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석은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뚜렷한 윤곽과 흠잡을 데 없는 이목구비, 밤하늘의 별을 빼다 박은 것 같은 두 눈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어느 곳 하나 사람을 사로잡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 남자는 그야말로 최상품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길쭉한 손가락이 진서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갈 때,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버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본분을 지키지 못하던 남자의 손이 자신의 목을 타고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갈 때까지...
진서연의 호흡이 조금 흐트러졌다. 그녀는 당황함을 느끼며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자중하세요!”
박하석이 가볍게 웃더니 입꼬리를 올려 하찮음을 드러냈다. 순진한 척하고 있는 눈앞의 여자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자친구와 레스토랑에서 꽁냥거리다 돌아서자마자 자신에게로 안겼으면서 자중이라는 두 글자를 입에 올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뻔뻔했다.
진서연은 박하석이 만난 여자들 중에서 제일 더러운 여자였다.
박하석의 비웃음을 담은 차가운 눈은 온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게임을 끝내고 흥미를 잃은 것처럼 손을 놓은 그가 말했다.
“오늘 저녁 6시에 나랑 연회에 함께 가도록 해.”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77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냉담하고 거만한 남자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떠나버렸다.
혼자 남겨진 진서연은 의문을 가득 품은 채 박하석의 뒤를 따라갔다.
“저는 당신을 알지도 못하는데 왜 당신이랑 같이 연회에 참석해야 하죠?”
“내가 네 대표님이니까.”
박하석의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오만해 거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손바닥만 한 진서연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진수영의 약혼남이라는 건가?
세상에!
그러니까 방금 진수영의 약혼남이 자신에게 그런 무례한 짓을 했다는 거야?
무슨 상황인 건지!
진서연은 제자리에 멍청하게 서있다 몇 초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순간 더러운 기분이 그녀를 잠식했다. 물론 자신이 두 사람의 약혼식을 망쳤다고 하지만 본질상에서 진서연은 박하석에게 미움을 산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박하석이 자신을 알고 싫어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건지.
고개를 저은 그녀는 자신의 환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남자를 빼앗는 취미 따위 없었다. 더구나 이 남자는 진수영의 남자였다!
붉어진 얼굴로 다시 엘리베이터에 오른 진서연은 하루 종일 정신을 다른 곳에 팔고 있었다. 힘들게 퇴근시간까지 버틴 그녀는 일을 끝내고 진천우를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라 회사를 나가려 했지만 전찬혁이 진서연을 막았다.
“진서연 씨,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리 마치고 저를 따라오세요.”
전찬혁이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달고 말했다.
하지만 진서연은 예쁜 눈썹을 살짝 치켜뜨더니 칼같이 거절했다.
“저 안 가요.”
“진서연 씨는 재운 그룹의 직원입니다. 그러니 거절할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머리를 내리친 여자를 대표님께서 연회에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 건 이미 충분히 너그러운 처사였다. 다른 여자였다면 이미 대표님의 손에 몇 번이나 죽었을지도 몰랐다!
“더구나 뭐요?”
진서연이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전찬혁은 웃으며 허리를 똑바로 세우더니 진서연에게 길을 안내했다.
벤틀리에 오른 진서연은 의외로 차 내부가 꽤나 넓다는 것을 발견했다. 차 안의 설비도 고급 졌다. 옆에 앉은 남자는 고귀한 자태를 한 채 진서연이 차에 오른 후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답답한 분위기는 진서연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
백화점의 전문 매장에 도착하자 매니저는 벌써 매장 밖에서 공손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고한 남자가 들어서는 모습을 본 매니저의 얼굴에 순간 웃음꽃이 폈다.
“대표님, 드레스는 이미 다 준비되었습니다.”
“갈아입고 나와.”
박하석이 차갑게 명령했다.
