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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감당 못 할 물건

  • 사람들은 잠깐 멈칫하더니 곧이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서서히 시선을 옮겨 휠체어에 앉아있는 임성준을 바라보았다.
  • 임성준은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얼굴로 사람들과 시선을 맞추었다.
  • 진씨 집안사람들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 조금 전 똑똑한 발음으로 말한 사람이 바보 임성준이란 말인가?
  • 사람들은 그제야 임성준이 예전처럼 침을 질질 흘리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 오늘의 그는 평소와 많이 달라 보였다.
  • “뭐, 뭐라고?”
  • 미간을 구긴 진성우가 떠보듯이 임성준에게 물었다.
  • “귀 막혔어?”
  • 임성준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 “너!”
  • 진성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임성준을 손가락질했다.
  • 멍청한 자식이 감히 그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 강진시 재벌과 진씨 집안사람들은 잠깐 놀랐다가 이내 깨달았다.
  • 임성준이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그래봤자 병신이었다.
  • “임성준, 네 말을 들어보니 진씨 집안이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2년 동안 진씨 집안이 널 먹이고 재웠어. 네가 무슨 자격으로 진씨 집안을 깔보는 거야? 그리고 우리 진씨 집안이 강진시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것도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잖아.”
  • 진유비는 코웃음을 치면서 임성준의 콧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 “무슨 자신감으로 이렇게 나대는 거야? 내가 유월의 은혜를 입은 건 맞지만 그게 너희 진씨 집안이랑 무슨 상관이지?”
  • 임성준은 덤덤한 얼굴로 진유비를 힐끗 보더니 조롱하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망할 놈!”
  • 진가네 어르신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2년 전, 진씨 가문은 너 때문에 강진시의 웃음거리가 되었어. 제정신으로 돌아왔으면 우리한테 감사해야지, 감히 이따위 말을 해? 너 때문에 유월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졌어. 그런데 그게 우리 진씨 집안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 진가네 어르신의 마지막 말에 임성준은 깊은 사색에 잠겼다.
  • 그가 미안하게 생각해야 할 사람은 진유월뿐이었다.
  • “너만 없었더라면 진씨 집안은 진성시 명문가 자제랑 사돈을 맺었을 거야. 그랬다면 지금 같은 처지가 됐을 리도 없었겠지.”
  • 진가네 어르신은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고 임성준은 할 말이 없었다.
  • 임성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람들의 냉소가 짙어졌다.
  • “그만하죠. 임성준도 이제는 제정신이고 할머니 생신 연회에도 왔잖아요. 너 할머니 생신 선물로 뭘 가져왔어?”
  • 진성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임성준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 진유월이 다급히 그의 말에 대꾸했다.
  • “할머니 생신 선물로 내가...”
  • “너는 너고, 임성준은 임성준이지! 네가 임성준을 대표할 수 있어? 진유월, 너희 아직 결혼 안 했어.”
  • 진유비는 소리 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눈빛 속에 조롱이 가득했다.
  • 진유월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임성준은 빈털터리였고 뭘 선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 “이건 제가 어르신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 바로 그때, 임성준이 서서히 손을 내밀어 작은 박스 하나를 건넸고 사람들은 살짝 놀랐다.
  • 진짜 있다고?
  • 임성준의 손에 들린 작은 박스는 평범해 보였지만 꽤 정교한 것이었다.
  • “이게 뭔데?”
  • 진성우는 손을 뻗으며 그것을 그 자리에서 열어보려 했다.
  • 다른 사람들도 궁금했다. 이 멍청이가 뭘 얼마나 값비싼 걸 준비할 수 있을까?
  • “이거? 이게 뭔데? 임성준, 이거 개똥 아냐?”
  • 진성우는 돌연 놀란 소리를 내며 박스 안에서 짙은 갈색의 알약을 꺼냈다.
  • 진성우가 약을 꺼내자 룸 안에 옅은 약의 향기가 감돌았다.
  • 임성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진성우가 개똥이라고 한 저 약은 수많은 사람이 손에 넣고 싶어 안달 나 하던 것이다.
  • 하지만 안목이 없는 이들에게 임성준은 굳이 설명해줄 생각이 없었다.
  • “임성준, 저건 대체 뭐야?”
  • 진유월도 궁금했는지 참지 못하고 물었다.
  • “이건 단약이야. 할머님께 고질병이 있다고 들었어. 이걸 먹으면 근본까지 치료할 수 있을 거야.”
  • 임성준이 덤덤한 얼굴로 설명했다.
  • 그 말에 사람들은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 “제정신으로 돌아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예전에는 바보였는데 이젠 미친놈이 되었어.”
  • “네가 무슨 화타가 환생한 신의라도 되는 줄 알아?”
  • “이 약으로 병을 고친다고? 그러면 네 그 성치 못한 다리부터 고치지 그래? 하하하!”
  • 진성우와 진유비, 그리고 진씨 집안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진짜 다들 너무하네요!”
  • 진유월의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분노가 보였다. 그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 “유월아, 저 사람들 말이 맞아.”
  • “쟤는 장애가 있잖아. 그런 애가 가져온 약을 내가 어떻게 먹겠니?”
  • 진가네 어르신은 경멸이 담긴 눈빛으로 천천히 손을 내저었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 웃음거리.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임성준은 항상 웃음거리였다.
  • “어르신, 생신 축하드립니다.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세요!”
  • “조씨 가문 조권용이 선물로 드리는 제이드입니다. 부디 원하시는 건 다 이루시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길 바랍니다.”
  • 바로 그때 조권용이 검은색 옷을 입은 두 경호원과 함께 룸 안으로 들어왔다.
  • 조권용은 진가네 어르신의 생신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지 무지 비싼 양복을 입고 있었다.
  • “어머, 조권용 씨께서 오셨네요. 얼른 앉으세요!”
  • 진씨 집안사람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열정적으로 조권용을 맞이했다.
  • 강진시의 재벌들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고 임성준과 진유월은 완전히 뒷전이 되었다.
  • 진가네 어르신은 자제하는 듯 보였지만 흥분한 기색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 조권용은 임성준보다 늦게 왔지만 그가 받은 대우는 임성준과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 조씨 집안은 강진시의 새롭게 떠오르는 집안이자 강진시에서 손꼽을 정도로 명망 있는 집안이었다.
  • 진씨 집안이 조씨 집안과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도움을 꽤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권용 오빠, 오셨어요?”
  • 진유비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손을 뻗어 진유월을 밀어냈다.
  • 그러나 조권용의 시선은 진유비에게 있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진유월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의 체면을 고려해야 했던 진유월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이건 임성준 아냐? 유월이가 휠체어를 밀어서 널 여기까지 데려다줬나 보네. 밥이라도 얻어먹으러 온 거야?”
  • 조권용은 손뼉을 치면서 경멸 가득한 얼굴로 임성준을 보았다. 그는 휠체어를 민다는 말을 유독 강조하며 말했다.
  • “네가 똑똑하다면 내 물건에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게 좋을 거야. 너한텐 그 물건을 가질 자격이 없거든.”
  • 임성준은 조권용을 바라보며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