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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동안 어디 갔었어

  • 이미 박 씨 저택의 대문에 발을 들였던 남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남자의 깊고 검은 눈동자 속에 차가움이 담겨있었다. 빨간 입술의 입꼬리에는 날카로움이 서려있었다.
  • 박하석의 뒤에 선 전찬혁이 허리를 숙이고 물었다.
  • “대표님, 들어가서 사모님께 해명하시겠습니까?”
  • “필요 없어.”
  • 박하석이 몸을 돌렸다. 타고난 거만함을 지닌 그의 온몸에는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게 하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 운명을 타고난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세가 당당하고 인천의 우두머리인 박하석도 뜻대로 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 인천의 제일 중심에 우뚝 서있는 가장 화려한 코리아나 호텔에 방을 잡은 박하석은 제왕처럼 인천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날 밤의 몽롱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 통쾌한 기분은 그가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을 중독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는 그런 맛을 좋아하게 되었다. 오직 그 맛만 좋아했다!
  • 하지만 진수영의 어색한 얼굴을 볼 때마다 박하석은 몰려오는 오한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자신이 어떻게 저런 여자에게 손을 댔는지 알 수 없었다.
  • 그날 밤의 과실을 보상하기 위하여 박하석은 진수영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그는 평범하던 그녀를 진한 그룹의 대표님으로 만들어주었다. 박하석은 이 보상이면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대표님, 왕 회장님께서 와인 한 병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프랑스에서 힘들게 공수해온 와인이라고 하는데 남겨둘까요?”
  • 전찬혁이 조심스럽게 와인 한 병을 들고 박하석의 뒤에 서서 물었다.
  • 박하석은 무심하게 와인을 한 눈 보더니 말했다.
  • “버려.”
  • “네.”
  • 전찬혁이 공손하게 물러갔다.
  • 인천의 야경을 내려다보는 박하석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 “잠깐만, 와인 남겨둬.”
  • 박하석의 말에 전찬혁은 와인을 남겨두고 물러갔다.
  • 짙은 와인향은 사람의 마음까지 취하게 만들었다. 마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하석은 졸음기를 느꼈다. 하루 종일 바삐 돌아쳤던 그는 그저 일 때문에 지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을 끄는 그 순간 강렬한 열의가 복부에서 전해졌다. 남자의 차가운 얼굴에 흉악한 기운이 자리 잡았다.
  • 박하석은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자신의 눈앞에서 수작을 부리다니. 순간 살기가 그의 주변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몰래 그의 룸으로 들어왔다.
  • 아니나 다를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검은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베란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박하석의 품에 부딪쳤다.
  • 남자는 차갑게 웃었다. 또 이런 수작질이라니!
  • 힘 있는 손바닥이 품속에 있는 이의 손목을 잡았다. 여자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그 신음 소리는 제법 그럴싸했다.
  • 하지만 박하석은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며 손에 힘을 가했다. 여자는 그의 품속에서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 “아파요!”
  • 방금 옆방에서 도망쳐 나온 진서연은 이런 폭력배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채 해명했다.
  • “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금방 나갈게요.”
  • 어둠속에 선 박하석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 밑에 보아 내기 힘든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이 목소리가 조금 익숙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박하석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여자의 몸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박하석에게 잡힌 작은 손은 가늘고 매끄러워 박하석이 몸속에 감추어두었던 열의가 또다시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는 괴로웠다!
  • 눈앞에 있는 여자는 이상할 정도로 향기로웠다.
  • 진서연은 해명하고 나면 남자가 자신을 놓아줄 줄 알았다. 하지만 남자의 거대한 몸이 갑자기 그녀의 몸을 향해 기울어지더니 굉장히 이상한 자세로 자신을 벽에 가두었다!
  • 진서연은 멍해졌다.
  • ‘이건 무슨 짓이지?’
  • 자신은 그저 지나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 남자 무엇을 하려는 거지!
  • 이상한 상황임을 눈치챈 진서연이 당황해서 두 손으로 남자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차가운 두 손을 박하석의 몸에 닿게 한 것이 뜨겁게 불타고 있던 그의 마음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라는 것을 몰랐다. 박하석의 몸 안에 있던 열의가 더욱 불타오르고 있었다.
  • 맑은 두 눈에 이상한 빛이 드리웠다!
