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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그에겐 내가 있어!

  • 임성준이 천천히 휠체어 바퀴를 굴리면서 앞으로 이동했다.
  • “임성준?”
  • 진유월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얼굴로 임성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임성준이 이곳에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 조권용도 미간을 팍 구겼다.
  • ‘다리도 성치 못한 놈이 여긴 어떻게 온 거지?’
  • 주위 사람들은 의아하거나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임성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강진시 진씨 집안에 유명한 바보가 있다는 걸 알았다.
  • “임성준, 좋은 말로 할 때 괜히 일 키우지 마.”
  • 조권용은 날카롭게 눈을 번뜩이며 임성준을 위협했다.
  • 그러나 임성준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진유월을 향해 있었다.
  • 임성준이 천천히 휠체어를 밀면서 가까이 다가오자 진유월은 어쩐지 약간 안전해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말이다.
  • “유월아, 우린 그냥 혼약이 있을 뿐이지 결혼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넌 행복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저 사람이 좋다면 난 절대 끼어들지 않을 거야. 지금 당장 떠날 수도 있어. 하지만 저 사람이 싫다면 이 세상에 아무도 네가 싫어하는 일을 강요할 수는 없을 거야.”
  • 임성준은 진유월을 바라보며 진지하고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진유월은 잠깐 당황했고 조권용은 미간을 구겼다.
  • 현장은 떠들썩해졌다. 이제 모든 이들이 다리가 성치 못한 진유월의 약혼자가 그라는 걸 알았다.
  • 임성준과 오랫동안 시선을 마주한 진유월은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임성준의 눈빛에서 진심과 진지함을 보아냈다.
  • “임성준, 어디서 잘난 척을 하고 있어? 네가 어떻게 유월이를 지켜줄 건데? 네 그 성치 못한 다리고? 아니면 네 휠체어로?”
  • 조권용은 코웃음을 치면서 반문했고 어떤 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 “사람은 주제 파악을 잘해야 해. 임성준, 네가 나보다 나은 점이 있어? 너보다는 내가 더 유월이와 잘 어울려!”
  •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흰색 정장을 입은 조권용은 마치 백마 탄 왕자 같았다. 임성준은 비록 외모가 강인하고 멋있지만 옷차림이 소박한데다가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 그 누구라도 지금 조권용이 진유월의 옆에 서 있는 것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이다. 두 사람은 하늘이 점지해준 인연 같았다.
  • “너한테 뭐가 있는데? 말해봐.”
  • 조권용은 임성준이 대꾸하지 않자 다시 한번 물었다.
  • “아무것도 없어. 너보다 잘난 것도 없고. 하지만 성준이한테는 내가 있어.”
  • 돌연 진유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임성준의 옆에 서더니 휠체어 위에 손을 올렸다.
  • 그녀의 어조는 고집스러웠고 또 결연했다.
  •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장미꽃 대신에 휠체어를 미는 걸 선택하다니? 진유월은 멍청한 것일까?
  • 임성준은 깊이 감동하였다.
  • “너!”
  • 조권용은 너무 수치스러워 울화통이 치밀었다.
  • “유월아. 가난한 부부는 근심 걱정이 가득하다는 말 못 들어 봤어? 저놈은 너한테 아무것도 주지 못해. 네 발목만 붙잡을 거야! 너 매일 오토바이 타고 출근하잖아.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말이야. 그래서 널 위해 차를 샀어.”
  • 조권용은 앞으로 나서더니 그쪽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고 5, 6명의 청년이 앞으로 나서더니 거대한 박스를 열었다.
  • “슥!”
  • 박스를 여는 순간 수없이 많은 풍선이 하늘로 날아갔다. 곧이어 흰색의 벤츠가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와! 벤츠 최신 상품이잖아. 1억 2천만 원은 할 텐데.”
  • “진짜 통이 크네! 너무 부럽다!”
  • “저 여자 바보 아냐? 벤츠를 거절하고 휠체어를 선택해?”
  • 사람들은 연신 놀란 소리를 냈다.
  • “유월아. 얘기해봐. 저놈이 너한테 뭘 줄 수 있는데? 너 저놈이랑 있으면 매일 오토바이 타고 출근해야 해. 해가 쬐든 비가 내리든 말이야. 그게 사랑 같아? 아니, 그건 비극이야!”
  • 조권용은 앞으로 나서면서 덤덤히 물었다. 진유월은 이번에 대꾸하지 못했다.
  • 그녀가 아무리 잘 반박한다고 해도 임성준은 그걸 사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 “임성준, 너 이런 것 살 수 있어?”
  • 조권용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임성준을 바라보았다.
  • “난 이런 쓰레기는 사지 않아. 유월이한테 주기에는 너무 격 떨어지거든.”
  • 임성준의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 1억 2천 만 원짜리 벤츠가 격이 떨어진다고? 그러면 휠체어는 격이 안 떨어지고?
  • 조권용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임성준은 정말로 멍청이였다.
  • “그런데 넌 그런 쓰레기조차 살 형편이 못 되지.”
  • 조권용은 코웃음을 치더니 진유월을 보며 말했다.
  • “유월아, 네가 고개만 끄덕인다면 그 오토바이 버리고 벤츠 타고 출퇴근할 수 있어.”
  • “난 필요 없어...”
  • 진유월은 흰색 벤츠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집스레 고개를 돌려 대꾸했다.
  • “빵빵!”
  • “윙윙윙!”
  • 진유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 곳에서 다급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 독특한 소리는 창공을 뚫을 듯했지만 굉장히 감미로웠다.
  • “미쳤나 봐! 페라리 488이야. 엄청 비싼 차잖아!”
  • “최저가가 8억 1600만 원이라던데.”
  • 사람들의 감탄 속에서 빨간색 페라리 488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빨간색의 유광 페인트는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사람들의 시야를 환히 밝혔다.
  • “임 선생님, 드디어 찾았네요.”
  • 한 중년 남자가 정중한 태도로 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