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허지신이 허 씨 그룹의 사장님으로서, 귀하신 몸을 이끌고 직접 픽업하러 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가 자신을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것일 수도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생각을 곱씹을수록 후자에 가깝다고 느낀 강서서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짐을 챙겨 건물에서 내려와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
비록 이른 시간이었지만, 거리에 오가는 차량은 꽤 많았다. 그러나 오늘 밤, 그녀는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빈 택시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할 때,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조용히 그녀 옆에 멈춰 섰다.
곧이어 차창이 열리더니, 성인 얼굴 하나와 아이 얼굴 하나가 드러났다.
그들은 마치 확대판과 축소판처럼 똑같이 정교했고, 똑같이 완벽했다.
확대판은 마치 신과 같았고, 축소판은 귀엽기만 했다. 이때, 신이는 오동통하고 짤따란 두 손을 뻗어 신바람이 나서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서서 이모, 데리러 왔어요.”
강서서는 몸 둘 바를 모르면서, 그의 자그마한 손을 잡기 위해 서둘러 몇 걸음 앞으로 나아 갔다. 그리고 그녀는 차 안의 남자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허지신 씨, 직접 올 필요까진 없는데요? 제가 집으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괜찮아요. 일단 차에 타고 얘기해요.”
허지신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조금 더 안쪽으로 움직였다.
강서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눈 딱 감고 올라탔다.
그녀는 허지신이 진짜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차에 올라타자, 신이는 바로 그녀의 다리에 올라타 안아달라고 했다.
강서서는 기꺼이 신이의 말랑말랑한 몸을 품에 끌어안았다.
허지신은 우아하게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식사하셨나요?”
“아직요.”
강서서는 무심코 대답하고는 깜짝 놀라면서 바로 물었다.
“당신들은요? 식사했어요?”
그녀는 일 때문에 바빠서 밥 먹는 것을 깜빡했지만, 신이도 덩달아 굶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했다.
허지신은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대답했다.
“신이는 빵으로 대충 때웠고, 저는 아직 안 먹었어요.”
“그럼 다행이고요.”
강서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바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고의는 아니었어요.”
“괜찮아요. 신이는 아직 배고프지 않아요.”
신이는 얌전하게 대답하며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강서서는 즐거운 듯 깔깔 대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허지신은 대답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았다. 항상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그의 눈동자에서 자기도 모르게 따스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오늘 밤 레스토랑을 예약했는데, 그냥 외식하죠.”
“너무…. 과분한데요?”
강서서는 순간 머뭇거렸다. 그녀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마치 한 가족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허지신은 거절은 허용치 않는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과분할 게 뭐가 있어요. 저랑 신이가 이틀 동안 강서서 씨한테 그렇게 폐를 끼쳤는데, 밥 한 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차는 이미 한 중식 레스토랑 앞에 도착했다.
강서서는 신이를 품에 안은 채 차에서 내리자마자, 문 베이 레스토랑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이 레스토랑은 그야말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이는 J 시티에서 아주 유명한 곳으로 우아한 내부 인테리어를 기본으로 예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룸까지 완비했고, 맛깔스러운 요리 또한 일품이었다. 게다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푸드 매거진은 앞다투어 기사를 냈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 레스토랑을 방문하기 위해서 적어도 두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과거의 강서서는 이런 곳에서 돈을 주고 밥을 먹는다는 자체가 불가능했다.
현재의 그녀는 옆에 서 있는 이 부자 덕분에 가능해졌다.
세 사람이 나란히 식당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인사를 하고, 세 사람을 룸으로 안내했다.
식탁 위에는 메뉴가 놓여 있었고, 허지신은 강서서에게 물었다.
“강서서 씨, 혹시 가리는 거 있어요?”
“아니요, 뭐든 잘 먹어요.
무던하네!
허지신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럼 알아서 주문할게요.”
