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2화 우리 귀염둥이, 잘했어

  • 6년 후, 이화 교회.
  • 유학의 기회를 포기한 진수영은 박 씨 집안의 도움 아래, 아무것도 없던 일반인에서 진한 그룹의 여자 대표님으로 되었다.
  • 그리고 오늘은 진수영과 박하석이 약혼식을 올리는 날이다.
  • 하얀색의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무대 앞에 선 진수영의 맞은편에는 고귀한 남자가 서있었다.
  • 몸에 딱 맞는 슈트는 반듯하고 늘씬한 그의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냈다. 신과 겨루어 봐도 손색없는 잘생긴 얼굴은 불빛 아래에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타고난 군주의 기운이 모든 이의 빛을 뒤덮었다.
  • 진수영의 예쁘고 정교한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걸렸다. 이 사람이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이 남자와 약혼을 하게 된다.
  • 비록 박하석이 명의상의 약혼녀를 내세워 집안의 어른들을 속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진수영은 여전히 기뻤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입을 뗐다.
  • “안녕하세요, 하객 여러분. 오늘은 저와 인천의 제1 상업 제국의 대표님 박하석이 약혼식을 올리는 날입니다. 여러분께서...”
  • “엄마!”
  • 그때 진수영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포동포동한 그림자가 무대 위로 올라와 진수영의 종아리를 안았다.
  • 성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하객들이 의아한 눈으로 무대 위에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 진수영은 이 모습에 당황해 얼른 말했다.
  • “꼬마야, 사람 잘못 알아봤어.”
  • “엄마, 나 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천우잖아요. 어떻게 이런 기생오라비한테 시집가기 위해서 나랑 아빠를 버릴 수 있어요!”
  • 아이는 네다섯 살쯤으로 보였다. 작은 몸이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눈 속에 가득 고인 눈물이 보였다.
  •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 있던 하객들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
  • “진수영한테 아들이 있었어?”
  • “예전에는 왜 못 들어봤지?”
  • “하석 도련님 이제 호구 되는 거야. 대박, 이런 핫이슈라니!”
  • 순간 무대 아래는 떠들썩해졌다.
  • 약혼식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던 박하석은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 차가운 시선으로 진수영을 바라봤다!
  • 그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하자 진수영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얼른 종아리를 붙잡은 아이를 밀어냈다.
  •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너 몰라. 이 아이 누구 집 아이야?”
  • “나는 엄마가 이런 사람일 줄 몰랐어요. 돈을 위해서 친아들도 버리다니.”
  • 아이가 포동포동한 손으로 옆에 서있는 고귀함을 내뿜는 박하석을 가리키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 “이 남자 늙고 못생겼어요. 아빠랑 비교하면 정말 뒤떨어진다고요. 엄마, 이 남자랑 결혼하지 마세요, 우리 셋이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지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요, 네?”
  • 진수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이상해졌다.
  • 화가 난 진수영은 경비를 불렀다.
  •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는 너 몰라. 이봐요, 이 못돼먹은 아이 좀 끌어내요!”
  • “엄마가 천우 버리면 천우도 이제 안 살 거예요.”
  •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더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 모든 이가 진수영의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진수영이 이렇게 악독한 사람이었다니. 재벌집에 시집을 가기 위해 아이와 남편까지 버리다니!
  • 우느라 눈이 빨개진 아이는 보기만 해도 불쌍했다.
  • 하지만 진수영은 아이를 위로하기는커녕 뿌리치기까지 했다.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인가?
  • 하객들의 안색은 제각기 달랐지만 고고한 제왕 같은 존재인 박하석의 눈빛에는 그 어떠한 온도도 담겨있지 않았다.
  • 진수영은 그 눈빛을 보곤 다급하게 해명했다.
  • “하석 씨, 내 말 들어봐. 나 정말 저 아이 몰라...”
  • “사람 바꿔.”
  • 박하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등 뒤에 있던 비서에게 가차 없이 말했다.
  • 그는 약혼녀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누가 되었든 상관없었다.
  • 박하석의 말을 들은 하객들은 놀랐다.
  • 모든 이의 눈빛이 진수영의 몸에 떨어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혼식을 취소당하다니, 이것이야말로 핫이슈 중의 핫이슈였다!
