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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 세 대의 차는 진씨 저택 앞에 멈추어 섰고 곧이어 검은색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 모든 경호원들이 임성준을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 오희연은 얼이 빠졌고 진유월은 넋이 나갔다.
  •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 사람들은... 누구지?
  • 벤틀리, 파나메라 모두 값비싼 차였다.
  • 게다가 사람들은 공손하게 임성준 님이라 불렀다.
  • 그 광경에 진유월과 오희연은 속으로 경악했다.
  • 임성준은 다리가 성치 않은 쓸모없는 놈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사는 집안의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일까?
  • 임성준마저 다소 의문스러웠다. 그는 강진시에 아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 “임성준 씨, 저는 이씨 제약의 이호민입니다. 이곳에 온 이유는 임성준 씨를 저희 집으로 모시고 싶어서예요.”
  • 바로 이때 이호민이 걸음을 내디디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임성준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 “헉!”
  • 진유월은 헛숨을 들이켰다.
  • 이씨 제약이 강진시에서 얼마나 유명한지는 말할 필요가 없었고, 이호민은 이씨 제약의 직계 이사회 구성원으로 신분이 어마어마했다.
  • 적어도 지금의 진씨 집안은 이씨 제약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 그런데 이호민이 임성준을 모시러 친히 이곳까지 방문하다니?
  • 게다가 이호민은 임성준이 선물로 드린 단약이 독약이라고 했다고 오희연이 말했다. 그런데 왜 임성준에게 이렇게 공손하게 구는 걸까?
  • 진유월은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 반대로 오희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임성준은 이호민을 힐끗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호민이 강진시의 재벌이고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임성준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 임성준은 과거 서북 대원수였고 어린 나이에 구성 총사령관이 되었다. 돈이든 권세든 뭐든 누릴 수 있었다.
  • “임성준 씨, 부디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 이호민은 임성준이 아무 말도 없자 살짝 불만스러웠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 “성준아, 이 대표님 체면도 생각해야지.”
  • 진유월은 잠깐 침묵하다가 임성준에게 말했다.
  • “네가 하라고 했으니까 할게.”
  • 임성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휠체어를 밀면서 이호민에게 다가갔다.
  • 두 명의 검은색 옷을 입은 경호원이 앞으로 나오더니 임성준을 살짝 밀었다.
  • “이 대표님, 왜 성준이를 찾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 진유월은 마음속으로 긴장을 억누르며 용기 내 물었다.
  • “임성준 씨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요. 도와주셔서 고맙네요, 진유월 씨. 저희 집안과 진씨 집안이 앞으로 많이 왕래했으면 좋겠네요.”
  • 이호민은 미소를 띤 얼굴로 진유월에게 말한 뒤 차에 오르려 했다.
  • “다리가 불편하니까 신경 좀 써주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시고요.”
  • 진유월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 이호민에게 당부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진유월 씨. 임성준 씨는 저희 쪽에서 잘 살피겠습니다.”
  • 이호민은 싱긋 웃더니 직접 임성준을 부축해 차에 태웠다.
  • 세 대의 차는 곧 떠났다.
  • 진유월은 서서히 몸을 돌리더니 오희연을 바라보았다.
  • “엄마, 저한테 할 얘기 없으세요?”
  • 진유월은 미간을 구긴 채로 오희연에게 덤덤히 물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 이호민이 임성준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오희연이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무, 무슨 얘기를 해?”
  • 오희연은 얼굴이 살짝 빨갛게 되면서 반문했다.
  • “만약 성준이가 진짜 독약을 선물로 드렸다면 이 대표님이 성준이에게 이렇게 공손할 이유가 없잖아요?”
  • 진유월은 오희연을 바라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내가 어떻게 알겠니? 어쩌면 이씨 제약이 요즘 그런 독약을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 오희연은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우기기 시작했고 진유월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 “성준이가 돌아오면 성준이한테 물을게요.”
  • 진유월은 그 말만을 남기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오희연은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 임성준이 꺼낸 단약이 아주 귀한 물건이라고 해도 그게 뭐? 겨우 단약 한 알을 어떻게 강진시 조씨 집안의 권세와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 조권용이야말로 오희연 마음속의 이상적인 사위였다.
  • ...
  • 차 안.
  • “임성준 씨, 임성준 씨를 모신 건 부탁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 이호민은 잠시 침묵하다가 임성준에게 말했다.
  • 그는 임성준이 신의라는 걸 믿지 않았지만 정수호의 말은 믿었다. 그래서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 임성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천성적으로 말수가 적은 편이었고 오직 진유월의 앞에서만 그나마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 “임성준 씨께서는 의술에 조예가 깊으시죠?”
  • 이호민은 임성준의 성격에 익숙해졌는지 다시 한번 물었다.
  • “조금 압니다.”
  • 임성준은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다면 임성준 씨께서 꼭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어르신께서 난치병에 걸리셨는데 3년 동안 호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요.”
  • 이호민은 간절한 말투로 말했다.
  • “제가 만든 단약이 독약이라고 하셨나요?”
  • 그 일을 떠올린 임성준은 이호민을 보는 눈빛이 차가워졌다.
  • “네? 전 그런 적 없습니다. 임성준 씨께서 만드신 단약은 정말 보기 드문 귀한 약인데 독약일 리가 없죠.”
  • 이호민은 잠시 당황하더니 다급히 설명했고 임성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이호민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직접 임성준을 데리러 왔을 리도 없었다.
  • 그렇다면 오희연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목적은 임성준을 내쫓기 위해서일 것이다.
  • “부디 도와주세요.”
  • 이호민은 임성준의 표정을 살피며 정중하게 말했다.
  • “전 관심 없습니다. 그 일 때문이라면 다시 데려다주세요.”
  • 임성준은 무심한 얼굴이었다. 그는 이씨 집안 어르신의 병을 봐주는 것에 흥미가 없었다.
  • “그... 임성준 씨, 인심 좋은 의사로서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 이호민은 이를 살짝 악물면서 임성준에게 말했다.
  • “남이 죽든 말든 저랑 무슨 상관이죠? 그리고 제가 왜 그쪽을 도와야 하는 거죠?”
  • 임성준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인심 좋은 의사라고?
  • 임성준은 그냥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왼손에 은침을 들고 오른손엔 호국신검을 든다. 사람을 살릴 수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 “그건...”
  • 임성준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다급히 말했다.
  • “원하시는 금액이 있으면 말씀해주시죠.”
  • 막 거절하려던 참에 임성준은 문득 진유월 집안의 상황을 떠올렸고 저도 모르게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솔직히 얘기해서 진씨 집안이 강진시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건 임성준 때문이기도 했다.
  • 임성준은 은혜와 원한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 “가능하다면 진씨 집안을 많이 도와주세요.”
  • 임성준은 그런 생각이 들자 덤덤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 “알겠습니다!”
  • 이호민은 자신감에 넘치는 얼굴로 가슴팍을 툭툭 치면서 다짐했다. 임성준은 고개만 끄덕일 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 이호민은 잠시 망설였지만 여전히 믿음직스럽지는 않았다. 임성준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씨 어르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걸까?
  • “임성준 씨는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 이호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임성준에게 물었다.
  • “저조차 치료하지 못한다면 장례를 준비하세요.”
  • 임성준은 시선을 앞에 둔 채로 평온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