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에 관한 일은 대부분 밖으로 새어 나갈 수 없는 정보였고 그 당시 임성준의 신분은 절대적인 기밀이었다.
그리하여 진씨 집안 사람일지라도 임성준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오희연에게 있어 임성준은 그저 별 볼 일 없는 군인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혀 내세울 것이 없어 보였다.
임성준이 침대 옆에 앉아 오희연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했다.
“이모, 저놈 제정신 돌아온 것 같아요. 아까 저를 공격하기까지...”
다리가 성치 않은 놈에게 얻어맞았으니 조권용은 견딜 수 없었다.
“뭐라고?”
오희연이 그의 말에 흠칫 놀라며 임성준을 바라봤다.
역시나 지금의 임성준은 전과 달랐으며 멍청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네가 권용 도련님을 때렸어? 도련님이 어떤 신분인지는 알고? 꺼져! 지금 당장 내 앞에서 꺼져!”
오희연이 말을 마치고 억지로 임성준을 잡아끌었다.
“그만두세요!”
바로 이때, 문밖에서 유달리 청초하지만 힘 있는 외침이 들려왔다.
조권용이 걸음을 우뚝 멈췄고 오희연도 깜짝 놀라며 문밖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검은색 오피스 룩 정장을 입은 몸매가 뛰어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칠흑 같은 머리를 땋아서 얹었는데 고결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눈처럼 새하얀 얼굴은 도자기처럼 흠집 하나 없었고 오뚝한 콧날과 작은 입술은 도도하면서도 귀여워 보였다.
그녀의 특출한 미모와 볼륨감 있는 몸매를 보고 있으니 수많은 사람을 보아왔던 임성준도 마음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바로 임성준과 혼약을 맺은 진씨 가문의 딸, 진유월이였다.
주권용은 진유월을 보자 탐욕스러운 눈빛을 띠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핥았다.
도도한 카리스마를 풍기던 진유월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곧이어 그녀가 조권용이 대검을 들고 임성준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속에서 분노가 솟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진유월이 안으로 걸어들어와 단칼에 임성준 앞에 서서 가로막았다.
그녀는 임성준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유월아, 너 마침 잘 왔다. 이 멍청한 놈이 감히 권용 도련님을 때렸다지 뭐냐!”
마치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오희연이 두 손을 허리춤에 차고 말했다.
조권용 역시 칼을 거두고 오희연을 거들었다.
“유월아, 임성준은 이미 제정신으로 돌아왔어. 애초에 바보가 된 적이 없단 말이야. 하지만 너를 속이려고 일부러 멍청한 척한 거야. 분명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목적이 있어. 어쩌면 너를 음해하려는 것일 수도...”
조권용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하지만 임성준에게 뺨을 맞았다는 얘기는 죽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 조씨 가문의 도련님이 만약 임성준이라는 바보에게 맞았다는 소문이 퍼지면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임성준은 나와 혼약을 맺었어.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목적이 대체 뭔데? 그리고 이 일이 너랑 무슨 상관이지? 다들 너무 해! 내가 없다고 또 그를 괴롭히고 있잖아. 적당히들 좀 하라고!!”
진유월은 싸한 표정으로 여전히 임성준 앞을 가로막은 채 서 있었다.
“너! 유월아, 나 정말 거짓말하는 거 아냐. 저놈 진작 회복했어. 일부러 멍청한 척하는 거라니까! 목적은 진씨 가문에서 공짜로 먹고 자려는 거야!”
“맞아! 유월아, 권용이 하는 얘기는 전부 사실이야. 내가 증명할 수 있어.”
오희연과 조권용이 입을 모아 얘기하자 진유월이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돌려 임성준을 흘긋 봤다.
“임성준?”
진유월이 그를 불렀다.
“네? 당신들... 누구세요?”
임성준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으나 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바보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너... 너 아직도 연기하는 거야?”
조권용이 그 모습을 보고 씩씩거렸다.
“그만해! 이제 다들 나가줘!!”
진유월이 앞으로 성큼 나아가 우렁차게 외쳤다.
“임성준, 이번 일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잊지 마!!”
욕을 내뱉은 후, 조권용은 그윽한 눈빛으로 진유월을 바라보곤 오희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떠나자 진유월은 그제야 낮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뒤돌아 임성준을 바라봤다.
“난 저들이 너를 데리고 산책 나가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 그래서 휴가 내고 돌아온 거야.”
진유월이 중얼거리며 임성준의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정원으로 나왔다.
그녀는 임성준의 멍청한 표정을 보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진유월은 천천히 쪼그리고 앉아 임성준의 다리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할아버지께서 전에 그런 말씀 하셨다? 넌 부대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인물이라고, 이 나라를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이라고. 넌 전장을 누비며 나라를 지켜온 용감한 영웅이 이랬어! 아주 오래전부터 널 존경해왔어. 네가... 나의 아이돌인 셈이야. 너랑 약혼하게 되고 또 결혼할 수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땐 진짜 기쁘고 신났어... 하지만 지금 네가 이렇게 된 모습을 보면 정말 누가 내 심장을 쥐어뜯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