  • 완전히 당황한 진수영은 급한 마음에 박하석의 소매를 잡았다. 남자의 긴 다리가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한 진수영은 얼른 손을 놓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손이 닿았던 외투를 벗어 쓰레기통에 넣는 박하석이 떠나는 모습을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진수영이 화가 나 무대 위로 올라가자 사고를 친 아이는 이미 바닥에서 일어섰다. 아이의 얼굴에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이의 눈 밑에 선명하게 숨겨진 자랑스러움을 보아낼 수 있었다.
  •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진수영은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며 아이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날렸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 손이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진수영의 손목을 잡았다.
  • 그리고 맑은 웃음소리가 갑자기 울렸다.
  • “언니, 오랜만이다!”
  • 이 목소리...
  • 진수영을 몸을 떨더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진서연을 바라봤다.
  • “너,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야?”
  • “언니가 약혼하는데 동생이 빠지면 쓰나?”
  • 진서연은 새빨간 입술을 움직여 자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다.
  • 진수영은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때 엄마가 너한테 한 얘기 잊은 거야? 네가 뭔데 내 약혼식에 나타난 거야? 지금 복수하는 거니?”
  • “응, 언니는 만족해?”
  • 진서연이 해맑게 웃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얼굴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 진수영은 진서연의 웃는 모습을 굉장히 싫어했다. 진수영의 눈에는 불여우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밖에는 많은 하객들이 아직 자리를 뜨지 않았다. 진수영은 고고한 진한 그룹의 대표님이었기에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진서연에게 따지며 훈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신분에 맞지 않았다.
  • 진서연을 데리고 빠르게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간 진수영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 “삼 일 줄 테니까 인천에서 떠나. 아니면 두고 봐!”
  • 혹여나 다른 사람이 발견할까 봐 말을 마친 진수영은 다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보아하니 박하석을 잡으러 간 듯했다.
  • 하객들이 어수선한 교회를 떠나는 사이, 작은 몸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 빠르게 진서연의 곁으로 다가왔다.
  • “엄마, 천우 연기 어때요? 빨리 나 칭찬해 줘요.”
  • 꼬마 아이의 천진한 얼굴에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이 걸려있었다.
  • 진서연은 귀여운 꼬맹이를 보자마자 흐뭇하게 웃으며 꼬맹이를 잡고 뽀뽀를 날렸다.
  • “잘했어, 우리 귀염둥이. 정말 대단해. 가자, 엄마가 상으로 버블티 사줄게.”
  • 진서연은 천우를 데리고 교회를 떠났다.
  • 6년 전, 진서연은 허미진에게 유흥업소로 팔려간지 얼마 되지 않아 도망쳤다. 몇 달을 꽁꽁 숨어 다니던 그녀는 다른 도시로 가서야 어렵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그리고, 진서연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 남자의 아이였다.
  • 진서연은 아이를 지우려고 했지만 의사는 아이가 너무 커서 유산을 건의하지 않았기에 진서연은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 인형처럼 귀여운 남자아이를 바라보며 진서연은 다행히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녀에게 이렇게 귀여운 귀염둥이가 올리도 없었다.
  • 디저트 가게의 홈바 의자에 앉은 천우는 버블티를 잡고 짧은 두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천진하게 물었다.
  • “엄마, 우리 아빠는 정말 인천에 있어요?”
  • “아마도.”
  • 진서연이 이번에 돌아온 목적은 그때의 그 남자가 누군인지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 “너무 좋아요. 그럼 나 이제 아빠를 볼 수 있는 거네. 아빠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해요. 내가 이렇게 잘생긴 미남이니 아빠도 그렇게 못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빠를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 천우가 기뻐하며 빨대를 씹었다. 손바닥만 한 동근 얼굴에 달콤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디저트 가게에서 나온 진서연은 진천우를 데리고 코리아나 호텔로 갔다. 그녀는 5년 전 그날 밤, 797번 방에 머물렀던 손님을 조사해 보려 했다. 하지만 프런트 직원은 조회해 보더니 안색이 조금 변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 “그럴 리가 없어요. 혹시 기록이 없는 건가요?”
  • 진서연이 의아하게 물었다.
  • 하지만 직원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죄송합니다, 아가씨. 확실히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또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 “그럼... 방 하나 잡아주세요.”
  • 진서연은 조금 실망스럽게 키를 받아들고 천우를 데리고 올라갔다.
  • 하지만 진서연이 가자마자 직원은 다급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그 여자가 나타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