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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집에 아이가 생겼다

  • 기정수는 진서연을 6년 동안 기다렸다. 그랬기에 쉽게 그녀를 놓아줄 수 없었다. 기정수도 왕강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 “하석 삼촌, 그 여자는 다른 여자랑은 달라요. 저를 떠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평생 그 여자 하나만 사랑해 봤어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 기정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 박하석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 이상한 빛이 깃들었다. 그리고 기정수의 간곡한 부탁을 이기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왕강인을 처리하는 건 너 때문이 아니야, 마침 나도 그 사람이랑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너희 아버지 쪽은 네가 알아서 해.”
  • “감사합니다, 하석 삼촌.”
  • 기정수가 기뻐서 말했다. 그때 그는 자신과 나이도 비슷한 박하석과 형제를 맺은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그 사실 때문에 기정수는 오랫동안 답답했었다. 거기다가 진수영까지 더해져 기정수는 박하석을 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박하석은 자신을 위해 진서연의 일을 숨겨주려 하고 있었다...
  • ‘감동이야!’
  • 앞으로 기정수는 박하석을 자신의 친 삼촌으로 모시기로 했다.
  • 누가 감히 자신의 하석 삼촌에게 욕을 한다면 기정수는 그 사람을 죽여버릴 것이다.
  • 그때 박하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본 박하석은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 “하석아, 정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냐?”
  • 전화를 건 이는 기정수의 아버지였다.
  • “사내자식이 어쩌다 보니 싸움에 휘말린 것 같습니다. 큰일이 아니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그럼 다행이구나.”
  • 기정수의 아버지가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이 자식이 요즘 약이라도 잘못 먹었는지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왕강인을 찾아가서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건지.”
  • 박하석은 냉담하게 간단하게 말했다.
  • “혈기왕성할 나이잖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 전화를 끊은 박하석은 병원을 떠났다.
  • 전찬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업무를 보고하고 있었다.
  • “대표님, 왕강인이 인천을 떠나 도망간 것 같습니다.”
  • 벤틀리의 뒷좌석에 앉은 박하석이 손에 있는 서류를 보고 있었다.
  • “대표님, 걱정 마세요. 당분간은 감히 돌아올 수 없을 겁니다. 정수 도련님을 고소하는 일은 더더욱 할 수 없을 거고요.”
  • 전착혁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 박하석은 ‘응’하고 대답하더니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약혼식을 취소한 일은 회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여러 매체에서 박하석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지금 왕강인을 너무 억눌렀다가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왕강인은 도망갔지만 그의 부하인 진서연은 아직 가지 않았다. 왕강인이 돌아오기 전, 박하석은 이 공모자를 정성껏 대할 것이다.
  • “창고 쪽에 정도 따져가면서 하라고 해, 사람 죽이지 말고.”
  • 박하석이 말했다.
  • 전찬혁은 박하석의 말을 듣곤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박하석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물었다.
  • “집으로 가자.”
  • 박하석이 무심하게 말했다.
  • 차는 천천히 로열 펠리스로 들어섰다. 제일 먼저 박하석을 발견한 집사가 다급하게 위층으로 올라가 말했다.
  • “사모님, 도련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 진천우와 함께 블록 놀이를 하고 있던 박 씨 가문 사모님은 박하석의 이름을 듣자마자 얼굴에 걸려있던 미소를 지우고 집사를 등진 채 말했다.
  • “그 녀석은 왜 돌아온 거야? 꺼지라고 해, 내 눈앞에서 어슬렁거리지 말고.”
  • “사모님, 그만 화 푸세요. 도련님이 아무리 잘못했다지만 사모님 아이가 아닙니까.”
  • 집사가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
  • 진천우도 모이를 먹는 병아리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 “맞아요, 할머니. 할머니 아들은 비록 쓸모없지만 너무 화내지 마세요. 남자잖아요, 아이를 못 낳아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조그마한 녀석이 입을 오물거리며 하는 말과 발그레한 얼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 순간 웃음이 번졌다.
  • “그래, 천우 말이 맞아. 먼저 방에서 놀고 있어. 할머니 얼른 갔다 올게.”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위층에서 내려오자마자 거실의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박하석을 마주했다. 그녀가 다가가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 “이 망할 놈, 집에 올 낯짝이 남아있는 거야? 며느리는? 손주는? 전에 내가 했던 말 못 알아들었어?”