하지만 진서연의 얼굴에 선명한 난감함이 스쳐 지나갔다. 어쩔 수 없이 입술을 문 그녀는 드레스를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드레스는 노출이 심했다. 튜브톱 디자인의 드레스는 진서연의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고 상반신은 망사 재질을 사용해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녀의 가슴 앞에 있는 모반까지 똑똑히 볼 수 있어 굉장히 보기 싫었다. 입어도 안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서연은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이런 드레스를 본 적이 없었다.
“다 입었어?”
탈의실 밖에서 귀찮다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서연은 긴장된 얼굴로 거울을 한 번 보곤 쿠션 팩트를 꺼내 모반 위로 두껍게 펴 바르며 말했다.
“노출이 너무 심해요. 바꾸고 싶은데... 아! 갑자기 들어오면 어떡해요!”
놀란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온 박하석을 본 진서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황급히 가슴 부근을 막은 진서연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팔을 뒤로 움직여 탈의실의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다.
박하석의 행동에 놀란 진서연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를 본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 위에 입고 있던 드레스를 꽉 움켜잡았다.
박하석은 갑자기 진서연의 두 손을 잡더니 벽으로 밀어붙였다.
진서연이 놀라 소리를 지르려고 하던 찰나 머리 위에서 남자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지르지 마.”
그 한마디에 그녀의 목소리는 목에 갇혀버렸다. 맑고 큰 눈이 두려움에 정처 없이 흔들렸다.
박하석은 고개를 숙이고 불쌍한 그녀의 두 눈을 주시했다. 그의 눈 밑 깊은 곳에는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었다. 하얗고 긴 손가락이 장난치 듯 망사 재질의 드레스를 향해 다가갔다.
어두운 불빛 아래, 진서연의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남자에게 변태라며 욕을 하려던 찰나, 남자가 손을 거두고 진서연을 놓아주더니 여전히 아무런 온도도 담겨있지 않은 눈을 하고 말했다.
“기다려.”
그가 나가자마자 점원은 정상적인 예복을 가지고 들어왔다.
진서연은 한참이 지나서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붉어진 얼굴을 한 그녀가 탈의실에서 나온 후에도 박하석은 진서연을 보지 않았다. 오히려 전찬혁이 진서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상했다, 너무 이상했다. 그는 방금 전 탈의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서연이 옷을 갈아입고 머리까지 다 하고 나니 시간은 이미 8시가 넘었다. 연회가 이제 막 시작된 시간이었다.
하늘이 선택한 운명을 타고난 박하석의 출현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연이어 박하석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박하석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그 모습은 고고한 군주 같았다. 그리고 짙은 하늘색 슈트를 입은 잘생긴 남자 앞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송준호는 박하석을 보자마자 그를 놀리며 말했다.
“박 대표님, 제가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머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대표님께서 내 연회에 오는 줄 알았다고.”
“여기 당신 선물이에요.”
박하석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송준호는 그제서야 박하석의 옆에 여자가 하나 서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굉장히 청순한 여자였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송준호가 진서연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여자를 말하는 건가요?”
그들의 대화를 들은 진서연이 멈칫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지만 박하석의 냉혹한 말을 듣게 되었다.
“네.”
순간 한기가 진서연의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송준호도 박하석이 농담을 하고 있는 줄 알고 괴상하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 그만하세요. 아가씨 놀란 것 봐요. 제가 어떻게 감히 박 대표님이랑 여자를 빼앗겠습니까.”
“당신을 위해서 특별히 데리고 온 거예요. 사양할 필요 없어요.”
박하석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송준호의 웃음이 얼굴에 굳었다. 그가 의아하게 진서연을 바라봤다. 생긴 건 문제없었다. 청순한 것이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었다. 몸매도 좋을 것 같았다. 대충 봐도 최상품의 절반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송준호는 오늘 박하석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필경 박하석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여자를 선물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송준호는 의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을 가지고 싶은 겁니까?”
“이난 지역의 개발권을 저에게 주시면 보답으로 이 여자를 당신한테 드리겠습니다.”
상업적인 합작에서 원하는 것이 쪽에서 보통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진서연이 바로 박하석이 준비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