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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캐 강림

사기캐 강림

다크비숑

Last update: 2024-04-20

제1화 난 누구지?

  • 강진시
  • 진씨 저택
  • 한 청년이 휠체어에 앉아 두 눈을 꼭 감은 채 낮게 코를 골고 있다.
  • 살짝 옆으로 기운 고개와 입가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침은 그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 갑자기 그 청년이 눈을 번쩍 뜨더니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듯, 두 손으로 휠체어를 꽉 잡았다.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 “휴!”
  • 그가 크게 숨을 몰아쉬며 길을 잃은 눈빛으로 앞을 바라봤다.
  • 그의 머릿속에 꿈에서 봤던 마지막 장면이 천천히 떠올랐다.
  • “임성준, 내 계획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너야! 난 네가 고통에 몸부림치게 만들겠어. 마치 한 마리 죽어가는 개처럼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살게 할 거야!!”
  • 꿈속에서 본 그 사람은 이를 악물고 마치 임성준을 씹어 삼킬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 “난 누구지? 난... 임성준이야!”
  • 길을 잃은 눈빛이 사라지고 그의 눈빛은 싸늘하고, 결연하게 바뀌었다.
  • 임성준은 고아 출신이었다.
  • 우연히 서북 대원수, 이중구 장군님이 그를 거둬들였고 이후 줄곧 서북 변경에서 살아왔다.
  • 어려서부터 군사 무술을 연마하였으며 열다섯 살에 정식으로 입대했다.
  • 그렇게 전쟁터를 누비며 수많은 공을 세워 스무 살에 구성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서북의 백만 정예 부대를 통솔했다.
  • 그리고 같은 해, 의부 이중구가 적군에 깊이 쳐들어갔다가 전사했다.
  • 크게 분노한 임성준은 백만 대군을 이끌고 변경을 압박했으며 적군의 열 명 총사령관을 처리해버렸다.
  • 그 전쟁으로 신의 경지에 올랐으며 팔도강산을 수복했다.
  • 거대한 전쟁을 치르고 나서 그는 힘이 다하여 쓰러져버렸다.
  • 하지만 부하 중 간악한 자의 음모에 빠져 정신을 잃은 사이 공격당했는데 머리 부분에 손상을 입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며 심지어 약간 멍청해진 상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신불수 신세를 지게 되었다.
  • 임성준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 이제 그의 의식은 또렷했다. 이제 이것들을 결판낼 때가 온 것이다.
  • 임성준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두 다리를 움직여 걸어보려 했다.
  • 하지만 다리는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느껴지지도, 힘을 쓸 수도 없었는데 정말 불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 임성준이 손을 뻗어 다리의 맥박을 짚었다. 그의 한 손이 다리의 진맥을 따라 천천히 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 “다행이군. 오랫동안 휠체어에 앉아 있어 혈기가 막힌 거야. 그래서 다리가 약간 퇴화한 거군.”
  • 임성준이 중얼거렸다. 그가 익힌 의술과 보조 수련을 병행하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 그는 약간 초라해 보이는 방을 둘러보았다. 그의 머릿속에 흩어진 기억의 조각이 점차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 그가 멍한 상태로 지낸 지 2년이 흘렀으나 그로 인해 기억력까지 소실된 것은 아니었다.
  • “이곳은... 진씨 가문인가?”
  • 임성준이 낮게 읊조렸다.
  • 강진시 진씨 가문은 워낙 장군의 집안이었다.
  • 진씨 가문의 어르신 진영석은 한 세대를 주름잡는 장군으로서 나라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웠었다.
  • 애초에 진영석은 임성준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몇 번이고 임성준의 의부에게 자기 손녀 진유월과 임성준의 혼약을 약속하자고 부탁했었다.
  • 진씨 가문은 비록 임성준이 부대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몰랐으나 진영석이 사람 보는 눈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그러므로 당연히 그에게 기대가 컸다.
  •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임성준이 퇴역 후 정신이 온전치 못한 폐인이 되어버리고 심지어 두 다리마저 못 쓰게 되어 스스로 돌볼 수도 없는 처지가 될 줄은.
  • 그들은 임성준의 힘을 빌려 진씨 가문이 강진시에서 한층 더 높이 올라가려는 야심을 품었었다.
  • 하지만 이제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기대가 큰 만큼 절망적이고 원망스러웠다.
  • 또한 진영석이 전쟁터에서 전사한 후, 진씨 가문의 후손들은 보릿고개 마냥 쓸만한 자가 나타나지 않아 진씨 가문은 이미 삼류 가문의 행렬에 들어서게 되었다.
  • 그런데 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임성준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니 그를 대할 때도 태도가 좋을 리가 없었다.
  • 이 년 동안 진씨 가문 사람들은 임성준을 사람답게 대우한 적이 없었으며 그에게 온갖 모욕을 주었다.
  • 그의 이런저런 처지를 둘러보면 비참한 것 그 이상으로 참담했다.
  • 임성준이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고 머릿속에 각인되듯이 박힌 한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 전화기 너머에서 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목소리만으로도 사람을 누르는 힘이 있었다.
  • “나다.”
  • 임성준은 그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 전화를 받은 사람은 그의 친위부대 수령 윤상현이었다.
  • 그는 의리가 강하고 과거 깊은 감정을 나눴던 전우였다.
  • “퍽!”
  • 둔탁하게 뭔가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누... 누구라고?”
  • 윤상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 “임성준.”
  • 임성준이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곧이어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 “빌어먹을! 누가 나에게 전화하라고 한 거야? 멍청한 놈, 폐인이 되어서 나 윤상현과 말섞을 처지가 된다고 생각해? 꺼져!”
  • 윤상현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으며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 한바탕 욕을 퍼붓고 나서 그가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 임성준은 멍한 눈빛으로 천천히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이 약간 창백했다.
  • 우선은 과거 부하에게 이 지경이 되도록 음해당했고 이젠 그가 가장 믿었던 친위부대의 수령 윤상현마저 이런 태도라니.
  • 자신을 따르던 무리는 뿔뿔이 흩어지고 적대감만 뿜어져 나온다.
  • “하, 살아있는 개새끼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건가.”
  • 임성준이 핸드폰을 들고 스스로 비웃듯이 처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