  • “엄마, 손주 얘기 좀 그만하세요. 아이가 그렇게 좋으면 유치원 하나 차려드릴게요. 어때요?”
  • 박하석은 자신의 엄마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서류만 바라봤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박하석을 보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의 손에 있던 서류를 빼앗아 테이블 위로 던졌다.
  • “유치원은 무슨? 이 씨 사모님은 올해 손주를 셋이나 안았단다. 너를 좀 봐봐, 돈을 그렇게나 많이 벌면 뭐 하니? 능력 있는 남자는 딸 아들 다 낳았어!”
  • 박하석은 사모님의 말을 철저하게 외면하며 못 들은 척했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옆에서 그런 박하석을 반 시간 동안이나 훈계했다. 하지만 박하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꺼운 기획안을 전부 훑어봤다. 박 씨 가문 사모님은 계속 욕을 하려고 했지만 위층에서 쨍그랑하는 큰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다급하게 위층을 바라보며 집사에게 물었다.
  • “무슨 소리야?”
  • “꽃병이 깨진 것 같아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 집사가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 박 씨 가문 사모님은 천우가 아직 위층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이가 다쳤을까 봐 걱정이 되었던 그녀는 집사보다도 빠르게 움직여 위층으로 올라갔다.
  • 그 모습을 본 박하석이 눈썹을 들썩이더니 물었다.
  • “예진 씨가 아이를 데리고 온 거예요?”
  • “아니요, 사모님께서 며칠 전 길에서 아이 하나를 다치게 했는데 아이의 부모님이 마침 출장 중이라 사모님께서 임시로 아이를 집에서 보살펴주고 계세요.”
  • 하인이 대답했다.
  • 박하석은 잘 알고 있었다. 약혼을 취소한 일이 발생했는데 자신의 어머니의 성격으로는 진작에 진수영을 찾아가 난리를 쳤어야 하는데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음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보니 이렇게 얌전하게 집에 있은 이유가 모두 집에 아이 하나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 이것도 나름 괜찮았다. 적어도 자신의 어머니의 주의력을 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진서연은 천진하게 재운 그룹에서 이틀 동안 일을 하고서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화가 난 그녀가 팀장님을 찾아가려던 그때, 진수영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창고의 문 앞을 막아선 진수영이 문을 닫았다.
  • 피곤함이 묻어있던 진서연의 얼굴에 순식간에 경계가 서렸다.
  •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 “내가 물어야 할 말 아닌가? 인천에서 떠나라는 거 생각해 봤어?”
  • 진수영이 물었다.
  •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 “네 아들이 내 손에 있으니까 너는 무조건 내 말을 들어야 해.”
  • 진수영의 말을 들은 진서연이 웃었다.
  • “천우 이미 진 씨 저택에서 나왔잖아. 너 나 협박 못해.”
  • 진수영은 진서연이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지 생각 못 했는지 버럭 화를 냈다.
  • “내 약혼식을 망친 걸로는 모자란 거니?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 “누가 누구를 망쳤는지는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
  • 진서연은 무서울 것 없다는 얼굴로 증오하는 진수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 “인천이 네 것도 아니잖아, 내가 떠나든 말든 너랑 상관없어!”
  • “진서연, 너 많이 컸다. 그때 우리 엄마가 너 데리고 집으로 안 왔으면 너 벌써 죽었을 거야. 그런데 감히 누구를 원망하는 거야? 사람이 왜 그렇게 뻔뻔해?”
  • 진수영은 진서연의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 진서연은 차갑게 진수영을 비웃었다. 단지 자신이 주워온 아이라는 이유로 이 모녀 두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결백함과 앞길을 희생해야 하는 걸까?
  • “이미 6년 전에 인연 끊었으니까 너랑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나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저번에 네가 천우 때린 거 나 다 기억하고 있어. 다시 한번 그런 짓 했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거야!”
  • “하, 머리 검은 짐승이 크더니 사람을 물려고 하네. 그래, 네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나랑 싸울 수 있는지 내가 지켜볼게!”
  • 진수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창고로 다가가 진서연이 밤새 정리한 데이터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 그 모습을 본 진서연은 다급하게 달려갔다.
  • “내놔!”
  • “가지고 싶어?”
  • 진수영은 진서연의 앞에서 그녀의 데이터 보고서를 찢어버렸다.
  • 순간 진서연의 주위의 온도가 내려갔다.
  • “사람 너무 업신여기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