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5화 그놈에게 무슨 신분 따위가 있어?

  • “임성준도 임씨 성이니 설마 그분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요...”
  • 조권용의 말이 끝나자 오희연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깔깔 웃었다.
  • “임성준이 그런 인물과 관계가 있다면 내가 무릎을 꿇고 진씨 가문의 사위가 되어달라고 빌겠어!”
  • 오희연은 한껏 비웃었다. 
  • “그럼 임성준이 부대에서 무슨 신분이었죠? 제가 보기엔 간단한 인물은 아녜요.” 
  • 조권용은 조씨 가문의 직계 도련님으로서 오희연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 “신분? 신분 같은 소리 하네! 부대를 이끌던 군인이었다고 해도 몇 년 군 복무 후 퇴역하면 기껏해야 이천만 원 정도의 보상을 받을 거야. 하지만 임성준에겐 뭐가 있지? 구멍 난 옷에 쓸모없는 검, 그리고 나무로 만든 상자가 전부야. 상자 안에 있는 카드엔 돈도 없어! 그 안에 은침도 들어있었지. 그놈이 부대에서 자수나 놓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니까! 그런데 그런 놈에게 무슨 신분이 있어?” 
  • 오희연의 말을 듣자 조권용은 멍하니 있다고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 “그렇네요! 아무리 보잘것없는 군인이었다고 해도 퇴역 후 보상을 받았을 텐데... 그놈은 아무것도 없다니! 아마도 가축이나 기르던 놈인가 보네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 바로 마음이 놓였는지 조권용이 시원하게 웃었다.
  • “걱정하지 마. 정신이 회복돼도 아무 소용 없어. 난 그놈을 내쫓을 방법을 생각해 낼 거야. 그리고 너와 우리 진씨 가문이 이어지게 해야지.”
  • 오희연이 조권용을 흘긋 보며 그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다.
  • “좋아요. 아주 좋아요!” 
  • 조권용은 흥분하며 한 마리의 파리처럼 두 손을 마주 비볐다.
  • “그럼 우리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 “유월이와 임성준은 혼약을 맺었으나 결혼하지 않았어. 부부라고 불릴 수도 없지. 애초에 유월이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집에 남겨둔 것도 매몰차게 굴 수 없어서 그랬을 뿐이야. 하지만 이제 회복했으니 당연히 진씨 가문에 계속 남겨둘 수 없지. 이틀 후, 진가네 큰할머니의 생신이셔. 난 가문의 모든 사람 앞에서 이 사건을 얘기할 거야. 그때가 되면 유월이는 선택권이 없어. 반드시 동의해야 할 거야.”
  • 오희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네! 그럼 전 이모가 좋은 소식 전해주길 기다릴 거예요. 하하.” 
  • 조권용은 흥분해서 얼굴이 상기되어있었다. 오희연 역시 조권용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 조씨 가문은 강진시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조씨 가문과 관계를 맺게 되면 진씨 가문도 예전의 영광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다.
  • 그렇게 되면 오희연은 진씨 가문에서 커다란 공을 세운 공신이 될 것이고!
  • ...
  • 이틀 후.
  • 강진시 성하 호텔.
  • “하늘이 우리 진씨 가문을 돌보고 백 년간 부귀영화를 누리길 바랍니다!”
  • 고급스러운 룸 안에서 진씨 가문의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있었다.
  • 오늘은 진가네 큰할머니 생신이었으니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생신 연회에 참여했다.
  • 그곳엔 진시 가문의 사람 외에 강진시 유명한 가문의 사람도 적잖게 모여있었다.
  • 비록 진영석이 전사한 후, 점차 몰락하여 이미 삼류 가문이 되어버린 진가네였으나 큰 집이 기울어도 삼 년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정도의 체면은 여전히 있었다.
  • 진가네 큰할머니가 테이블의 주인공 자리에 앉아 있었고 주위에 다른 테이블도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 “할머니, 죄송해요! 저희가 좀 늦었네요...”
  • 바로 이때, 룸의 문이 열리더니 진유월이 임성준을 밀고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 할머니는 진유월을 흘긋 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 “어머, 그래도 오기는 오네? 난 네가 할머니 생신 까먹은 줄 알았어!”
  • 진유월의 사촌 진유비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 진유비는 유월의 미모를 질투했으며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를 배척했다.
  • “하, 사람이 자기 본분을 잊으면 안 되지. 누군가는 자기의 뿌리도 잊은 거 아냐? 할머니가 없으면 우리도 없는 거야.”
  • 진씨 가문의 아들 진성우도 입을 삐죽거렸다.
  • 순식간에 진씨 일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진유월을 질책했다.
  • 진유월의 부모님과 큰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했다.
  • 룸 안에 강진시의 다른 권문세가의 사람이 있었으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 2년 전, 진씨 가문에서 임성준이라는 멍청하고 다리도 못 쓰는 폐인을 받아준 후, 진씨 가문은 진작 강진시의 웃음거리가 되어있었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임성준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 “할머니, 성준이 거동이 불편해서 조금 늦었어요...” 
  • 진유월이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
  • “앉거라.”
  • 큰할머니가 손을 저으며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 “어차피 우린 너희들 기다릴 생각 없었어.”
  • 진유비가 네일아트의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를 어루만지며 낮게 중얼거렸다.
  • 진유월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임성준을 밀고 자리를 찾아 앉으려 했다.
  • “이제야 봤네. 너, 이 멍청한 놈도 데려온 거니?”
  • 진씨 가문의 사람은 마치 이제 임성준을 보기라도 한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 “오늘 진씨 일가가 전부 여기 모여서 큰할머니 생신을 축하하잖아요. 성준이 혼자서 집에 있으면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없어요.”
  • 진유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서 있지도, 앉지도 못했으며 그 순간, 마치 어릿광대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되었다.
  • “너 정말 미쳤니?”
  • 오희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유월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 “아직도 깎일 낯이 더 남아있는 거야? 저놈을 여기에 데려오다니! 오늘은 큰할머니 생신이셔. 강진시 권문세가들이 다 모여 있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 오희연이 진유월을 향해 낮게 훈계했다.
  • 임성준은 휠체어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 주위의 모든 사람, 진씨 가문의 어른이나 아이나 강진시 명문 가문이고 할 것 없이 다들 깔보는 시선으로 진유월과 임성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 “하하, 멍청한 놈.”
  • 진성우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코웃음 치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 오희연은 점점 더 얼굴이 뜨거워졌다. 진유월은 마치 폭풍우 부는 바다 위에 홀로 띄워진 배처럼 그들의 야유를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 “진씨 가문은 과거 강진시 일류 가문이었어. 하지만 오늘 삼류가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