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6화 정식 동거

  • “아, 아니야.”
  • 긴장한 오윤희는 말까지 더듬으며 빠르게 박스를 뒤로 감추었다.
  • “너랑 같은 컬러야. 그게… 내가 배가 좀 아파서, 화장실 좀 다녀올게.”
  • 말을 마친 그녀는 도망치다시피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정교한 박스를 다시 열었다. 소미와 다른 동료들과는 다르게 오윤희의 박스에는 열쇠 꾸러미가 들어 있었다.
  • 아직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했는데,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 남욱이 친절하게 자신의 주소를 찍어준 것이다. 그곳은 S시티 최고 부자들만 사는 동네의 별장이었다.
  • 주소와 열쇠.
  • 오윤희는 그제야 남욱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집에 들어와서 살라는 뜻이었다.
  • 물론, 남욱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제 정식 부부가 되었으니 같이 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화장실에서 나온 오윤희는 소미와 함께 잡지사로 돌아왔다.
  • 이번 인터뷰에서 오윤희는 남욱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하지만 그의 동의가 없이 함부로 잡지에 실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그래서 편집장은 성욱 측에 연락해서 사진을 잡지에 실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남욱의 의사를 물었다. 편집장도 그냥 혹시나 해서 물은 것이었다. 오랜 시간 베일에 싸여 있던 성욱 그룹 대표가 인터뷰를 승낙한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다. 그래서 사진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 하지만 놀랍게도 남욱 측은 흔쾌히 동의했고, 전체 잡지사가 기쁨의 도가니로 들끓었다.
  • “세상에! 무려 성욱 대표의 사진이야! 이번에 우리 잡지사 대박 나겠어!”
  • “어서, 성욱 대표 사진 좀 보여줘 봐. 정말 소미가 얘기했던 것처럼 그렇게 미남인지 한번 보게!”
  • 일전에 남욱의 동의가 없이는 감히 사진을 잡지사에 공개할 엄두도 못 냈던 오윤희였다. 하지만 이제 허락도 받았으니 흔쾌히 공개했다.
  • 사진이 공개된 순간, 온 잡지사의 여직원들이 환호를 질렀다.
  • “세상에! 너무 잘생겼잖아! 소미야 너 국어 다시 배워야겠네. 성욱 대표 미모의 십 분의 일도 묘사하지 못했잖아!”
  • “그러니까, 이 정도 외모면 연예계 난다 긴다 하는 아이돌들도 상대가 안 되겠어!”
  • “아, 그런데 남 대표님이 앉아 계신 의자가 좀 이상하네? 휠체어… 같지 않아?”
  • 드디어 누군가가 남욱이 앉아 있는 휠체어를 발견했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 “맞아요.”
  • 소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 “남 대표님은 휠체어에 앉아 계셨어요. 그런데 그게 뭐 어때요? 이 정도로 잘생겼고, 돈도 많은데 휠체어에 앉아 있어도 백마 탄 왕자님이죠!”
  • 주변의 여자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몇몇 남자 직원들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심드렁하니 입을 열었다.
  • “흥, 돈 많고 잘생기면 뭐 해? 휠체어를 탄 남자는 거의 백 프로 그 방면에도 장애가 있다는 거 몰라?”
  • “그러니까, 저 사람 얼마 전에 결혼했다며? 신부가 독수공방하게 생겼네.”
  • “풉, 쿨럭쿨럭….”
  • 옆에서 조용히 물을 마시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오윤희는 그 말을 듣고 사레들려 연거푸 기침을 해댔다. 옆에 있던 동료가 얼른 다가와서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물었다.
  • “윤희 언니, 왜 그래요? 남 대표님 매력이 정말 장난이 아닌가 봐요. 평소 침착하던 윤희 언니마저 이렇게 당황하는 걸 보면.”
  • “누가 아니래요.”
  • 옆에 있던 소미도 거들었다.
  • “오늘 윤희 언니가 인터뷰 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다들 모르죠?”
  • 오윤희는 여자들의 합동 공세에 못 말린다는 듯 입을 삐죽였다.
  • “내가 너처럼 얼빠인 줄 알아?”
  • “그건 얼빠의 문제가 아니죠.”
  • 소미가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마음을 내비쳤다.
  • “남 대표님이 너무 완벽하신 게 문제죠. 다리에 장애가 있는 것 빼고 전형적인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잖아요.”
  • 남욱의 매력 앞에 이 여자들은 남자 동료들의 비웃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 그 뒤로 며칠간, 잡지사는 남욱의 인터뷰 자료를 정리하느라 바쁘게 돌아쳤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전에 없던 열정을 보여 주었다.
  • 드디어 주말이 돌아오고, 오윤희는 피곤함에 삭신이 다 쑤셨다. 하지만 쉴 틈도 없이, 병원에 가서 엄마의 상태를 확인하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 남욱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다. 더 끌었다가는 상대방이 성의가 없다고 오해할까 봐 두려웠다.
  • 남욱의 별장은 생각했던 대로 아주 컸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별장에는 왕 집사 부부 외에 다른 관리인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 왕 집사가 오윤희의 짐을 들고 2층 안방으로 올라갔다. 안방은 심플한 현대풍 인테리어였다. 옷장을 열어보니 한쪽은 남성 셔츠가 걸려 있었고, 한쪽은 이미 비어 있었다.
  • 그제야 오윤희는 남욱과 한방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그것도 안 될 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짐들을 옷장 한쪽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다.
  • 모든 정리를 끝내고 보니 이미 저녁때가 훨씬 지났건만, 남욱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 오윤희는 장씨 아주머니가 준비해 준 일본식 라멘을 맛있게 먹고 방으로 돌아가서 씻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친 뒤에야 그녀는 목욕 타월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 그녀는 자신의 데면데면함을 탓하며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욕실 문을 열었다. 남욱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곧장 젖은 몸으로 안방에 뛰어 들어갔다.
  • 그녀가 한창 옷장을 열고 타월을 찾고 있는데 뒤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들렸다.
  • 놀란 오윤희가 고개를 돌리자 남욱이 휠체어를 끌고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 남욱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신부가 이렇게 적나라한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할 거라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 오윤희의 충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진 그녀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급히 욕실로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축축이 젖은 바닥에 발이 미끄러져 중심을 못 잡고 앞으로 쓰러졌다.
  • “조심해요!”
  • 그제야 남욱은 표정을 바꾸고 얼른 휠체어를 끌고 앞으로 가서 오윤희를 붙잡았다. 그리고 오윤희는 그대로 그의 다리에 쓰러졌다. 여자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몸에 닿자 남욱도 잠시 멈칫했다.
  • 고개를 숙여 보니, 오윤희가 당황함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 사실 오윤희는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어 보면 볼수록 눈길이 가는 여인이었다.
  • 특히 지금 이 순간,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기고, 라인이 선명한 쇄골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미치도록 매력적이었다. 더 시선을 내리자, 영롱하고 볼륨감 있는 몸매가 눈앞에 드러났다.
  • 남욱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깊은 욕망이 서렸다.
  • 어렵게 중심을 잡은 오윤희가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자, 남자의 깊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남자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 ‘큰일 났네.’
  • “미, 미안해요….”
  • 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하지만 손이 남욱의 다리에 닿았을 때,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