에 들어왔으니 1월에 정식 직원으로 되고 3월에는 월급 인상되고 5월에는 과장님으로 승진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 회사 월급도 많이 줘요, 다른 회사의 두 배나 된다고요. 그러니까 여기 남아요, 우리는 서연 씨 같은 인재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