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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제가 어머니 친아들이에요

  • 진서연은 호텔 룸에서 나오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진서연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던 그때, 등 뒤에서 자신을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 “저 여자 누구예요? 왜 박 대표님 방에서 나오는 거죠?”
  • “안에서 뭐 했을까요? 제가 알기론 박 대표님 오늘 하얀색 옷을 입고 왔던 것 같은데 방에서 나올 때에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더라고요.”
  • “뻔뻔해라...”
  • 뒤이어 화가 나서 이를 부득부득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엘리베이터의 문은 닫혔지만 진서연은 똑똑히 들었다. 그녀의 정교한 얼굴이 조금 바뀌었다. 도대체 왜 자신을 뻔뻔하다고 욕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쓸데없는 참견을 하는 데에는 일등이었다.
  • 연회장을 떠나며 진서연은 진천우게게 전화를 걸었다.
  • 진천우는 화가 나서 억울하게 말했다.
  • “엄마, 벌써 열 시인데 왜 아직도 천우를 데리러 안 오는 거예요?”
  • “미안해, 엄마 이제 퇴근했어. 지금 데리러 갈게.”
  • 시간을 확인한 진서연은 진천우에게 미안해졌다.
  • 그러자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인 진천우가 이렇게 말했다.
  • “엄마 이제 퇴근했어요? 힘들겠다. 엄마가 있는 곳 여기랑 먼 것 같은데 내일 와도 괜찮아요. 이렇게 늦었는데 엄마 혼자 오는 거 천우는 걱정돼요.”
  • “그래.”
  • 주소를 확인한 진서연은 두 사람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차를 잡아서 가도 한 시간 정도가 걸렸기에 도착하면 열한시가 넘을 것이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천우를 돌봐 준 그 집에 가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해 진서연은 내일 일찍 퇴근해서 선물을 사서 천우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 전화를 끊은 진천우가 큰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박 씨 가문 사모님은 긴장한 채 진천우의 이불을 꼭 잡고 기대를 담아 물었다.
  • “뭐래? 엄마가 허락했어?”
  • “네, 허락했어요.”
  • 진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기뻐하며 얼른 집사에게 분부했다.
  • “야식 다 준비했어? 얼른 들고 들어와, 우리 귀염둥이 천우 배고플라!”
  • “할머니, 천우 배 안 고파요. 그렇게 많이 먹을 필요 없어요.”
  • 진천우가 얼굴을 들고 말했다.
  • “이렇게 늦었는데 주방장 아저씨도 쉬게 해주세요.”
  • “그래, 천우 말이 맞다. 앞으로 할머니가 그 사람들을 꼭 일찍 퇴근시켜주마. 그런데 천우 오늘 저녁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잖니. 많이 먹어야지, 만약 엄마가 천우 야윈 모습을 보면 마음 아파할 거다. 그때 할머니가 뭐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하인을 재촉해 야식을 들고 오게 했다.
  • 8가지 음식을 준비했지만 3번째 음식이 들어온 후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 “나머지 음식들은?”
  • 박 씨 가문 사모님이 물었다.
  • “사모님, 도련님께서 돌아오셨는데 저녁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주방에서 나머지 음식들을 도련님한테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 집사가 얼른 대답했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박하석이 자신이 진천우에게 준비해 준 음식들을 가로챘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말했다.
  • “다 큰 어른이 배고프면 혼자 해먹을 것이지, 왜 애랑 뺏고 그러는 거야? 나이만 잔뜩 먹어놓고 돈 좀 벌었다고 맘대로 날뛰는 구만. 애도 못 낳는 주제에 감히 집으로 와? 썩 꺼지라 그래!”
  • 집사는 이마 위의 식은땀을 닦으며 난감하게 말했다.
  • “도련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는데 쫓아내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 “맞아요, 할머니. 천우 많이 못 먹어요. 여기서 매일 공짜로 먹어서 눈치 보여요. 할머니가 자꾸 아저씨한테 화내면 천우는 자기를 탓할 수밖에 없어요.”
  • 천우가 그릇을 들고 예쁘고 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 “그래도 천우가 착하다, 사람 걱정도 할 줄 알고.”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유난히 진천우의 말에 신경 썼다. 아마도 천우가 귀엽게 생긴 덕분인 듯했다. 포동 포동 하고 정교한 얼굴은 박 씨 어르신의 미적 기준에 적합했다.