그는 메뉴판을 보면서 네 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음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적당히 먹을 만큼 주문했다. 만약 남기더라도 낭비까지는 아니었다.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허지신은 가만히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강서서는 신이랑 대화를 주고받고 있어서 딱히 어색해하지도 않았다.
음식이 전부 나오자, 허지신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항상 이렇게 바쁘시나요?”
강서서는 대답했다.
“딱히 그렇진 않아요, 전에는 그냥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이라 전혀 안 바빴죠.
이번에는 갑자기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여기까지 얘기한 그녀는 갑자기 주춤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허지신이 대답했다.
“감사할 게 뭐가 있어요. 게다가, 제가 기회를 준 것도 아닌데요. 신이가 당신을 선택한 거죠.”
“그래요?”
강서서는 별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심을 했다.
허지신은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우아하게 말했다.
“당연하죠.”
강서서는 눈을 깜빡이더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기회를 준 사람이 허지신이든 신이든, 그녀한테는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이 따듯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번 생일 파티를 성공시키기로 마음을 더욱 굳게 먹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세 사람은 나란히 식당에서 걸어 나왔다.
신이는 다시 집으로 끌려갈까 봐, 두 팔로 강서서의 다리를 꼭 껴안고 그녀의 뒤에 숨어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허지신을 바라보았다.
허지신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면서 강서서를 향해 말했다.
“가요, 데려다줄게요.”
강서서는 그가 다시 자고 가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쓱 쳐다보았다.
허지신은 그녀의 표정을 흘끗 엿보고 눈에 웃음기가 가득 찼다.
“걱정 마요, 오늘 저녁은 일이 있어서 폐를 끼치지 않을게요.”
이 말을 들은 강서서는 얼굴이 확 달아오는 거 같더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허지신의 눈에는 아무도 모르게 웃음기가 돌았고, 강서서를 위해 차 문을 열었다.
30분 후, 차는 연꽃 아파트에 도착했다. 강서서가 신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자 허지신도 다시 떠났다.
깜깜한 밤을 뚫고 차는 성금 펜션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J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펜션 단지로, 이곳에 사는 사람은 전부 재벌이거나 신분이 귀한 사람들이다.
차고에 차를 주차한 후 허지신은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그를 본 집사는 얼른 깍듯이 마중을 나가 재킷을 건네받았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응.”
허지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신발을 갈아 신었다.
그가 신발을 막 갈아 신은 찰나에, 집안에서부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허지범이 치파오 차림을 한 중년 귀부인과 함께 뛰어나왔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허지범은 무심코 물었다.
그 귀부인은 오히려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눈으로 그의 주변을 훑기 바빴다.
“우리 아가는 어디 있어? 너랑 같이 돌아온 거 아니야?”
허지신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들 왜 일찍 돌아온 거죠? 아버지께서 며칠 뒤에 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귀부인은 더는 못 참겠는지 바로 말을 받아쳤다.
“더는 못 기다리겠어. 내 아가가 너무 보고 싶어. 사람은 어디 있어? 어디로 보낸 거야?”
“그래, 형. 신이는? 설마 잃어버린 건 아니지? 아빠랑 엄마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본가로 들어가지도 않고 곧장 여기로 왔어.”
허지범 또한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허지신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와….”
“뭐라고? 신이를 친구 집에 두고 왔다고? 어떤 친구?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우리 신이는 낯선 사람을 싫어한다고. 만약 자다가 한밤중에 깨서 울면 어떡해!”
귀부인 즉 허 씨 가문의 사모님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이놈아! 아버지라는 녀석이 너무 덜렁대는 거 아니야! 얼른 가서 신이를 데리고 와!”허지범도 자기 엄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얼른 말을 보탰다.
“그래, 형. 어떻게 신이를 밖에 내버려 둘 수 있어? 그렇게 귀여운 아이가 납치당하면 어떡해?”허 씨 가문의 할아버지도 소식을 듣고 방에서 나왔다. 그는 마침 허지범의 말을 듣더니 순간 어리둥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