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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뛰어난 자가 스승

  • 구천희는 경악했다.
  • “구 선생님, 무슨 침술이요?”
  • 태성 침술을 모르는 허빈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 “말하지 마시죠!”
  • 구천희는 호통을 쳤고 허빈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 구천희는 허빈에게 설명해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임성준의 동작을 빤히 바라보았다.
  • 임성준은 아주 숙련된 솜씨로 어르신을 의자에 기대앉게 하더니 은침을 간단히 소독한 후 침을 놓기 시작했다.
  • 은침은 서늘한 빛이 돌고 있고 길이도 일정하지 않아 엄청 위험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극도로 위험해 보이는 은침을 임성준이 들고 있으니 꽤 볼만했다.
  • 손을 들고 내릴 때마다 은침이 정확히 혈 자리에 꽂혔다.
  • ‘단중혈, 명문혈, 중완혈...’
  • “헉!”
  • 구천희는 속으로 읊으면서 눈을 더욱 크게 떴다.
  • 침을 혈 자리에 놓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 정확한 혈 자리에 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깊이까지 완벽히 장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 임성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시는 것처럼 대충 침을 놓는 건 같았다.
  • 손을 들고 내리는 것이 반복됐고 임성준이 들고 있던 은침은 거의 다 어르신의 혈 자리에 놓였다. 허빈과 이호민은 어르신의 몸에 꽂힌 은침을 보자 심장이 마구 떨렸다.
  • 구천희는 그의 한계가 있는 침구 지식으로 보아도 임성준이 아주 정확히 침을 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 시간이 걸려야 겨우 완성했을 일을 그는 삼십초도 걸리지 끝냈다.
  • “탁!”
  • 임성준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고 아홉 개의 은침은 마치 생명을 부여받은 듯이 끝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 “헉! 진짜, 진짜 태성 침술이었다니!”
  • 구천희는 완전히 얼이 빠져서 저도 모르게 놀란 소리를 냈다.
  • 임성준은 고개를 돌려 구천희를 힐끗 보더니 덤덤히 말했다.
  • “안목이 좀 있네요.”
  • “네! 네!”
  • 구천희는 얼굴이 벌게지더니 곧장 입을 다물고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 그러나 구천희의 눈은 임성준의 손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임성준은 동작이 무척 빨랐고 자세히 살펴볼 수가 없었다.
  • 5분 뒤, 임성준은 손을 휙 움직이더니 재빨리 아홉 개의 은침을 회수했다.
  • “어르신, 어떠십니까?”
  • 임성준은 천천히 상자를 닫고 덤덤히 물었다.
  • “후!”
  • 쭉 눈을 감고 있던 이씨 어르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이호민 등은 그제야 어르신의 얼굴에 땀이 가득한 걸 발견했다. 날이 별로 덥지도 않은데 어르신은 마치 비에 젖은 듯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게다가 그가 흘린 땀방울은 투명한 색이 아니라 먼지가 섞인 듯한 색이었다.
  • “시원해요! 편하군요! 찜질방에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시원하군요!”
  • 이씨 어르신은 땀을 쓱 닦았다. 마치 순식간에 10살은 어려진 듯이 온몸이 가벼웠다.
  • “임성준 씨, 고마워요.”
  • 이호민은 그 모습에 기분이 들떠 곧바로 임성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 임성준은 손을 휘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임성준 씨, 이 늙은이의 병을 고쳐줘서 고맙군요. 우리 이씨 집안에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 편히 말씀하세요. 우리 이씨 집안은 이곳 강진시에서 꽤 잘 나가니깐요.”
  • 이씨 어르신은 몸을 일으키더니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임성준을 보았다.
  • “어르신, 그럴 필요 없지 않나요? 그저 간단한 침술을 한 것뿐이잖아요. 별로 대단한 것도 없던데요. 일단 효과를 보셔야죠.”
  • 허빈은 미간을 구기면서 불쾌함을 드러냈다.
  • 그가 구천희를 데려와 어르신의 병을 보이려 한 것은 어르신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호민이 어디서 다리도 성치 않은 놈을 데려와 그의 계획에 훼방을 놓은 것이다!
  • 허빈은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 “필요 없다. 이미 다 나았다는 확신이 들거든.”
  • 이씨 어르신은 크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 “어르신, 안 돼요! 어르신이나 저 다리도 성치 않은 놈이 나았다고 해서 나은 게 아니죠. 구 선생님이 진맥해서 보시죠!”
  • 허빈은 그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려 구천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 “어떻게 생각하세요, 구 선생님?”
  • 구천희는 허빈을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임성준을 보고 있었다.
  • 바로 다음 순간 구천희는 갑자기 앞으로 걸어가더니 임성준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 “임성준 씨, 임성준 씨가 신의라는 걸 제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 구천희는 더없이 경건한 태도로 곧바로 임성준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 사람들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 구천희는 나이가 있는 편이었고 임성준의 할아버지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의학계에서 거장으로 유명하고 많은 재벌이 그를 귀한 손님으로 대접했다. 그런 그가 다리도 성치 않은 20대 청년을 향해 허리를 숙인 것이다!
  •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 “괜찮습니다.”
  • 임성준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 “네! 네! 그럼 제가 임성준 씨를 스승님으로 모셔도 될런지...”
  • 구천희의 이어진 말에 이씨 어르신 등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 임성준은 기껏해야 20대인데 구천희의 스승이 된다고? 황당한 일이었다.
  • 그러나 구천희는 더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 어떤 영역에서나 뛰어난 사람이 스승이 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