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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진씨 가문의 귀한 따님!

  • 오희연은 이 년간 진씨 가문 사람 중에서도 가장 임성준에게 각박하게 굴었던 사람이다.
  • 부대에 관한 일은 대부분 밖으로 새어 나갈 수 없는 정보였고 그 당시 임성준의 신분은 절대적인 기밀이었다.
  • 그리하여 진씨 집안 사람일지라도 임성준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 오희연에게 있어 임성준은 그저 별 볼 일 없는 군인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혀 내세울 것이 없어 보였다.
  • 임성준이 침대 옆에 앉아 오희연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했다.
  • “이모, 저놈 제정신 돌아온 것 같아요. 아까 저를 공격하기까지...”
  • 다리가 성치 않은 놈에게 얻어맞았으니 조권용은 견딜 수 없었다.
  • “뭐라고?”
  • 오희연이 그의 말에 흠칫 놀라며 임성준을 바라봤다.
  • 역시나 지금의 임성준은 전과 달랐으며 멍청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 “네가 권용 도련님을 때렸어? 도련님이 어떤 신분인지는 알고? 꺼져! 지금 당장 내 앞에서 꺼져!” 
  • 오희연이 말을 마치고 억지로 임성준을 잡아끌었다.
  • “그만두세요!”
  • 바로 이때, 문밖에서 유달리 청초하지만 힘 있는 외침이 들려왔다.
  • 조권용이 걸음을 우뚝 멈췄고 오희연도 깜짝 놀라며 문밖을 쳐다보았다.
  • 그곳에 검은색 오피스 룩 정장을 입은 몸매가 뛰어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칠흑 같은 머리를 땋아서 얹었는데 고결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 눈처럼 새하얀 얼굴은 도자기처럼 흠집 하나 없었고 오뚝한 콧날과 작은 입술은 도도하면서도 귀여워 보였다.
  • 그녀의 특출한 미모와 볼륨감 있는 몸매를 보고 있으니 수많은 사람을 보아왔던 임성준도 마음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그녀가 바로 임성준과 혼약을 맺은 진씨 가문의 딸, 진유월이였다.
  • 주권용은 진유월을 보자 탐욕스러운 눈빛을 띠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핥았다.
  • 도도한 카리스마를 풍기던 진유월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 곧이어 그녀가 조권용이 대검을 들고 임성준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속에서 분노가 솟구쳤다.
  • “지금 뭐 하는 거죠?”
  • 진유월이 안으로 걸어들어와 단칼에 임성준 앞에 서서 가로막았다. 
  • 그녀는 임성준이 전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유월아, 너 마침 잘 왔다. 이 멍청한 놈이 감히 권용 도련님을 때렸다지 뭐냐!”
  • 마치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오희연이 두 손을 허리춤에 차고 말했다.
  • 조권용 역시 칼을 거두고 오희연을 거들었다.
  • “유월아, 임성준은 이미 제정신으로 돌아왔어. 애초에 바보가 된 적이 없단 말이야. 하지만 너를 속이려고 일부러 멍청한 척한 거야. 분명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목적이 있어. 어쩌면 너를 음해하려는 것일 수도...”
  • 조권용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하지만 임성준에게 뺨을 맞았다는 얘기는 죽어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 조씨 가문의 도련님이 만약 임성준이라는 바보에게 맞았다는 소문이 퍼지면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 “임성준은 나와 혼약을 맺었어. 우리가 함께 생활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목적이 대체 뭔데? 그리고 이 일이 너랑 무슨 상관이지? 다들 너무 해! 내가 없다고 또 그를 괴롭히고 있잖아. 적당히들 좀 하라고!!”
  • 진유월은 싸한 표정으로 여전히 임성준 앞을 가로막은 채 서 있었다.
  • “너! 유월아, 나 정말 거짓말하는 거 아냐. 저놈 진작 회복했어. 일부러 멍청한 척하는 거라니까! 목적은 진씨 가문에서 공짜로 먹고 자려는 거야!” 
  • “맞아! 유월아, 권용이 하는 얘기는 전부 사실이야. 내가 증명할 수 있어.” 
  • 오희연과 조권용이 입을 모아 얘기하자 진유월이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돌려 임성준을 흘긋 봤다.
  • “임성준?”
  • 진유월이 그를 불렀다.
  • “네? 당신들... 누구세요?” 
  • 임성준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으나 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의 모습은 바보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 ”너... 너 아직도 연기하는 거야?”  
  • 조권용이 그 모습을 보고 씩씩거렸다.
  • “그만해! 이제 다들 나가줘!!”
  • 진유월이 앞으로 성큼 나아가 우렁차게 외쳤다.
  • “임성준, 이번 일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잊지 마!!” 
  • 욕을 내뱉은 후, 조권용은 그윽한 눈빛으로 진유월을 바라보곤 오희연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두 사람이 떠나자 진유월은 그제야 낮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뒤돌아 임성준을 바라봤다.
  • “난 저들이 너를 데리고 산책 나가지 않을 거로 생각했어. 그래서 휴가 내고 돌아온 거야.”
  • 진유월이 중얼거리며 임성준의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정원으로 나왔다.
  • 그녀는 임성준의 멍청한 표정을 보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진유월은 천천히 쪼그리고 앉아 임성준의 다리 위에 두 손을 올려놓았다.
  • “할아버지께서 전에 그런 말씀 하셨다? 넌 부대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인물이라고, 이 나라를 받쳐주는 든든한 기둥이라고. 넌 전장을 누비며 나라를 지켜온 용감한 영웅이 이랬어! 아주 오래전부터 널 존경해왔어. 네가... 나의 아이돌인 셈이야. 너랑 약혼하게 되고 또 결혼할 수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땐 진짜 기쁘고 신났어... 하지만 지금 네가 이렇게 된 모습을 보면 정말 누가 내 심장을 쥐어뜯는 것 같아...”
  • 정원에 눈 부신 햇살이 비쳤다.
  • 진유월은 임성준에게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까맣게 타들어 간 속마음을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