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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늙은 남자는 아들 못 낳아

  • 6년 동안 기정수는 계속 진서연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진서연에게 자신에게 돈이 생겼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진서연에게 아들이 생겼다고?
  • “그럴 리가 없어, 서연이 그런 사람 아니야.”
  • 기정수는 진수영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의 검은 눈 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뜨겁게 타고 있었다.
  • “거짓말하지 마!”
  • 진수영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 “서연이 그런 사람 맞아, 네가 몰랐을 뿐이지. 그때 내가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세컨드를 하는 일까지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듣지 않더니 이제 와서 후회되니까 내 약혼식에 찾아와서 훼방 놓은 거야. 진서연이 낳은 잡종을 내가 잡아왔으니까 언제든지 정수 도련님한테 넘겨줄 수 있어.”
  • 진수영은 마침 그 잡종을 처리할 곳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 기정수의 아버지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아래로 3대가 모두 비즈니스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돈이 너무 많으면 사람의 미움을 산다는 생각에 기정수에게 집안 세력을 숨기고 가난한 척하라고 했던 것이었다.
  • 사랑하는 사람을 6년이나 기다렸는데 결국 그 사람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다니...
  • 기정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잡종을 죽일 수 있었다.
  • 그리고 이후에 이 사실을 박 씨 집안이 발견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진수영과는 상관이 없게 된다.
  • 생각을 마친 진수영이 진천우를 데리고 와 기정수에게 넘겨주려던 그때 이층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진수영이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
  • “2층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 집사가 급하게 뛰어내려오더니 말했다.
  • “큰일 났어요, 아가씨. 창고에 불이 났어요.”
  • “뭐?”
  • 집사의 말을 들은 진수영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2층으로 달려간 그녀는 짙은 연기가 피어 올라오고 있는 창고로 뛰어들었다. 창고 안은 이미 불이 붙어 불씨가 문밖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 그 아이가 아직 저 안에 갇혀있었다!
  • 만약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을 박하석이 알고 나면 진수영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 “여기, 불 꺼요. 빨리 불 꺼요!”
  • 집에 있던 집사들이 소화기를 들고 한달음에 창고로 달려가 집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 하지만 힘들게 창고의 불을 끄고 보니 안에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나사 못을 잃은 창문만이 남아있었다.
  • “사람은!”
  • 진수영이 화가 나 물었다.
  • 그 순간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2층으로 올라오더니 소리쳤다.
  • “큰일 났어요, 아가씨!”
  • “또 무슨 일이야?”
  • 진수영이 화가 나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 경비가 뒷마당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 “아가씨께서 저번 달에 큰마음 먹고산 차를 누가 부셨어요!”
  • 그뿐만 아니라 뒷마당에 놓여있는 차는 모두 망가져 있었다. 진수영은 감시 카메라를 보자마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 화면 속에서 진천우는 창문에서 나와 뒷마당으로 가 벽돌 하나를 찾아 그녀의 차를 하나씩 내려쳤다. 그리고 만족한 얼굴로 손을 털더니 문틈 사이로 빠져나갔다.
  • 정말이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 진수영은 진천우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 기정수를 보내고 직접 사람을 데리고 가 천우를 찾기 시작했다.
  • 이곳은 부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별장 구역이었기에 땅은 넓고 사람은 적었지만 경비가 삼엄해 진천우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것이다.
  • 창고에 불을 붙이고 차까지 망가뜨린 꼬맹이를 잡아서 이를 깨부수고 말 것이다!
  • 진수영은 사람을 죽일 마음까지 생겼다. 그녀는 집에 있던 경비와 집사들을 동원하고 아파트의 경비까지 찾아와 전면적으로 진천우의 행적을 쫓기 시작했다.
  • 진 씨 저택에서 도망쳐 나온 진천우는 작은 꽃밭에 숨어있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순찰차가 모두 떠나고서야 꽃밭에서 나온 그는 빠른 속도로 달리다 뒤에서 다가오는 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반응을 하기도 전에 차에 치여 멀리 날아갔다.
  • 진천우를 친 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 “무슨 일이야?”
  • 차에 있던 여자가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 난감한 기색을 한 기사가 핸드 브레이크를 올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죄송합니다, 어르신. 제가 사람을 친 것 같아요. 지금 내려가서 살펴보겠습니다.”
  • 말을 마친 기사는 빠르게 차에서 내리자마자 몸을 웅크린 채 땅에 누워있는 어린아이를 살펴봤다. 손바닥만 한 얼굴이 불쌍하게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기사가 얼른 주저앉아 물었다.
