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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무슨 체면?

  •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불러서 모은 걸 보면 또 무슨 짓을 벌이는 게 분명했다.
  • “유월아. 오늘은 내 생일이야. 네가 나랑 만나줬으면 좋겠어!”
  • 조권용은 진유월이 있는 회사 건물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회사 건물에서 많은 사람이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보았다.
  • “와! 정말 낭만적이다!”
  • “꽃이 엄청 많아. 풍선도 많고!”
  • “진유월 씨, 누가 진유월 씨한테 공개 고백하는데요?”
  • 삽시간에 회사의 많은 사람이 흥분한 얼굴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 정장을 입고 자리에 반듯하게 앉아있던 진유월은 그들의 말에 참지 못하고 미간을 구겼다.
  • 동시에 그녀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 미모가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 진유월의 미모는 강진시에서 손꼽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녀를 짝사랑하는 사람도 매우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임성준을 깡그리 무시했다.
  • 임성준은 바보고 다리도 성치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지금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여전히 다리가 성치 못했다. 그의 앞에서 그의 약혼녀에게 구애해도 그가 어쩌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진유월은 단 한 번도 임성준에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 “진유월 씨, 아래 한 번 내려가 보는 게 어때요?”
  • “맞아요. 성의도 있는데.”
  • 여직원들은 약간의 시기와 경멸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 진유월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데 또 다른 남자가 들이댈 줄은 몰랐다.
  • “유월아, 너 안 내려오면 나 안 갈 거야!”
  • 창밖에서 다시 한번 조권용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제가 내려가서 돌려보낼게요.”
  • 진유월은 몸을 일으키더니 아래층으로 향했다.
  • 그렇게 임성준은 곧 진유월이 회사 대문 앞에 나타난 걸 보았다.
  • “정말 내려왔어?”
  • 임성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먼 곳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진유월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 “유월아! 드디어 내려왔네! 이 장미꽃은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강진시 장미꽃밭에서 금방 딴 거야! 99송이야!”
  • 조권용은 안고 있던 장미 한 다발을 진유월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 “와! 너무 부럽다!”
  • “99송이 장미꽃이래! 강진시 장미꽃밭에서 금방 딴 꽃이라니, 비쌀 텐데.”
  • “돈도 많고 통도 크네. 정말 부러워.”
  • 주위 사람들은 의논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여자들은 부러움 가득한 얼굴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나 진유월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장미를 건네받지 않았다.
  • “고맙지만 필요 없어.”
  • 진유월은 평온한 얼굴로 덤덤히 거절했다.
  • “유월아, 너희 어머니가 그러던데 네가 꽃을 좋아한다고 하더라. 내가 꽃을 선물로 줬는데 왜 안 받는 거야? 오늘은 내 생일이야. 네가 나한테 선물을 줄 필요는 없어. 내가 너한테 선물을 주고 싶어!”
  • 조권용은 얼굴을 붉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거절당했으니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했다.
  • “내가 꽃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내가 알아서 살 거야. 내가 사지 않는다고 해도 네가 선물로 줄 필요는 없어.”
  • 진유월은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 “유월아. 내 선물을 받지 않을 거야? 임성준한테서 꽃을 선물 받길 기다리는 건 아니지?”
  • 조권용은 서서히 손을 거두면서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 “성준이가 준다면 받을 거야.”
  • 진유월은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조권용에게 말했다. 조권용은 넋이 나갔다.
  • 멀리 떨어져 있던 임성준은 천천히 휠체어 손잡이를 꽉 쥐었다. 진유월의 말을 듣자 임성준은 이 세상의 모든 장미꽃을 그녀에게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 “안타깝게도 임성준은 일어서지도 못 해. 장미꽃을 살 돈도 없고.”
  • 조권용은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러면 내가 돈 벌어서 사면 되지.”
  • 진유월은 빨간 입술을 깨물면서 결연히 말했다.
  • 임성준이 준다면 받을 거고 임성준이 주지 못한다면 직접 돈 벌어서 사면 된다. 얼마나 확고한 의지인가?
  • “조권용. 난 약혼자가 있는 몸이야. 날 좋아해 주는 건 고맙지만 받아주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얼른 떠나.”
  • 진유월은 말을 마친 뒤 몸을 돌려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 “유월아!”
  • 조권용은 그녀에게 다가가 진유월의 흰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 임성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더는 기다리지 않고 곧장 휠체어를 타고 앞으로 향했다.
  • “뭐 하는 거야?”
  • 진유월은 미간을 구기며 조권용의 손을 쳐냈다.
  • “유월아, 오늘은 내 생일이야. 내 체면 좀 생각해줘...”
  • 조권용은 소리를 낮추면서 진유월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 “아니, 싫어. 난 얼른 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성준이 돌봐줘야 해.”
  • 진유월은 미간을 구겼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워져 있었다.
  • 동시에 그녀는 억울하기도 했다.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파리 새끼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 ‘임성준이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했다면 주먹으로 이 파리 새끼들을 전부 쫓아줄 수 있었겠지?’
  •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바람이었다.
  • “유월아! 내가 오늘 널 위해 선물을 하나 더 준비했어. 이건 반드시 받아줬으면 해! 내 체면을 봐서라도 말이야!”
  • 조권용은 다시 한번 앞으로 나서며 진유월에게 말했다. 그는 곧 손을 뻗어 먼 곳에 있는 커다란 박스를 가리켰다.
  • “네가 무슨 체면이 있어?”
  • 바로 그때 조화롭지 못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