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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첫날밤

  •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남욱의 시선을 피하며 욕실로 달려 들어갔다.
  • 욕실 문을 닫고 나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 ‘너무 위험했어. 하마터면….’
  • 오윤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 그녀와 남욱은 지금 정식 부부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건 없었다.
  • ‘이렇게 황급히 도망친 건, 좀 실례인가?’
  • 오윤희는 괜히 겁을 집어먹은 자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아까 남욱의 위험한 눈빛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쨌든 그녀와 남욱은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다. 이대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 하지만 그러고 보니 아까 남욱은 정상적인 남자의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오늘 사무실에서 남자 동료들이 얘기했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 ‘다리에 장애가 있어도 그쪽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나?’
  • 자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오윤희는 스스로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 ‘오윤희,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남욱이 그 방면에 문제가 있건 말건 너랑 무슨 상관인데! 어차피 이 결혼은 S시티 호적을 위해서였잖아? 어디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어!’
  • ‘하지만….’
  •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더 있었다. 아까 남욱의 몸으로 쓰러질 때, 분명 실수로 그의 다리에 닿았었다. 남욱처럼 오랜 시간 다리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분명 근육이 수축되어 볼품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남욱의 다리는 아주 탄탄한 촉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장애인이 아닌 것처럼….
  • 똑똑.
  • 오윤희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 “왜요?”
  • “문 열어요.”
  • 남욱의 부드러운 음성이 문밖에서 들려왔다. 순간 오윤희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문을 열라고? 왜?’
  • 아까 보았던 남욱의 깊은 눈동자를 떠올리자 저도 모르게 세면대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오윤희가 대답이 없자, 밖에 있던 남욱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 그제야 오윤희는 자신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참 고민 끝에 결국에 그녀는 욕실 문 가까이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 그리고 남욱의 긴 손이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하얗고 부드러운 목욕 타월이 들려 있었다.
  • 순간 오윤희는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 “아까 이거 찾으러 나왔던 거 아니었어요?”
  • 문밖의 남욱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순간 오윤희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고마워요.”
  • 그녀는 빠르게 답한 뒤, 타월을 받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물기를 닦고 잠옷을 입고 나와 보니, 남욱은 이미 진청색의 실크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는 한창 침대에서 다리 위에 노트북을 놓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 오윤희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 그녀는 처음에 남욱이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신변에 많은 수하를 거느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별장에는 왕 집사와 장씨 아주머니 둘 뿐이었고 밀착 간호를 맡은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 ‘저 사람은 혼자 어떻게 침대에 올라갔지? 그리고 샤워는 안 하나?’
  • “저기…”
  • 그녀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 “샤워하실래요?”
  • “이미 했어요.”
  • 남욱이 간결하게 대답했다.
  • 그가 혼자 씻기 불편할까 봐 걱정했던 오윤희였지만 그는 이미 씻고 왔다고 대답했다.
  • ‘밖에서 씻고 왔다는 건 따로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얘기인가?’
  • 오윤희는 오만 가지 상상이 들었지만, 솔직히 남욱에게 숨겨둔 애인이 있다고 해도 그녀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책상 가까이 다가가 내일 출근에 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까 샤워하기 전 벗어 놓았던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반지를 본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 그녀는 오늘 결혼반지를 샀었다는 사실마저 깜빡 잊고 있었다. 아까 반지를 살 때, 자신의 남편이 천 억대 몸값을 가진 그룹 대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가장 심플한 디자인으로 골랐던 것이다.
  • 하지만 지금 보니 남욱에게 이 반지는 초라해도 너무 초라했다.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침대에 있는 남욱을 돌아보았다. 일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확인한 오윤희는 슬그머니 반지를 핸드백에 집어넣고, 남욱에게 주려던 남자 반지를 화장대 서랍 안에 넣었다.
  • 모든 일을 끝낸 뒤, 그녀는 침대에 올랐다. 다행히도 침대는 아주 넓었고 이불 두 세트와 베개가 놓여 있었다. 그래서 남욱과 그녀 사이에는 족히 반 미터 정도 거리가 있었다.
  • “다 씻었어요?”
  • 오윤희가 침대에 눕자 남욱이 담담히 물었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노트북 화면에 고정하고 있었다.
  • “네.”
  • 대답을 마친 오윤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남욱의 노트북을 쳐다보았다. 남욱의 회사는 주로 펀드와 채권을 경영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전부 붉은색과 초록색의 도표와 그래프가 빼곡히 나열돼 있었다. 알아볼 수도 없었던 오윤희는 다시 시선을 돌려 버렸다.
  • “이제 자야죠?”
  • 남욱이 고개를 돌려 오윤희를 보며 한마디 했다.
  • “그래요.”
  • 그러자 남욱이 재빨리 머리맡의 스탠드를 껐다. 방안에 짙은 어둠이 드리우자 오윤희는 바짝 긴장했다. 사실 그녀는 남욱이 왜 결혼 상대로 자신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남욱이 자신과 부부의 의무를 다할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 오윤희는 경직된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시간은 일분일초 흘러 옆에 누운 남욱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서야 그녀는 긴장을 풀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이튿날 아침.
  • 오윤희는 핸드폰 알람과 함께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보니 남욱은 이미 나가고 없었다. 그녀는 빠르게 씻고 옅은 화장을 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계단 입구까지 도착하자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아주머니가 반찬을 식탁으로 나르고 있었다. 그녀를 본 아주머니가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 “작은 사모님, 일어나셨어요? 어서 와서 아침 드세요.”
  • “네, 감사합니다.”
  • 남욱은 이미 식탁 앞에 앉아서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컵을 들어 입가에 가져가고 있었다.
  • 시선이 그의 긴 손가락에 닿자, 오윤희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