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맥할 필요 없습니다. 임성준 씨도 어르신의 병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어르신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구천희의 말에 허빈은 말문이 막혔다. 그들은 구천희가 한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임성준도 치료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치료할 수 없다니! 그 말은 임성준이 의술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걸 보여줬다.
“임성준 씨, 제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군요.”
이씨 어르신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별것 아닙니다.”
임성준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덤덤히 얘기했다.
“아직 완벽히 치료된 건 아닙니다. 이틀 뒤에 다시 한번 침을 놓아야 합니다.”
임성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보탰다.
“그래요! 임성준 씨 말대로 해야겠군요!”
이씨 어르신은 당연히 망설이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임성준의 말이라면 당연히 따를 것이다.
...
진씨 저택.
이호민은 임성준을 직접 데려다주었고 감히 저택 안에 발도 못 들이고 진씨 저택을 떠났다.
임성준은 진유월에게 떠밀려 방 안으로 들어갔고 진유월은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씨 어르신의 병을 치료해주러 갔어.”
임성준은 진유월에게 숨기는 게 없었다.
“하, 거짓말하지마. 임성준, 네가 사기꾼이란 걸 왜 예전에는 몰랐지?
진유월은 전혀 믿지 않았다. 임성준이 의술을 할 줄 안다고?
임성준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네가 정말 의사라면 왜 네 다리부터 고치지 않는 거야?”
진유월은 임성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이제 곧 일어설 수 있어. 예전에 배신당해 몸 대부분을 쓸 수 없게 됐어. 그래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
임성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진유월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넌 이미 2년 동안 회복했잖아. 그거 알아? 난 2년 동안 수많은 의사를 찾아다녔어. 그런데 다들 네 다리는 가망이 없다고 했어.”
진유월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임성준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알아.”
임성준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2년 동안 정신이 온전치 못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진유월이 그를 위해 했던 일들은 그는 전부 보았고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됐어. 그만 얘기해.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친구로 뒀으니 그래도 능력은 있네.”
진유월은 말을 마친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떠나려 했다.
문가에 선 진유월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거 알아? 사실 난 네가 줄곧 정신이 온전치 못하길 바랐어. 그래야 사람들이 비웃는 걸 들어도 슬퍼하지 않을 테니까. 또 그래야만 내가 널 진씨 집안에 남겨둘 수 있으니까.”
진유월은 말을 마친 뒤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임성준은 진유월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난 진씨 집안에 남을 거야. 그뿐만 아니라 네가 나로 인해 기를 폈으면 좋겠어. 그리고 진씨 집안이 너로 인해 번성하길 원해.”
임성준의 눈빛은 결연했다.
“저 바보가 너한테 뭐라고 한 거야?”
진유월이 방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성준은 밖에서 들려오는 오희연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바보 아니에요.”
진유월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래도 장애인이고 쓸모없는 놈이야! 어차피 쓸모없고 돈 한 푼 없는 놈인 건 마찬가지야!”
오희연의 말에 진유월은 침묵했다.
“넌 아직도 네 할아버지 말을 믿니? 쟤가 엄청난 군사적 재능이 있다는 말을? 내가 물을게. 네 사촌 오빠 5년 동안 복무해서 받은 돈이 얼마야? 그런데 임성준은 뭐가 있어? 카드 한 장이 있던데 내가 조사해봤어. 그런데 그거 알아? 그건 이미 계약 해지된 카드야. 게다가 안에는 기껏해야 200만 원 밖에 넣지 못해. 네가 얘기해 봐. 저놈 어디가 좋은 거야? 쥐뿔도 없으면서 군에 복무한 점이 좋은 거야?”
오희연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임성준이 듣든 말든 상관없었다.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얼른 쉬세요. 저 내일 일하러 가야 해요.”
진유월의 한 마디에 드디어 대화가 끝이 났다.
방 안에 있던 임성준은 천천히 자신의 박스를 꺼냈다. 아주 간단하고 특별한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박스였다.
“탁!”
카드 한 장이 임성준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임성준은 힘겹게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운 뒤 손에 놓고 보았다.
카드는 아주 평범했지만 지금의 카드에 비해 조금 두꺼웠다. 이런 낡은 카드는 발행된 지 꽤 오래된 것이라 새것으로 대체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어떤 물건은 겉만 봐서는 모르는 법이지...”
임성준은 혼잣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카드의 변두리를 서서히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쓱!”
바닥에 버려도 아무도 줍지 않을 것 같은 카드 겉면이 한층 벗겨졌다.
바로 그때, 카드가 참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광택이 은은하게 도는 것이 아주 값비싸 보였다. 변두리에는 구불구불한 금빛 테두리가 마치 금색의 용처럼 카드 전체를 두르고 있었고 카드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흑요석이 눈 부신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