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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틀린 것 하나 없다

  • “그게 무슨!”
  • 이호민은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 그는 임성준이 이렇게 돌직구를 날릴 줄은 몰랐다.
  • 하지만 말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임성준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직접 봐야 알 수 있었다.
  • ...
  • 강진시 이씨 저택.
  • 강진시의 제일 큰 약재상으로 이씨 집안은 자금이 많았다.
  • 이씨 집안은 땅을 사서 그 위에 저택을 지었고 그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저택 앞에는 거대한 인공 호수가 있었고 햇빛이 내리비치어 수면이 반짝였다.
  • 차가 멈췄고 이호민은 임성준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힌 뒤 저택 안으로 향했다.
  • “세 면에 물이 있으나 뒤에 억눌러줄 산이 없군요.”
  • 임성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이호민은 그의 말에 살짝 당황하더니 놀란 얼굴로 임성준을 바라보았다.
  • 이씨 저택의 풍수를 위해 이호민이 큰돈을 들여 사람을 고용했었고 그들은 나침반이나 연역적 추론을 통해 자세히 탐측해서 이와 같은 결론을 얻었었다.
  • 그런데 임성준은 한눈에 그것을 꿰뚫어 보았다.
  • “임성준 씨, 풍수도 아십니까?”
  • 이호민은 놀라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 “이곳저곳 많이 다니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 임성준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손을 내저었다. 이호민은 더는 묻지 않았지만 이미 임성준을 달리 보고 있었다.
  • 그들은 곧 저택의 뒤쪽에 도착했다.
  • “오늘 어르신을 만나러 온 손님이 있나요?”
  •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이호민은 안에서 웃음소리를 듣고 하인에게 물었다.
  • “큰 도련님, 허빈 씨께서 오셨습니다.”
  • 하인은 다급히 공손하게 대답했고 이호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임성준의 휠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 안으로 들어가 보니 노인이 상석에 앉아 있었고 아래에는 젊은이 한 명과 노인 한 명이 앉아있었다. 세 사람은 즐겁게 담화를 나누고 있었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보였다.
  • “어르신.”
  • 이호민이 안으로 들어와 어르신께 인사를 건넸다.
  • “호민이 왔니?”
  • 어르신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형님, 이분은 누구세요?”
  • 이호민의 매부 허빈은 미간을 구기며 임성준에게 물었다.
  • “이분은 임성준 씨야. 어르신의 병을 보이려고 모셔 온 손님이야.”
  • 이호민은 매부를 별로 반기지 않는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하, 형님 장난치지 마세요. 다리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어르신의 병을 보인다고요? 안 그러셔도 될 것 같네요. 제가 어르신을 위해 어렵게 성진에서 구희찬 선생님을 모셔 왔거든요.”
  • 허빈은 우쭐한 얼굴로 말하더니 이내 정중한 태도로 그 노인을 바라봤다.
  • 이호민은 그 말에 살짝 당황했다. 구희찬은 유명한 사람이었고 예전에 이호민도 그에게 연락해 보았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허빈이 한발 앞설 줄은 몰랐다.
  • “휴, 허빈아, 그런 얘기하면 안 되지. 여기 온 사람들은 전부 손님이야. 얼른 앉거라!”
  • 이씨 어르신은 덤덤히 웃어 보였다. 그는 겉보기에 자애로워 보였다.
  • “네!”
  • 이호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임성준은 자신이 직접 휠체어를 밀며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 구희찬은 고개를 들어 임성준을 힐끗 보더니 관심이 없는 듯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 “조금 전 어르신을 진단해 보았는데 체내의 습열 때문인 듯합니다. 이런 체질은 몸이 허약해 쉽게 병을 앓아요. 어르신은 젊었을 적 사업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고 그로 인해 병이 쌓인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버틸 수 있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의 각종 기능이 떨어지게 되며 빈번히 병을 앓게 되는 것이죠.”
  • 구찬희가 말을 마치자 허빈은 선망이 깃든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구 선생님, 역시 의학 업계의 대가다우시군요!”
  • 허빈은 연신 그를 칭찬했다.
  • 이호민은 미간을 약간 구기더니 임성준에게 물었다.
  • “임성준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형님, 뭘 또 보십니까? 구 선생님께서 이미 진단하셨으니 처방만 내리면 되는걸요.”