  • 매번 진천우의 얼굴을 볼 때마다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자기 집의 그 쓸모없는 아들을 때려주고 싶었다. 남들은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잘도 낳는데 왜 박하석 같은 재운 그룹의 대표님이, 인천의 부잣집 규수들이 떼를 지어 쫓아다니는 인물이 이렇게 쓸모가 없는 건지!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결국 박하석을 잡고 잔소리를 해야만 분이 풀릴 것 같아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들을 찾았다.
  • 멍해진 진천우는 억울하게 집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 “할머니 원래 이렇게 사람을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 집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 “예전에도 그랬고 요즘은 더 심해지셨지.”
  • ......
  • 박하석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렵게 진서연을 한바탕 교육해 기분이 조금 좋아졌는데 박 씨 가문 사모님에게 이렇게 잔소리를 들으니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박하석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저녁을 먹었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욕을 해도 소용이 없자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
  • “앞으로 돌아와서 밥 먹고 싶으면 미리 주방에 얘기해, 이건 내가 저 아이를 위해 준비한 음식이라고, 앞으로 너는 먹지 마.”
  • “어머니, 제가 어머니 친아들이에요.”
  • 박하석이 진지하게 일깨워주었다.
  • “아서라, 나는 그게 더 부끄럽다.”
  • “......”
  • 박 씨 가문 사모님의 말에 박하석은 할 말이 없어졌다.
  • 박하석은 자신의 어머니의 성질이 요즘 많이 거칠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입맛을 잃은 그가 젓가락을 놓더니 말했다.
  • “올라갈게요.”
  • 몸을 일으켜 위층으로 올라간 박하석은 손님방을 지나칠 때 발걸음을 멈추고 굳게 닫힌 방문을 한 눈 봤다. 안에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박하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 마침 손님방에서 나오던 집사는 문 앞에 서있는 박하석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 “안녕하세요, 도련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들어가 보실래요?”
  • 집사가 열정적으로 박하석을 안으로 요청했다.
  • 하지만 박하석은 무심하게 눈 밑에 있던 호기심을 거두고 물었다.
  • “어머니께서 왜 아이를 예진 씨 방에 안배한 거죠?”
  • “예진 씨께서 아이를 데리고 자주 오지 않잖아요. 사모님께서 아이를 너무 한곳에 두면 답답해한다고 하루 건너 방을 바꿔서 살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새로움을 증가시켜줄 수 있다고요. 도련님께서 내일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일은 도련님의 방으로 가서 잘 겁니다. 도련님 방의 구도와 방향이 좋아서 아이가 좋아할 거라고 사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련님께서 시간이 지나도 결혼을 하지 못하면 도련님 방을 비워서 아이를 위해 쓰겠다고 하셨습니다...”
  • 집사의 말을 듣다 보니 박하석은 한순간 자신이 주워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짜증이 나 방으로 돌아온 그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았다.
  • 거칠게 셔츠를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가 손을 씻는 순간 박하석의 머릿속에 갑자기 진서연의 화가 나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얼굴이 떠올랐다. 젠장, 왜 집사의 말을 듣고 난 뒤 그 위선적이고 더러운 여자가 생각난 건지.
  • 귀찮은 기색으로 손을 닦은 박하석은 몸을 돌려 서재로 갔다. 짜증이 난 상태로 일을 하던 그때, 기정수에게 전화가 걸려와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
  • 하지만 박하석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 “시간 없어.”
  • “하석 삼촌, 나와서 저랑 같이 좀 있어주세요. 저 정말 너무 괴로워요...”
  • 기정수가 울먹이며 말했다.
  • 그 목소리를 들은 박하석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 “어디 있는데?”
  • “코블러 바에 있어요.”
  • 기정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 박하석은 반 시간이나 헤매고 나서야 바를 찾았다. 들어섰을 때 기정수는 이미 취해있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테이블 위에는 서너 병의 빈 술병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 박하석을 본 기정수가 눈시울을 붉히더니 말했다.
  • “하석 삼촌, 드디어 왔네요. 삼촌이 저 상관 안 하는 건 줄 알았어요.”
  • 박하석은 기정수의 모습을 보고 언짢은 기색으로 물었다.
  • “그 여자 때문이야?”
  • 기정수가 고통스럽게 술을 크게 한 모금 들이켰다.
  • “오늘 찾아갔었는데 여전히 저를 거절하더라고요.”
  • “그럼 하나 바꿔.”
  • 박하석이 차갑게 대답했다.
  • 하지만 기정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 “저 그 여자 못 잊어요, 정말 못 잊겠어요...”
  • 고개를 들어 박하석의 차가운 눈을 마주한 기정수가 말을 이었다.
  • “하석 삼촌, 정말 정말 가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도 가질 수 없는 그런 느낌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