  • “꼬마아, 어디를 다친 거니?”
  • “아저씨, 운전할 때 주위를 둘러볼 줄도 모르세요? 아저씨가 운전하던 차에 치여서 죽을 뻔했잖아요.”
  • 진천우의 작은 몸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눈은 빨갰다.
  • 기사는 미안한 눈으로 고개를 돌려 차에서 내리는 박 씨 가문 사모님을 바라봤다.
  • “어르신, 이 아이가 다친 것 같아요. 이 아이를 차에 태우고 진 씨 저택으로 모셔도 될까요?”
  • “아이가 다쳤는데 진 씨 저택은 무슨, 진수영은 더 이상 박 씨 집안에 발을 들이지도 말라고 해!”
  • 박 씨 가문 사모님의 시선이 진천우의 얼굴로 향했다. 그녀는 놀랍게도 눈앞에 있는 아이의 미간이 박하석이 어렸을 때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자신이 손주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환각이 나타난 거라고 생각했다.
  • “얘야, 왜 너 혼자 여기에 있는 거니? 네 아빠는?”
  • 진천우는 어깨를 잡은 채 멀지 않은 곳에서 다가오는 순찰차를 보며 진수영이 찾아올까 싶어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 “예쁜 할머니, 저 너무 아파요.”
  • 진천우의 말을 들은 박 씨 가문 사모님이 얼른 진천우를 안아들어 지나가던 순찰대와 스쳐 지나갔다.
  • 병원.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이상한 얼굴로 병원 침대에 누운 작은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박하석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 의사가 떠난 후,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참지 못하고 진천우에게 물었다.
  • “꼬마야, 너 어디에 사니? 엄마 아빠 전화번호는 기억해?”
  • 진천우는 나쁜 사람에게 붙잡힌 진서연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 “엄마 전화번호는 몰라요.”
  • “그럼 아빠 거는?”
  • 박 씨 가문 사모님이 물었다.
  • 그 말을 들은 진천우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더니 곧 눈물을 떨어뜨릴 듯한 얼굴로 말했다.
  • “아빠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몸 전체가 다 타서 굉장히 처참하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저랑 엄마 둘이서 의지하면서 살고 있어요...”
  • “에구, 우리 귀염둥이. 울지 마, 이 할미 마음이 아프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눈물을 떨구는 진천우를 보니 가슴이 아파 부드럽게 작은 아이를 품속에 안았다.
  • 진천우는 눈물을 닦더니 슬프고 억울하게 말했다.
  • “우리 엄마가 출장 중이라 돌아올 수 없어서 저를 돌볼 사람이 없지만 할머니께서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저 사람 안 속여요. 그만 가보셔도 돼요. 저 혼자 잘 보살필 수 있어요.”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진천우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또 아이의 처량한 신세를 알고 자신의 기사가 아이를 다치게 했으니 어쨌든 이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다.
  • “네가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도 돼. 엄마가 돌아오면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 줄게. 어때?”
  • 박 씨 가문 사모님이 말했다.
  • 그 말을 들은 진천우가 기뻐서 물었다.
  • “정말요?”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진천우를 볼수록 귀엽다고 생각했다. 박하석이 어렸을 때보다도 더 귀여웠다. 아이를 좋아하는 그녀는 두말하지 않고 진천우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 “어르신,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이 집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가 달려와 말했다. 진천우를 달래던 박 씨 가문 사모님은 굳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 “신분도 깨끗하지 못한 여자랑 약혼까지 해가면서 나를 속이려고 했으면서 무슨 낯짝으로 돌아온 거야!”
  • 집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 “어머니가 너무 급하게 재촉하셨잖습니까.”
  •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들 하나 낳지 못하는 걸 두어서 뭘 한다고! 가라고 해!”
  • 박 씨 가문 사모님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하다 고개를 돌리자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천우를 마주했다.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얼른 웃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 “천우 안 무서워해도 돼, 우리 천우 말하는 거 아니야.”
  • 진천우는 그제서야 침을 삼키더니 작은 몸을 떨었다. 이 할머니네 집에 있는 남자들은 애도 낳을 수 있는 건가?
  • 너무 무서워!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놀란 진천우를 보며 허리를 숙여 그를 안아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집사에게 말했다.
  • “박하석한테 말해, 마누라 얻어서 내 손에 손주 안겨주기 전까지는 이 집에 발 들일 생각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