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준이 그런 인물과 관계가 있다면 내가 무릎을 꿇고 진씨 가문의 사위가 되어달라고 빌겠어!”
오희연은 한껏 비웃었다.
“그럼 임성준이 부대에서 무슨 신분이었죠? 제가 보기엔 간단한 인물은 아녜요.”
조권용은 조씨 가문의 직계 도련님으로서 오희연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신분? 신분 같은 소리 하네! 부대를 이끌던 군인이었다고 해도 몇 년 군 복무 후 퇴역하면 기껏해야 이천만 원 정도의 보상을 받을 거야. 하지만 임성준에겐 뭐가 있지? 구멍 난 옷에 쓸모없는 검, 그리고 나무로 만든 상자가 전부야. 상자 안에 있는 카드엔 돈도 없어! 그 안에 은침도 들어있었지. 그놈이 부대에서 자수나 놓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니까! 그런데 그런 놈에게 무슨 신분이 있어?”
오희연의 말을 듣자 조권용은 멍하니 있다고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네요! 아무리 보잘것없는 군인이었다고 해도 퇴역 후 보상을 받았을 텐데... 그놈은 아무것도 없다니! 아마도 가축이나 기르던 놈인가 보네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바로 마음이 놓였는지 조권용이 시원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 정신이 회복돼도 아무 소용 없어. 난 그놈을 내쫓을 방법을 생각해 낼 거야. 그리고 너와 우리 진씨 가문이 이어지게 해야지.”
오희연이 조권용을 흘긋 보며 그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조권용은 흥분하며 한 마리의 파리처럼 두 손을 마주 비볐다.
“그럼 우리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유월이와 임성준은 혼약을 맺었으나 결혼하지 않았어. 부부라고 불릴 수도 없지. 애초에 유월이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집에 남겨둔 것도 매몰차게 굴 수 없어서 그랬을 뿐이야. 하지만 이제 회복했으니 당연히 진씨 가문에 계속 남겨둘 수 없지. 이틀 후, 진가네 큰할머니의 생신이셔. 난 가문의 모든 사람 앞에서 이 사건을 얘기할 거야. 그때가 되면 유월이는 선택권이 없어. 반드시 동의해야 할 거야.”
오희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네! 그럼 전 이모가 좋은 소식 전해주길 기다릴 거예요. 하하.”
조권용은 흥분해서 얼굴이 상기되어있었다. 오희연 역시 조권용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조씨 가문은 강진시에서 굉장히 유명했다. 조씨 가문과 관계를 맺게 되면 진씨 가문도 예전의 영광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희연은 진씨 가문에서 커다란 공을 세운 공신이 될 것이고!
...
이틀 후.
강진시 성하 호텔.
“하늘이 우리 진씨 가문을 돌보고 백 년간 부귀영화를 누리길 바랍니다!”
고급스러운 룸 안에서 진씨 가문의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있었다.
오늘은 진가네 큰할머니 생신이었으니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생신 연회에 참여했다.
그곳엔 진시 가문의 사람 외에 강진시 유명한 가문의 사람도 적잖게 모여있었다.
비록 진영석이 전사한 후, 점차 몰락하여 이미 삼류 가문이 되어버린 진가네였으나 큰 집이 기울어도 삼 년 간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정도의 체면은 여전히 있었다.
진가네 큰할머니가 테이블의 주인공 자리에 앉아 있었고 주위에 다른 테이블도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저희가 좀 늦었네요...”
바로 이때, 룸의 문이 열리더니 진유월이 임성준을 밀고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할머니는 진유월을 흘긋 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 그래도 오기는 오네? 난 네가 할머니 생신 까먹은 줄 알았어!”
진유월의 사촌 진유비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진유비는 유월의 미모를 질투했으며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녀를 배척했다.
“하, 사람이 자기 본분을 잊으면 안 되지. 누군가는 자기의 뿌리도 잊은 거 아냐? 할머니가 없으면 우리도 없는 거야.”
진씨 가문의 아들 진성우도 입을 삐죽거렸다.
순식간에 진씨 일가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진유월을 질책했다.
진유월의 부모님과 큰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했다.
룸 안에 강진시의 다른 권문세가의 사람이 있었으나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2년 전, 진씨 가문에서 임성준이라는 멍청하고 다리도 못 쓰는 폐인을 받아준 후, 진씨 가문은 진작 강진시의 웃음거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임성준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할머니, 성준이 거동이 불편해서 조금 늦었어요...”
진유월이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
“앉거라.”
큰할머니가 손을 저으며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어차피 우린 너희들 기다릴 생각 없었어.”
진유비가 네일아트의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를 어루만지며 낮게 중얼거렸다.
진유월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임성준을 밀고 자리를 찾아 앉으려 했다.
“이제야 봤네. 너, 이 멍청한 놈도 데려온 거니?”
진씨 가문의 사람은 마치 이제 임성준을 보기라도 한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늘 진씨 일가가 전부 여기 모여서 큰할머니 생신을 축하하잖아요. 성준이 혼자서 집에 있으면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없어요.”
진유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서 있지도, 앉지도 못했으며 그 순간, 마치 어릿광대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되었다.
“너 정말 미쳤니?”
오희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유월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아직도 깎일 낯이 더 남아있는 거야? 저놈을 여기에 데려오다니! 오늘은 큰할머니 생신이셔. 강진시 권문세가들이 다 모여 있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오희연이 진유월을 향해 낮게 훈계했다.
임성준은 휠체어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 진씨 가문의 어른이나 아이나 강진시 명문 가문이고 할 것 없이 다들 깔보는 시선으로 진유월과 임성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멍청한 놈.”
진성우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코웃음 치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희연은 점점 더 얼굴이 뜨거워졌다. 진유월은 마치 폭풍우 부는 바다 위에 홀로 띄워진 배처럼 그들의 야유를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진씨 가문은 과거 강진시 일류 가문이었어. 하지만 오늘 삼류가 된 것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