  • 허빈은 임성준을 힐끔 보면서 조롱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 이호민은 불만스러웠지만 뭐라고 얘기하지는 않고 임성준을 바라보았다
  • 임성준은 이씨 어르신을 잠깐 보았다가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 “하하! 구 선생님, 그냥 얘기해주시죠.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았습니까? 생로병사는 원래 자연스러운 이치 아닙니까?”
  • 이씨 어르신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이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 “제가 있으니 어르신께서는 안전할 겁니다. 여기 오기 전에 허빈 도련님이 제게 어르신의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약도 이미 챙겼죠.”
  • 구천희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덤덤히 말했고 곧이어 작은 박스 하나를 천천히 꺼냈다.
  • “어르신, 지금 복용하시면 됩니다.”
  • 구천희는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 “그래요. 한 번 시험해봐야겠군요!”
  • 이씨 어르신은 덤덤히 웃으며 손을 뻗었다.
  • “이건 무슨 약입니까?”
  • 바로 그때 줄곧 말이 없던 임성준이 천천히 물었다.
  • “습열에 쓰이는 약이지.”
  • 구천광은 같잖다는 눈빛으로 임성준을 힐끗 보았다.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자신과 고객을 빼앗으려 하다니, 참으로 우스웠다.
  • “죽고 싶으면 드세요.”
  • 임성준의 이어진 말에 단약을 입 안에 넣으려던 이씨 어르신은 돌연 멈췄다.
  • “이 자식이! 그게 무슨 뜻이야?”
  • 허빈은 테이블을 쾅 치며 일어서더니 임성준을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 임성준은 허빈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 “자네 그게 무슨 뜻인가? 난 어르신의 병을 진단했는데 자네는 어르신을 죽으라고 저주하는 것인가?”
  • 구천희는 코웃음을 치더니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말했다.
  • “전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 임성준이 덤덤히 말했다.
  • “젊은이가 말은 쉽게 하지. 그럼 내 약이 무엇 때문에 어르신을 죽게 하는지 한 번 얘기해 보지 그래? 한의학에서는 시진, 문진, 청진, 타진이 기초가 되지. 자네는 진맥도 하지 않고 어르신의 상황 또한 묻지 않았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네가 어떻게 어르신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알 수 있단 말인가?”
  • 구천희는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임성준을 보았다.
  • 의학계에서 유명한 구천희는 자신감이 넘쳤다.
  • “그러니까 말에요. 몸도 성치 않으면서, 왜 자신의 다리는 치료하지 않는대요? 그러면서 의사인 척하기는.”
  • 허빈은 굉장히 불만에 차 있었고 모욕적인 언사를 뱉었다.
  • “오후에 체온이 오르는 건 오후의 오수조열병과 증상이 비슷하죠. 저녁 여덟 시 이전에는 체온이 서서히 내려가지만 열 시가 되면 온몸이 아프면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죠.”
  • 임성준은 평온한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헉!”
  • 이씨 어르신은 고개를 번쩍 들어 임성준을 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약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임성준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 밤만 되면 고통스러워 이곳저곳 의사를 찾아다녔었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 “임성준 씨, 치료할 방법이 있을까요? 병을 치료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그 고통을 덜어주기만 해도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 어르신은 흥분한 얼굴로 임성준을 보았다.
  • 이씨 어르신의 반응에 허빈과 구천희는 전부 넋이 나갔다. 임성준이 정말 의술을 아는 것일까?
  • 이호민은 갑자기 기가 살았다.
  • “한 번 해볼게요.”
  • 임성준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요. 그래요! 임성준 씨, 제가 뭘 해야 합니까?”
  • 이씨 어르신은 손바닥을 비비면서 다시금 물었다.
  • “이리로 와 제 앞에 앉으시죠.”
  • 임성준은 자신의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 “알겠어요.”
  • 이씨 어르신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의자를 들고 와 임성준의 앞에 앉았다.
  • “어르신께 뭘 하려는 거야?”
  • 허빈은 냉소를 흘리더니 임성준을 보며 말했다.
  • 임성준이 손목을 한 번 돌리자 은침이 담긴 박스가 손에 나타났다. 허빈과 이호민 등은 임성준의 동작도 잘 보지 못했다.
  • “하, 침술? 침구학을 10년 동안 연구한 나도 쉽게 침을 놓지 못하는데. 그리고 어르신의 이 병은 침술로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 구천희는 냉소를 흘리더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고 곧이어 임성준 쪽을 바라봤다.
  • “풉!”
  •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구천희는 차를 내뿜더니 삽시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 “헉! 태성 침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