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8화 1억을 밟아 없애다

  • “참으로 안타깝군요!”
  • 노인은 흥분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더니 밟아서 뭉개진 약을 조금씩 줍기 시작했다.
  • 노인의 모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얼이 빠졌다.
  • 무슨 상황이지?
  • 노인은 마치 미친 것으로 보였다.
  • “이 대표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 진성우는 미간을 구기며 이 대표를 보며 물었다.
  • 이 대표는 진성우에게 대꾸할 틈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 “이, 이건 어디서 난 거죠?”
  • 노인은 서서히 고개를 들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 “휴, 선생님. 이건 어떤 바보가 가져온 쓰레기입니다.”
  • 진성우는 하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비죽였다.
  • 진씨 집안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하, 하하... 이게 쓰레기라면 다른 것도 전부 쓰레기죠! 이 청심양신환은 쓰레기 중의 쓰레기일 겁니다.”
  •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냉소를 흘렸다.
  • “뭐라고요?”
  •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 이 대표가 가져온 청심양신환은 분명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 이씨 제약은 이 단약을 경매한 적이 있었고 경매가는 4,000만 원에 달했다.
  • 그런데 노인은 청심양신환을 임성준이 가져온 단약과 비교하면서 쓰레기보다 못하다고 했다.
  • 그렇다면 그 단약은 4,000만 원보다 훨씬 비싸다는 걸 의미했다. 어쩌면 1억짜리일지도 모른다.
  • 조권용이 1억을 밟아 없앴다고?
  • 그런 생각이 들자 진씨 집안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조권용을 바라보았다.
  • 조권용은 흠칫하더니 다급히 말했다.
  • “선생님, 헛소리하시면 안 됩니다!”
  • “조권용 씨, 정수호 선생님은 저희 이씨 제약의 귀한 손님입니다. 20여 년 동안 의학을 전공하신 분이에요. 그런 분이 헛소리한다니요?”
  • 노인이 대꾸하기도 전에 이 대표가 덤덤히 말했다.
  • 조권용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는 잠깐 침묵하더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 “이건 원래 쓰레기예요. 저희 집안도 약재 장사를 하는데 제가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 “그럼 나한테 얘기해보게. 이 단약에 어떤 약재가 들어갔는지, 그 효능이 무엇인지 말일세.”
  • 정수호의 반문에 조권용은 다시 한번 말문이 막혔다.
  • “이제 얘기해보게. 어떤 빌어먹을 놈이 이렇게 진귀한 약을 이렇게 밟아버렸는지 말이야!”
  • 정수호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그의 눈빛에서 강렬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조권용도 얼굴이 벌게져서 침묵을 유지했다.
  • 잠시 뒤 정수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진씨 집안이 명문이라고 이곳 강진시에 도착해 특별히 방문한 것인데 다 안목이라고는 전혀 없는 우물 안 개구리일 줄은 몰랐습니다. 참으로 실망스럽군요.”
  • 정수호는 손을 내저으며 완전히 으스러진 단약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몸을 돌려 떠났다.
  • 이 대표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 “저 단약을 바보가 가져왔다고 하셨습니까? 그 집안의...”
  • “그래. 바로 그자야...”
  • 진가네 어르신은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번에 다시 찾아뵐게요.”
  • 이 대표는 인사를 건네고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
  • 이 대표와 정수호가 떠난 뒤 룸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 그들 모두 멍청이 임성준이 어떻게 저런 귀한 물건을 구한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 이씨 제약의 귀한 손님인 정수호 선생까지 그것을 보물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 강진시의 재벌가들은 분위기가 좋지 않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고 룸 안에는 진씨 집안사람과 조권용만 남았다.
  • “큼, 정수호 선생님이 잘못 알아보셨나 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저 단약은 사람을 해치지는 않아도 기껏해야 몸보신할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 조권용은 마른기침한 뒤 억지로 설명했다.
  • 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진씨 집안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일단 그 일은 그만 얘기하지.”
  • 진가네 어르신은 미간을 구긴 채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어르신, 그러면 저와 유월의 일은...”
  • 조권용은 코를 만지작거리면서 다시 물었다.
  • “일단은 유월의 뜻을 물어봐야겠어.”
  • 진가네 어르신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녀는 문득 임성준이 어쩌면 꽤 예사롭지 않은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잘 알아보기 전까지는 조권용의 일은 그냥 놔둘 셈이었다.
  • “알겠어요.”
  • 조권용은 내키지 않았으나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다.
  • ‘그래, 진씨 집안 주제에 계속 그렇게 나와 봐! 내가 진짜 진유월을 갖게 된다면 진씨 집안까지 전부 집어삼켜 줄 테니까!’
  • ...
  • 강진 호수.
  • 진유월은 임성준의 휠체어를 밀면서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산책했다.
  • “성준아, 차라리 아무것도 주지 말지, 왜 그런 걸 선물로 준 거야?”
  • 진유월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더니 호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그녀의 눈동자에는 억울함과 실망이 가득했다.
  • “내가 선물로 드린 단약은 아주 귀한 물건이야. 다만 그들이 그걸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야.”
  • 임성준은 진유월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 진유월은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 임성준은 2년 동안 정신이 온전치 못했고 휠체어에 앉게 된 지도 어언 2년이 되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귀한 물건을 드릴 수 있단 말인가?
  • 진성우가 말했다시피 임성준에게 진짜 그렇게 영험한 약이 있다면 왜 먼저 자기 몸을 고치지 않은 것일까?
  • “진씨 집안사람들은 원래도 너에게 불만이 많았어. 이런 일이 있었으니 앞으로 널 더 아니꼽게 볼 거야. 이러다가는 계속 진씨 집안에 있을 수 없을 거야. 알아?”
  • 진유월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임성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했고 억울함과 슬픔이 묻어있었다.
  • 그 순간 임성준은 무척 마음이 아팠다.
  • 그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으나 진유월이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건 그 때문이었다.
  • 그녀는 할머니의 생신 파티에서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내쫓겼다. 장애를 가진 약혼자의 휠체어를 밀면서 내쫓겼으니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 “진씨 집안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내가 진씨 집안에 남아있는 건 너 때문이야.”
  • 임성준은 진유월을 보면서 천천히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