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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2년 전 악몽

  • “오해?”
  • 오윤희의 말에 화가 폭발한 남준이 언성을 높이며 그녀의 턱을 잡았다.
  • 강력한 힘에 오윤희의 얼굴이 통증으로 일그러졌다.
  • “무슨 오해? 2년 전 가난하던 남자애가 이제 잘나가는 편집장이 되어 돌아오니까 후회하는 거잖아. 오해는 무슨 오해?”
  • 말을 마친 남준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오윤희의 얼굴을 세게 잡아당겼다.
  • “오윤희, 경고하는데, 지금의 남준은 예전처럼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아!”
  • 가장 익숙했던 얼굴에 담긴 분노와 미움을 바라본 오윤희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 만약 남준이 그녀를 믿었다면 그해 한마디 묻지도 않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 이미 남준은 그녀를 돈을 위해 몸까지 파는 된장녀로 믿고 있었다. 하물며, 지금 남준이 그녀의 설명을 믿는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 지금의 그녀는 이미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으니까. 이제 그녀는 예전의 오윤희가 아니었고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오윤희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깊게 심호흡한 뒤, 고개를 들었다.
  • “남준.”
  • 그녀가 작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네 말이 맞아. 그해의 일은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야. 하지만 네가 잘못 생각한 게 있어. 지금의 나는 너와 엮이고 싶지 않아. 네가 편집장이든 대표든, 나 오윤희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 말을 마친 순간, 그녀의 턱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가해졌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갑자기 그녀를 밀쳐 버렸다.
  • 엉거주춤 밀려난 오윤희는 가까스로 벽을 잡고 똑바로 섰다. 고개를 들자 남준이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담긴 혐오와 분노의 감정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아프면 아프고 말지 뭐. 복잡하게 얽히는 것보다는 낫겠지.’
  •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흐느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 “편집장님, 다른 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 말을 마친 오윤희는 남준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급히 사무실을 나섰다. 도망치듯 잡지사를 나와 일 층에 도착한 그녀는 그제야 밖에 폭우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산은 사무실에 있었고, 돌아가서 우산을 챙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비록 남준은 계속 자기 사무실에 박혀 있을 테지만,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 ‘참 약해 빠졌어.’
  • 쏟아지는 빗속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퇴근 시간에 폭우까지 겹쳐서 택시도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핸드백을 들어 머리만 가린 채, 빠르게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 푹 젖은 몸을 이끌고 지하철역에서 나온 그녀는 어서 비가 그치기를 기대했지만, 하늘이 심술을 부린 건지, 여전히 거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 오윤희는 택시도 잡지 못하고 지하철역 입구에서 멍하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 2년 전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던 밤에, 그녀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평생 함께 하기로 한 남준도 잃었다.
  • 2년 전 느꼈던 절망감이, 그 끔찍한 악몽이 조금씩 그녀의 얼어버린 마음을 다시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 그녀는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 ‘추워….’
  • ‘너무 추워….’
  • 온몸이 추위에 떨리고 있었다. 마치 2년 전 그날 밤처럼….
  • 끔찍한 기억이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던 찰나, 갑자기 그녀의 앞에 휠체어 한 대와 함께 길게 뻗은 두 다리가 나타났다.
  •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들자 우산을 든 여준과 남욱의 모습이 보였다. 거세게 쏟아지는 비에 그의 잘생긴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여전히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의 그는 마치 한 줄기 빛처럼 그녀의 처량한 심정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 오윤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남욱?’
  •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 남욱이 고개를 숙여 바닥에 주저앉은 오윤희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화를 억누르는 듯한 말투였다.
  • “비 맞았어요?”
  • 그제야 오윤희는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녀는 채 일어서기도 전에 눈앞이 새카매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남욱은 순간 긴장해서 급히 손을 내밀어 쓰러지는 그녀를 마주 안았다. 품 안에 들어온 여자의 몸은 이상할 정도로 뜨거웠다. 남욱의 어두운 눈빛이 아까 남준에게 비틀려 빨갛게 된 그녀의 턱에 닿았다. 순간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 “돌아가자.”
  • 다시 평소의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낮은 소리로 명령했다. 그는 그녀를 안고 휠체어를 운전해 옆에 세워 둔 벤틀리로 향했다.
  • 남욱의 차는 지하철역 근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휠체어에 오윤희의 무게까지 더해져, 평소처럼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 “도련님.”
  • 옆에 있던 여준이 입을 열었다.
  • “제가 하겠습니다.”
  • “됐어.”
  • 남욱은 단칼에 거절하더니, 품에 오윤희를 안은 채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방 안.
  • ‘더워….’
  • ‘너무 더워….’
  • 오윤희는 더워서 몸이 다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몸을 비틀며 신음하던 그녀의 피부에 무언가 시원한 것이 닿았다. 오윤희는 어린아이처럼 그 차가운 무언가를 껴안았고, 이때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 ‘뭔가 이상해!’
  • 몽롱하던 정신이 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힘겹게 눈을 떠보니 흐릿한 사람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힘껏 그 사람을 밀치려 했으나 남자는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