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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독사 사건 1

  • 로열 커피 대회 우승이라는 타이틀에 기분이 좋아진 정하늘은 서둘러 다시 단장한 뒤, 기쁜 표정으로 최시월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 정하늘은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여시준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로 간 건지 한 바퀴 샅샅이 둘러보아도 여시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 그녀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잡고 물어보았다.
  • “여 대표님은?”
  • “이미 가셨어.”
  • “가실 때 뭐라고 하시진 않았어?”
  • 정하늘이 물었다.
  • 그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네 언니라는 사람과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어. 주위에 경호원들이 있어서 나도 정확한 내용은 듣지 못했는데 그다지 즐거운 분위기는 아니었어.”
  • “즐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 정하늘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물었다.
  • “어떤 분위기였는데?”
  • “나도 몰라. 어쨌든 마지막에 여 대표님께서 뭐라고 하시더니 곧장 발걸음을 돌리셨어. 너희 언니가 쫓아가서 뭐라고 하는데 경호원들이 앞을 가로막더라고.”
  • “그렇다는 건, 둘 사이가 생각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는 거네?”
  • 그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이지. 아무리 예뻐도 시골에서 올라왔잖아. 여씨 가문처럼 대단한 가문에서 시골뜨기랑 무슨 깊은 인연이 있었겠어? 하늘아, 너 절대 기죽지 마. 나는 여 대표님이랑 어울리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생각해!”
  • 그러자 기분이 좋아진 정하늘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 “나는 이래서 네가 좋다니까. 아빠한테 얘기해서 너희 그룹에 오더를 많이 주라고 할게.”
  • “정말 잘 됐어! 하늘아, 고마워….”
  • 두 사람이 즐거운 대화를 나는데 가까이에 있던 몇몇 여자들이 비아냥거렸다.
  • “정하늘, 언니 얼굴을 보더니 화병 나서 쓰러진 주제에 무슨 낯으로 다시 내려와?”
  • “나였으면 방구석에서 3년은 있다가 사람들이 아까 사건을 잊었을 때쯤 되어서야 다시 내려왔을 거야!”
  • 화가 난 정하늘이 곧장 그들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 ‘안 돼! 저런 애들이랑 싸워봤자 나한테 득 될 것이 없어.’
  • 어차피 저들은 갈대와도 같아서 바람이 부는 쪽으로 기우는 부류들이었고 저런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낸다는 건 이성적이지 못한 선택이다.
  • 저들과 싸워봤자 그녀의 이미지만 더 추락할 뿐이었다.
  • 얼마 후면 재벌 가문들 사이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평가가 있을 예정이다. 이런 사소한 다툼들 역시 평점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었다.
  • 지금 중요한 건 최은하를 다시 시골로 쫓아버리는 일이다!
  • ‘최은하만 사라지면 내가 가장 주목받는 존재가 될 거야!’
  • 그렇게만 된다면 저들도 감히 이런 소리를 지껄이지 못할 것이다.
  • 아득한 상상이 정하늘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 ‘최은하를 빨리 치워버려야겠어.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야. 시간만 끌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
  • 깊은 밤.
  •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고용인들은 뒷정리를 마친 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 최은하의 방도 정리가 끝났다. 정도식은 그녀에게 베란다가 있는 큰 방을 선물했다. 이것만 봐도 정도식이 그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 물론, 정도식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10년 만에 다시 만난 딸이 아니라, 가문에 큰 이익을 가져다줄 도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을 최은하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 그리고 또 다른 발견은 후반부터 줄곧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고용인 한 명이었다.
  • 그래서 최은하는 씻고 자리에 누운 뒤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 이 집안사람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 정하늘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어떻게 하면 최은하를 골탕 먹일까 생각했다.
  •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절묘한 생각이 있었다.
  • “유모, 내 방으로 좀 와줘.”
  • 잠시 후, 유모가 방으로 들어왔다.
  • “아가씨, 지시하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 억대의 가치를 가진 팔찌를 받은 뒤, 유모는 이 모녀에게 더욱 충성을 보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다른 사람들은 이제 정하늘에게 둘째 아가씨라고 부르지만 유모에게는 정하늘이 유일한 아가씨였다.
  • 정하늘이 물었다.
  • “그년은 이상한 낌새 없었어?”
  • 유모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 “파티가 끝나고 대표님 서재로 들어가서 대화를 나눈 것 외에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습니다. 나올 때 카드 한 장을 들고 나오더군요. 아마 대표님께서 용돈을 주신 거겠죠. 그러고는 방으로 가서 나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중간에 물 한잔 시킨 것 외에는 아직까지 별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 정하늘의 두 눈에 질투가 일었다.
  • 그녀의 용돈은 전부 엄마인 최시월이 챙겨줬다. 소문난 구두쇠인 정도식이 최은하에게 오자마자 카드를 건네다니!
  • 정하늘은 하루빨리 최은하를 치워버려야겠다는 다짐이 더욱 굳건해졌다!
  • “유모, 나 필요한 게 있어. 그걸 구해다가 그년 방에 넣어줘.”
  • “그게 뭔데요?”
  • “독사!”
  • 정하늘에게는 다 작정이 있었다. 그들의 저택은 산에 둘러싸인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야밤에 독사 한 마리가 방에 들어가서 사람을 물어 죽였다고 해도 그녀가 의심을 살 일은 전혀 없었다!
  • “도, 독사요? 최은하를 독살하려는 건가요?”
  • 유모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비록 이 두 모녀를 위해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살인은 해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 “왜? 싫어?”
  • “싫은 게 아니라… 제가 두 분께 충성인 건 아가씨도 아시잖아요. 하지만 사모님께서는 절대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 “됐어!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엄마가 겁이 많아서 시간을 끌수록 위태로워진다는 생각을 못 하시고 계신 거야. 이런 일은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정답이야!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을 시키면 돼. 하지만 유모, 막내아들이 도박에 빠져서 집에 빚이 많다며? 그래서 유모가 우리 집에서 가져간 물건이 얼마지?”
  • 유모가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정하늘을 바라보았다.
  • 어린 나이에 벌써 다른 사람의 약점을 쥐고 협박하는 법을 터득하다니!
  • 유모가 이 별장에서 도둑질해간 물건은 죄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것들이었다. 만약 절도죄로 재판에 선다면 몇 년은 감옥에서 썩어야 할지도 모른다….
  • 정하늘이 말을 이었다.
  • “물론, 유모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보살펴준 사람이잖아. 이 일만 도와준다면 아까 내가 말한 일들은 영원히 비밀로 묻힐 거야. 그리고 앞으로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직접 얘기해. 그러니 이제 선택해. 할 거야? 말 거야?”
  • 유모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 최은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심은 늦추지 않고 이상한 소리라도 들리면 바로 일어날 수 있는 상태였다.
  • 그렇게 얼마나 잠들었을까, 창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바로 잠에서 깬 최은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 베란다 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에 멀리 사라졌다.
  • 누군가 베란다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
  • 하지만 무슨 짓을 했는지 방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 최은하는 잠시 누워있다가 그 사람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선 뒤에야 아까 정도식이 준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휴대폰불빛으로 창밖을 비췄다.
  • 베란다에는 아무도 없었다.
  • 잠시 서있다가 그냥 돌아갔다?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 ‘내가 잠들었나 감시하러 왔던 걸까? 아니야,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