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5화 내가 해볼게

  • 연꽃 아파트.
  • 한 싱글 오피스텔에서 강서서는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 반면, 아기님은 우유 한 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 “여기가 이모가 평소에 사는 곳인가요?”
  • “맞아, 방이 작지? 으리으리한 너희 집이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 강서서는 대충 둘러대고, 다듬어 놓은 채소를 접시에 담아 요리를 준비했다.
  • 아기님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 “집에 이모 혼자 있어요?”
  • “그래.”
  • “이모는 가족이 없어요?”
  • “있지, 하지만 여기서 안 살아. 보통 혼자 살아.”
  • 아기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혹여나 그녀가 슬퍼할까 봐, 재빠르게 진지한 태도를 취해 그녀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 “걱정 마요. 이제 저까지 보태면 두 사람이 되는 거예요.”
  • 강서서는 이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 그녀는 꼬마가 참으로 당찬 아이라고 생각했고, 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들었다.
  • “자, 이모는 이제 요리를 시작할 테니, 여기는 기름이 많이 튈 거야. 밖에 나가 잠깐 앉아 있으면 금방 끝날 거야.”
  • “네.”
  • 꼬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밖으로 나가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 강서서는 슬슬 바빠지기 시작했다.
  • 그녀는 평소에 돈을 아끼기 위해 스스로 요리해 먹는데 익숙해서 요리 솜씨는 꽤 좋았다.
  • 세 가지 요리와 국 하나가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식탁 위에 차려졌다.
  • 해산물, 갈비, 채소 요리가 있었고, 고기와 채소가 잘 어우러져 있는 식단이었다. 맛, 향, 비주얼이 모두 훌륭해서 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겼다.
  • 그러나 강서서는 조금 걱정했다.
  • 눈앞의 이 사람은 허 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인 게 확실했고, 평소에 진수성찬을 먹는 데 익숙해 져서 이런 가정식 요리가 입에 맞을지 몰랐다.
  • 강서서는 밥 한 그릇을 담아 아기님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 “일단 먹어 봐. 혹시 입맛에 안 맞으면 이모한테 얘기해. 이모랑 같이 나가서 외식하자.”
  • 아기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그마한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한입에 넣었다. 양 볼이 볼록 튀어나온 채 꼭꼭 씹어먹고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귀여웠다.
  • 강서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함께 앉아 밥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초인종 소리가 다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 강서서는 수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평소에 그녀의 집으로 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녀는 의문스러움을 가득 품고 문을 열러 갔다.
  • 훤칠한 실루엣이 그녀의 집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 신화에 등장하는 신처럼 준수한 얼굴은 마치 정교한 조각품과도 같았다. 고운 입매는 일자로 쭉 늘어져 있었고, 수려한 이목구비는 차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돋보였으며, 차가운 눈매는 밤바다만큼 깊고 그윽했다.
  • 착 감기는 슈트 속에 감춰진 다부진 몸매는 늠름하게까지 보였고, 늘씬한 두 다리는 바지 핏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분위기, 몸매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 강서서는 태어나서부터 이토록 훤칠한 남자를 처음 보았다.
  • 그녀는 순간 넋이 나가 있었다.
  •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남자의 정체에 관해 물으려고 하는 찰나, 뒤에서 덜컹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강서서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그제야 그녀는 아기님이 숟가락을 식탁에 내동댕이치고 오만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그 짧은 다리를 움직여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 그리고 문을 세게 닫았다!
  • 허지신은 어이가 없었다.
  • 강서서도 할 말을 잃었다.
  • 그녀는 대체 무슨 일인지 당혹스럽기만 했다.
  • 그리고 여전히 의문으로 가득 찬 그녀 앞에서 그 남자는 천천히 입을 뗐다.
  • “안녕하세요. 저는 허지신이라고 합니다. 신이 아버지예요.”
  • 강서서는 깜짝 놀랐다.
  • 그녀도 가족이 조만간 찾아오리라 생각했지만, 허지신이 직접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남자에 관해 그녀도 들은 바가 있었다.
  • 소문에 의하면, 그는 매사에 겸손한 태도를 보였고, 냉정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함으로 가히 전설 급이라고 했다. 또한, 권세가 막강했고, 신분이 워낙 높아 다들 굽신거리기 바빴다.
  • 그의 남동생인 허지범 역시 엘리트에 센스까지 겸비했으며, 비즈니스 관련 업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 예전과 같았으면, 이런 사람은 그녀와 인연이 아예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오늘, 그가 자신의 초라한 보금자리로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 강서서는 마지못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 “안녕하세요, 신이를 데리러 온 거죠?”
  • “네.”
  • 허지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을 흘끗 들여다보았다.
  •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당연하죠.”
  • 강서서는 재빨리 옆으로 돌아섰다.
  • 허지신은 발을 성큼성큼 내디뎠다. 1.8 미터가 넘는 거구가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강서서는 자신의 비좁은 보금자리가 더욱 좁은 감을 느꼈다.
  • 허지신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단지 무의식적으로 쓱 훑어보았다.
  • 비록 방은 작았지만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고,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차려져 있어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듯해지는 거 같았다.
  • 허지신도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몰랐다.
  • 이곳에 도착하기 전, 그는 강서서의 자료를 본 적이 있다.
  • 그녀의 배경에 대해 대충 알고는 있었다.
  • 그는 당시 속으로 강서서가 아마도 목적을 가지고 신이한테 다가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 소문에 따르면, 허지신은 여자를 절대 가까이하지 않았고, 신이도 낯선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싫어했다. 그 때문에 강서서는 신이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알고, 신이한테 잘 보이려고 했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 강서서는 이런 그의 생각을 모른 채 뒤에 서 있었다.
  • 단지 허지신이 식탁 위의 음식을 발견했을 때, 조금 부끄러워했다.
  • “제가 한 건 전부 보잘것없는 음식들이라, 작은 도련님의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어요.”
  • 허지신은 이 말을 듣고 담담하게 말했다.
  • “그 정도로 까다롭지 않아요. 신이는 뭐든 잘 먹어요. 그나저나, 오늘 강서서 씨가 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강서서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 “아니에요, 신이가 엄청 착해서…. 음…. 지금은 왜 갑자기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 “이건 강서서 씨와 아무 상관없습니다. 아마도 저한테 화가 나서 그런 거죠. 방에서 불러내면 그만입니다.”
  • 허지신은 말을 마치고, 침실 입구까지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 “신아, 이제 집에 가자. 나와.”
  • 신이는 대답이 없었다.
  • 허지신은 예상했다는 듯이 참을성 있게 말했다.
  • “3일 동안 삐져 있었으면 충분해. 이제 화 풀 때도 되었잖아? 넌 더는 세 살배기 아이가 아니라고.”
  • 이 말을 뒤에서 듣던 강서서는 괜히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 하지만 신이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 허지신은 눈썹을 치켜들고 차가워진 말투로 말했다.
  • “허북진, 1분 줄 테니 당장 나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쳐들어간다.”
  • 마침내 방안에서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 강서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 이런 위협과 협박 속에서 밖으로 나올 일이 없었다.
  •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제안했다.
  • “허지신 씨, 아니면 저한테 맡겨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