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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직 두 손은 남아있어

  • “아니지.”
  • 임성준이 몇 초간 침묵하더니 다시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 윤상현의 태도를 보면 어딘가 일부러 그렇게 매몰차게 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그 모습은 그가 알고 있던 윤상현과 확연히 달랐다.
  • “어라, 멍청한 놈, 깼어?”
  • 바로 그때, 한 남자가 문밖에서 걸어들어왔다.
  • 평범하지 않은 외모에 입가엔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뿐만 아니라 그는 검은색의 전포를 입고 손엔 위엄있는 커다란 검을 들고 있었다. 
  • 전포는 굉장히 용맹해 보였다. 금색 테두리가 박혀있었고 옷 두루마기 위엔 금색 실로 새겨진 무늬가 있었는데 마치 용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 그리고 손에 든 대검은 굉장히 두껍고 무거워 보였으나 칼날은 이상하리만치 날카로워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풍겼다.
  • 전포에 대검이라, 그 남자에게서 비범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 하지만 그를 보자 임성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 남자의 이름은 조권용, 강진시에서 이름난 조씨 가문의 대도련님이었다.
  • 진유월의 미모에 진작 마음이 동했던 조권용은 그녀가 임성준과 약혼을 해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 그렇게 2년간, 그는 여러 차례 진씨 가문을 대놓고 드나들며 임성준을 앞에 두고 진유월의 어머니 오희연과 어떻게 하면 임성준을 내쫓을 수 있을 지를 모의했다. 
  • 만약 진유월이 막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미 원하는 바를 이루었을 것이다.
  • 임성준은 남자의 옷차림을 보자 눈빛이 다시 싸늘해졌다.
  • “구성 총사령관의 제복에 호국신검이라... 조권용 네놈이 감당할 수 있긴 하나? 네놈은 정녕 죽고 싶은 거냐?!”
  • 임성준의 호통에 조권용은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 ‘이 멍청이가 정신을 차리기라도 했나?’
  • 하지만 조권용은 놀란 마음을 금세 잠재우고 가소로운 듯이 임성준을 바라봤다.
  • 전하는 소문에 과거 임성준이 부대에서 권력이 절대 작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진씨네 어르신 눈에 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 하지만, 그 역시 과거일 뿐.
  • 지금의 임성준은 폐인에 불과하였다. 권력은 둘째치고 영예도 연기처럼 흩어져버렸다.
  • 하지만 조권용 자신은 권문세가의 신예, 조씨 가문의 도련님인데 어찌 폐인을 두려워할 수 있을까?
  • “임성준, 네놈이 이제 멍청하지 않다고 한들 무엇을 할 수 있지? 넌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있는 쓸모없는 놈이잖아! 예전에 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상관없어. 지금의 넌 폐인이니까. 진씨 가문이 먹여 살려야 하는 폐인이니까!”
  • 조권용이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며 웃었다.
  • “내가 네 옷을 입고 네 물건을 가진다고 한들 또 뭐가 문제지? 앞으로 난 네 약혼녀 진유월을 품에 안아도 네가 뭘 할 수 있지? 네놈은 불구 신세로 휠체어에 앉아 이 모든 걸 지켜볼 수밖에 없어! 후후...”
  • 조권용은 줄곧 만지작거리던 호국신검을 번쩍 뽑아 임성준의 목에 가져다 댔다. 
  • “이것 봐. 넌 내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우스꽝스러운 원숭이에 불과해. 난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 할 수 있어!”
  • 그의 눈빛에 비웃음이 서렸고 하찮기 그지없다는 투로 말했다.
  • 과거 임성준과 함께 무수한 전장을 누볐던 호국신검이 지금, 이 순간 그의 목에서 빛을 뿜어냈다. 
  • 과거의 영예가 이젠 남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 임성준은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으며 곧바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 하지만 지금의 그는 두 다리에 힘이 부족해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어려웠다.
  • 조권용이 그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 하지만 이내, 그의 웃음소리가 뚝 끊겨버렸다. 
  • 임성준이 손을 뻗어 두 손가락으로 칼날을 집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조권용을 쳐다봤다.
  •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할 수 있다? 난 전장에서 적수를 만난 적이 없었어. 그런데 조권용, 넌 뭐지?”
  • 말을 마치고 그가 손가락을 강하게 튕겼다. 
  • “챙!”
  • 굉음과 함께 호국신검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 
  • 그 순간, 조권용은 손아귀가 진동으로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뭐라고?”
  • 조권용이 앞으로 확 달려가 임성준의 멱살을 잡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물었다.
  • “넌 네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날 위협하는 거지? 두 다리도 못 쓰는 놈이 이젠 두 손밖에 남지 않았잖아? 어디 한번 말해봐. 네놈의 이 두 손은 남편 노릇도 못 하는 진씨 가문의 등처가 손이 아니었어? 또 뭘 할 수 있는데?”
  • 조권용이 험악하게 눈을 부릅뜨며 임성준을 노려봤다.
  • “짝!”
  • 뺨을 후려갈기는 소리가 번쩍 튀어나왔다.
  • “쿵쿵쿵!”
  • 난데없이 뺨을 맞은 조권용이 놀라며 뒤로 물러서다 테이블에 부딪혔다.
  • 그의 얼굴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 임성준은 그의 뺨을 내리쳤던 수려한 손을 천천히 들어 보이며 말했다.
  • “또 널 때릴 수 있지.”
  • 담담한 말투에 무신경한 눈빛.
  • “지금 날 때렸어? 내가 누군지 까먹었어? 나 강진시 조씨 가문의 도련님이라고! 우리 가문은 넘쳐나는 게 돈이고 권력이 하늘을 찔러. 너 이제 죽었어.”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지한 조권용이 임성준을 손가락질하며 마구 욕했다.
  • “일개의 조씨 가문일 뿐이잖아. 내 친위부대가 남하할 때 너의 조씨 가문은 강진의 명문 호족에 이름을 내비칠 수도 없었어.”
  • 임성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었다.
  • “너!”
  • 조권용이 씩씩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 “무슨 일이야?”
  • 한 중년 여자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 세모꼴 눈, 얇은 입술에 살짝 위로 치켜뜬 것 같은 두 눈에서 오만함이 풍겼다.
  • 그 사람이 바로 진유월의 어머니 오희연이었다. 
  • 즉, 임성준의 예비 장모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