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서는 이 말을 듣고 넋이 나갔다. 그녀는 침대를 절반 나눠달라고 요구하는 그가 참으로 뻔뻔스럽게 느껴졌다.
또한, 이 사람이 진짜 허지신이 맞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그는 분명 귀한 신분에 도도하다고 소문이 파다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귀한 신분만 가진 거 같았다. 아니면 이런 실없는 소리도 안 했을 것이다.
그녀가 한창 의구심을 품고 있을 때, 허지신은 그제야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그는 당혹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도도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왔다.
“신이가 아직 샤워를 하지 않아서, 강서서 씨가 수고해주셔야 할 거 같아요.”
강서서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럼요.”
그녀는 대답을 마치고 나서야, 그가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돌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도 어리석게 다시 언급하지 않았고, 순순히 신이가 입을 옷을 찾으러 몸을 돌렸다.
강서서의 집은 작아 보이긴 했지만, 없는 게 없었다. 심지어, 옷장 가득 아기 옷도 채워져 있었다.
이것은 그녀가 지난 5년 동안 그 아이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비록 평생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해마다, 분기마다 한두 벌씩 준비했다.
게다가, 신이는 그 아이와 나이도 비슷했기에 강서서는 망설임 없이 맨 위층에서 아기 젖소 파자마를 꺼냈다.
파자마는 엄청 귀여웠다!
그러나 그녀한테 허지신이 갈아입을 만한 옷은 없었다.
허지신은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
20분 후, 깨끗이 샤워를 마친 신이는 강서서에 안긴 채 욕실에서 나왔다. 그는 젖소 파자마를 입고 있었고, 이는 마치 오로지 그를 위해 준비한 옷처럼 몸에 꼭 들어맞았다.
이를 본 허지신은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질문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포기했다.
강서서 또한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사람에게 설명할 의사는 없었고, 서로 친해졌다고 해도, 그녀는 과거에 대해 너무 깊이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결국, 그녀는 신이를 안고 방에 들어갔다. 곧이어, 깨끗한 이불을 들고나와 허지신에게 건네줬다.
“소파가 좀 작아서 잠자기 불편할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오늘 밤 감사해요.”
허지신은 이불을 받으려고 손을 뻗다가, 강서서의 손등에 무심코 닿았다.
서로의 피부가 맞닿는 순간, 강서서는 온몸이 굳어지더니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부끄러운 듯 손을 급히 뗐다.
허지신은 아직 그 부드러운 촉감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는 눈빛이 가라앉더니 살짝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이 순간, 강서서를 향한 그의 경계심은 조금 녹아 내리는 듯 싶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감정이 그를 덮쳤다.
그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강서서는 허지신의 마음을 전혀 몰랐고, 방으로 돌아가 잠옷을 챙겨 샤워하러 갔다.
집에 남자가 한 명 더 생겼더니, 여러모로 불편했다.
그나마 강서서는 보수적인 편이었고, 입고 있는 잠옷도 차분한 느낌에 가까웠다. 그녀는 방에서 나오자, 허지신이 이미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잠이 든 것 같았다.
강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조심스럽게 불을 끄고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갑자기, 그녀의 뒤에 누워 있던 허지신은 눈을 번쩍 떴다.
새카만 밤처럼 깊은 눈동자가 그녀의 뒷모습을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늘씬한 몸매를 덮고 있는 답답한 파자마에는 곰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어 유치하면서 유치했지만, 허지신은 왠지 모르게 아랫배에 피가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항상 자제력을 잃지 않았던 곳에 희미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탕!
허지신은 문이 닫히고 나서 반나절 만에 그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그는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만난 지 하루도 채 안 된 여자에게 반응한 것이다!
……
다음 날, 강서서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허지신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가 남기고 간 메모가 놓여있었다.
급한 일 때문에 먼저 갑니다. 신이를 부탁해요. 저녁에 직접 픽업하러 올 테니 업무상 손해는 보상해 주겠습니다.
강서서는 메모를 읽고 나서 어이가 없었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식을 “낯선” 여자의 집에 두고 가는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믿었고, 그녀가 나쁜 짓을 꾸미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투덜대던 강서서는 휴대전화를 꺼내 매니저님에게 전화를 걸어 휴가를 내려고 했다.
