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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 결혼 [합본]

첫 만남에 결혼 [합본]

곰jelly

Last update: 2023-12-14

제1화 저랑 결혼할래요?

  • 오윤희가 구청에 도착했을 때, 혼인신고를 하기로 한 예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이미 약속 시각이 삼십 분이나 지난 터라 상대에게 전화하려던 찰나,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 “오윤희 너 이 사기꾼아! 너 대학교 다닐 때 소문이 아주 안 좋았다며? 그런데 지금 나랑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꿈 깨!”
  • “어쩐지 선을 본 지 3일 만에 결혼 얘기를 꺼내더라니, 내 전 여자친구가 너랑 같은 대학에 다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너한테 속아 넘어갈 뻔했잖아. 아, 재수 없어!”
  • 뚜뚜뚜, 그러고 전화가 끊겼다.
  • 오윤희는 변명 한마디 못해보고 상황이 종료되어 버렸다.
  • 그녀는 손가락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핸드폰을 꽉 잡으며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결국엔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 남자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들의 혐오스러운 시선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오윤희의 마음을 찔렀다.
  • 2년 전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 그 어두운 밤,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오윤희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 멀지 않은 곳에 우물처럼 깊은 한 쌍의 눈동자가 오윤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긴 손가락으로 휠체어 손잡이를 무심코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 “대표님.”
  • 이때 젊은 남자가 다급한 표정으로 남욱에게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 “이은정 씨께서 차가 많이 막힌다고 한 시간 정도 늦게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 “오지 말라고 해.”
  • 남욱은 차가운 시선을 여전히 오윤희에게 고정한 채, 담담히 말했다.
  • “난 일부러 약속 시각에 늦는 여자는 질색이니까.”
  • “하지만….”
  • 수행 비서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어르신께서 자꾸 재촉하시잖아요….”
  • 그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남욱은 휠체어 전동 버튼을 누르더니 오윤희에게 다가갔다.
  • “저기, 저랑 결혼할래요?”
  •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어둠의 끝자락에서 방황하던 오윤희를 현실로 이끌었다.
  • 고개를 든 오윤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 언제 온 건지, 휠체어를 탄 남자가 그녀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는 숨 막히게 완벽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깔끔한 눈썹과 별을 닮은 눈동자, 흠잡을 데 하나 없이 정교한 오관과 얼굴 라인을 가진 남자였다.
  • 심플한 디자인의 하얀 셔츠는 얼핏 보기에도 고가의 제품이었는데 그의 완벽한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 휠체어를 타고 있기는 했지만 우아하면서도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마치 벼랑 끝에 핀 꽃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아찔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 오윤희는 순간 넋을 잃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남자가 재차 물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 “뭐라고요?”
  • “아까 통화하시는 거 들었어요. 결혼이 많이 급하신가 봐요?”
  • 그 말에 오윤희는 숨이 턱 막히면서 다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 “이것도 인연이네요. 저도 그쪽이랑 같은 상황이거든요.”
  • 오윤희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너무 담담해서 전혀 인생의 큰일에 대해 의논하는 게 아니라 사업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 필요에 의한 계약을 하는 건데, 안 될 건 없잖아요?”
  • 그제야 오윤희는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됐다. 눈앞에 이 남자는 지금 진심으로 자신한테 청혼하는 것이다.
  • 하지만 오늘 처음 만났는데 너무 황당한 짓 아닌가!
  • “저기 선생님.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잖아요. 이건 좀 너무 성급한 결정 같아요.”
  • “그쪽이 선봐서 만난 남자들도 서로 모르는 사이였잖아요.”
  • 남자의 담담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에 오윤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 “아, 알겠어요. 혹시 제가 장애가 있어서 싫으신 건가요?”
  • “당연히 아니죠.”
  • 오윤희는 곧장 부인했다. 하지만 남자의 야릇한 눈빛을 마주하고 나니 왠지 이 남자의 덫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저기요.”
  • 남자는 양손을 교차해서 긴 다리에 걸쳐 놓으며 뜨거운 눈빛으로 오윤희를 바라보았다.
  • “저는 그쪽이 지금 급히 결혼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가 언제 생길지 누가 알아요?”
  • 오윤희는 거의 설득당하고 있었다.
  • 그녀는 진짜 결혼 상대가 필요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S시티 호적을 가진 결혼 상대가 필요했다. 그래야 현지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고 엄마의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 그녀는 휠체어를 탄 남자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 “그쪽은… S시티 사람인가요?”
  • 남자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답했다.
  • “그래요.”
  • 오윤희는 말없이 호적등본을 꽉 움켜쥐었다. 비록 눈앞의 이 남자가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외모든 매너든 그녀가 예전에 만났던 그 이상한 남자들에 비하면 수백 배 나았다.
  • ‘오윤희, 너 지난 3개월 동안 줄곧 이른 시일 내에 결혼 할 수 있는 현지인을 찾고 있었잖아? 그 사람과 결혼하고 현지 거주권을 가지려고. 지금 눈앞에 기회가 왔는데 뭘 꾸물거리고 있어?’
  • 마음이 너무 복잡했지만 결국 오윤희는 입술을 깨물며 마지막 남은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 “좋아요, 그렇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