  • 진서연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길쭉한 손이 책상 위를 대충 치우더니 술병 하나를 들었다.
  • 그 모습을 본 진서연은 놀라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몰래 들어왔다고 해도 술병으로 내리칠 필요는 없잖아!
  • 읍——
  • 진서연이 당황한 사이, 차갑고도 딱딱한 물건이 그녀의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농염한 술 냄새가 흐릿하던 그녀의 생각을 순간 현실에로 끌고 왔다. 이 남자는 지금 자신의 입에 술병을 들이밀었다.
  • 그뿐만 아니라 우악스럽게 술병의 술들을 자신의 입속으로 들이붓고 있었다.
  • 진서연은 멍해있다 화가 나서 술병을 옆으로 치웠지만 남자는 다시 우악스럽게 그녀의 턱을 움켜잡았다. 순간 진서연은 꼼짝도 할 수 없어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 “야, 이 새끼야, 내가 사과도 했잖아. 뭘 더 바라는 거야?”
  • “하! 네가 먼저 내 술에 약 탔잖아, 그리고 온갖 수단 방법을 써서 내 방에 들어왔잖아. 내가 네 말을 믿을 거 같아?”
  • 어둠 속에서 박하석의 깊은 눈동자는 독에 중독된 듯 차갑고 무정했다.
  • 진서연은 박하석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 “나 아니야. 이거 놔... 읍... 이 새끼야!”
  • 그녀는 계속 욕을 했지만 약한 힘은 거대한 남자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반 병이 넘는 술이 그렇게 그녀의 뱃속으로 흘러들어왔다.
  • ‘괴로워...’
  • 발버둥 치던 진서연의 작은 손이 점차 힘을 잃고 벽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검은 방안에 빛이 들어왔다. 그 미친놈이 불을 켜고 진서연을 등진 채 전화를 하고 있었다.
  • “응, 도둑놈이야. 경찰도 같이 데리고 와, 남은 시간은 감옥에서 지내라고 해.”
  • ‘도둑은 개뿔!’
  • 생뚱맞게 술을 마시게 된 진서연은 비틀거리며 테이블을 잡고 일어섰다. 술기운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약기운 때문인지 저 미친놈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화가 난 진서연은 옆에 버려진 빈 술병을 잡았다.
  • 그리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박하석이 땅에 넘어졌다.
  • 그의 손에 있던 휴대폰도 덩달아 땅에 떨어졌다.
  • 진서연은 끊기지 않은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
  • “경찰 말고 구급차 부르세요.”
  • 전찬혁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 ‘여자 목소리? 무슨 일이지? 대표님께서 여자랑 놀다가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
  • “무슨 일입니까?”
  • 전찬혁이 물었다.
  • 하지만 진서연은 전화를 끊고 답답한 옷깃을 끌어내렸다.
  • ‘괴로워, 여기를 떠나자. 이따 사람이 오면 복잡해질 거야.’
  • 진서연이 호텔을 나오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일고여덟 대의 경찰차와 구급차가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호텔 전체가 봉쇄되었다. 다행히 진서연은 빨리 나온 덕분에 그곳에 갇히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된 것이 몸이 점점 괴로웠다.
  • 외국에서 접대를 하면서 적지 않은 술을 마신 그녀였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떻게 된 거지?
  • 멀리 가지 못한 진서연은 내려앉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언제 맞은편에서 차가 온 건지도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 검은색의 페라리에서 누군가가 걸어내려왔다. 나이는 많지 않았지만 기가 막히게 잘생겼다.
  • 진서연은 처음에는 그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을 때에야 알아차렸다. 기정수였다!
  • ‘기정수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 “서연아, 그동안 어디 갔었어?”
  • 기정수가 흥분해서 진서연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 진서연은 온몸이 뜨거워 이를 악물고 힘을 주어 기정수를 밀어냈다.
  • “나한테 손 대지 마.”
  • “나 네 남자친구잖아. 그런데 왜 손 대면 안 되는 건데? 말해 봐, 그때 왜 왕 회장한테 간 거야?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했다고 넌 나한테 그런 짓을 한 거야?”
  • 기정수가 악에 받쳐 물었다. 6년이었다. 기정수는 6년 동안 진서연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나한테 손 대지 마’라는 한마디로 자신을 내쫓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