그녀는 회사가 너무 바빠서 가망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매니저님은 의외로 두말하지 않고 동의했다.
“알고 있었어. 허 씨 그룹에서 이미 전달받았어. 네가 지금 그들과 파티 관련 진행 상황과 세부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했어. 서서야, 이 프로젝트가 끝까지 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너한테 달렸어. 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 해. 만약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이달에 보너스로 2천만 원을 줄게!”
강서서는 깜짝 놀랐다.
2천만 원은 강서서 어머니의 병원비로 몇 달 동안 버틸 수 있는 금액이다.
그녀는 결국 신이의 덕을 보게 되어 이토록 풍부한 혜택을 받을지 생각지도 못했다!
……
이때, 허 씨 그룹 사장실.
가연은 허지신에게 오늘 하루 일정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었다.
“오전 9시에는 회사 임원 회의입니다. 10시는 주주총회이고, 11시에는 해외 지사와의 원격 미팅입니다. 오후 2시는 YT 은행 곽 사장님과의 약속이 있으며, 4시에는 글로벌 그룹 고 사장님이 골프모임에 초대했습니다. 저녁 7시에는 송 씨 가문 어르신의 생신이라서 사장님이 꼭 참석하길 바란다고 하네요.”
허지신은 문서를 확인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그녀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전 세 차례 회의는 내가 리드할게. 오후와 저녁 행사는 나 대신 지범을 보내.”
가연이 막 대답하려고 하는 찰나에, 깜짝 놀라는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어떻게 도착하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업무가 나한테 닥치는 소리가 들리지? 형, 나한테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거 아니야? 출장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고! 숨 돌릴 틈은 줘야 할 거 아니야.”
지금 막 나타난 사람은 바로 허 씨 가문 둘째 도련님, 허지범이었다. 또한, 그는 허 씨 그룹의 2인자이기도 했다.
그는 비록 시니컬한 태도로 매사에 임하고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을 처리하면서 그의 형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수려한 외모에 품위가 넘쳤으며 마초적인 기질을 타고나, 허 씨 그룹의 대표로 언론에 얼굴을 자주 드러내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의 인기는 허지신한테 전혀 밀리지 않는다.
이때, 그는 앞발로 문지방을 가로지른 채, 뒤발은 떡하니 버티고 서있으면서 당장이라 도망칠 기세를 보였다.
허지신은 느긋하게 그를 쳐다보더니,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대꾸는 허용치 않는다는 식으로 명령했다.
“들어와!”
허지범은 최대한 불쌍한 척 느릿느릿 걸어들어왔다.
가연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둘째 도련님.”
허지범은 손을 대충 흔들면서 인사를 받았고, 손에 들고 있던 자료를 건네면서 허지신 앞에 놓았다.
그는 단지 서류를 건네주러 왔을 뿐인데, 자신에게 뜻밖의 재앙이 닥칠 줄은 몰랐다. 결국, 그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형, 나 저녁에 약속이 있단 말이야. 형 대신 못 갈 수도 있어.”
허지신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의 그 어장 속 물고기들은 하루 안 본다고 도망치진 않아.”
“누가 그래! 이번에 이 여자는 내가 손에 넣기까지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데!”
허지범은 떳떳하게 받아쳤다.
허지신은 코웃음을 쳤다.
“음주와 가무에 빠져 다른 일을 안 하느니 차라리 없기만 못해. 네가 진짜 능력이 있다면, 얼른 결혼해서 며느리를 집에 데려가면 부모님이 무척 좋아 하실 거야.”
허지범은 이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형, 이런 끔찍한 말은 좀 그만할래? 나는 싱글 주의라고, 여자 따위에 내 모든 인생을 바치는 일은 없을 거야. 노인네 좀 봐! 엄마한테 평생 잡혀서 살고 있잖아. 볼 때마다 저런 인생은 너무 참담하다고 생각해.”
“너도 이제 어린 나이는 아니야. 엊그저께 어머니가 재벌가 따님 사진을 한 묶음 가져오셨는데, 내가 보기엔 나쁘진 않았어. 선 자리 한 번 알아봐 주지.”
허지신은 위협적인 어조로, 그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허지범은 울상이 되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올해 27살밖에 안 된다고. 형보다 2살이나 어려. 형이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내가 무슨 걱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