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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조사 개시

  • 정도식은 그제야 침대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정하늘이 떠올랐다.
  • 그는 고용인들을 시켜 정하늘을 구급차로 옮긴 뒤, 최은하를 데리고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 “여보! 나도 데려가요!”
  • 최시월이 눈물을 흘리며 사정했다.
  • “하늘이는 내가… 아기 때부터 업어서 키운 아이잖아요. 집에서 소식만 기다릴 수 없어요!”
  • 정도식은 겁에 질린 최시월의 얼굴을 보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 “안 돼! 방에서 반성하고 있으라니까! 사모님을 방으로 모시고 내 명령 없이는 절대 문 열어주지 마!”
  • “네!”
  • 고용인들이 와서 강제로 최시월을 끌고 갔다.
  • 최은하는 정도식과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 “아빠, 이모랑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늘이랑 사이도 돈독해 보이시던데 혼자 집에 계시면 얼마나 걱정이 크시겠어요!”
  • 하지만 고집불통 정도식이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 “됐어. 그만 얘기해.”
  • 말을 마친 그는 한숨을 내쉬며 최은하를 향해 말했다.
  • “바보같이 착해서는. 시골 생활 힘들었지?”
  • “아니요… 잘 지냈어요.”
  • 이 말은 사실이었다.
  • 그녀는 해외에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 하지만 정도식은 그녀가 착해서 걱정끼치지 않으려고 한 말인 줄로만 오해하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
  • “너 이렇게 착해서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남을래…. 앞으로 시간 날 때 이 아빠가 차근차근 가르쳐 줄게.”
  • “고마워요, 아빠!”
  • “고맙기는, 가족인데….”
  • 그들이 이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구급차는 병원에 도착했다.
  • 심장 박동이 멎은 정하늘은 곧장 응급실로 실려 들어갔다.
  • 두 사람은 응급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 물론 초조한 사람은 정도식뿐이었다. 두 딸은 그에게 더 높은 신분 상승을 이루어줄 장기판의 말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정하늘 역시 그의 친딸이었기에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걸어 나왔다.
  • 정도식이 다급히 의사에게 물었다.
  • “선생님, 우리 딸은 어떻게 된 거죠?”
  • 의사가 정중히 대답했다.
  • “이제 고비는 넘겼습니다만, 아직 며칠 경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독이 몸에 퍼져서 10분만 늦게 왔어도 위험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독사에게 물린 거죠? 서울에 있을 법한 종이 아닌데요.”
  • 정도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그게 무슨 뜻이죠? 저희는 산에 둘러싸인 별장에 살고 있습니다. 뱀이 창문을 타고 들어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 의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이런 뱀은 기후가 따뜻한 남방에서 서식합니다. 이런 야생 뱀이 아무 이유 없이 집안에 나타났다는 게 의심스럽네요. 그랬다고 해도 남방에서 운반해 왔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은 조사가 좀 필요한 것 같네요.”
  • 정도식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굳었다.
  • “그 말씀은 이게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인위적인 사건이라는 건가요?”
  •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 정도식이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했다.
  • “내 딸을 해치려는 자가 도대체 누구야!”
  • 그러던 그의 시선이 최은하에게 닿았다. 의심의 표정이 잠깐 스쳤다.
  • 최은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분개하듯 말했다.
  • “독사를 이용해 사람을 해치려 하다니! 정말 사람도 아니네요! 아빠, 이 사건 꼭 배후를 찾아 주세요! 이건 계획된 살인이잖아요!”
  • 그 말을 들은 정도식은 서서히 의심을 거두었다.
  • 하기야 이런 일은 시골에서 금방 올라온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애가 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물며 목숨 걸고 뱀을 처치한 것도 최은하였다!
  • ‘잠시라도 은하를 의심했던 내가 바보지!’
  • “우선 집에 돌아가자. 뱀을 집에 들인 놈이 누군지 내 낱낱이 조사해 봐야겠어!”
  • “그래요, 아빠! 꼭 범인을 찾아 주세요! 오늘은 하늘이를 물었지만, 나중에 아빠를 물지 어떻게 알아요? 아빠, 빨리 범인을 찾아야 해요!”
  • 최은하가 진지하게 말했다.
  • 정도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 ‘누가 한 짓인지 걸리기만 해봐! 절대 가만 안 둬!’
  • 정도식은 정하늘을 돌볼 고용인 한 명만 병실에 남긴 뒤, 최은하와 함께 별장으로 돌아왔다.
  • 정씨 가문 별장.
  • 최시월은 비록 방에 갇혔지만 휴대폰을 압수당한 건 아니었기에 정하늘이 고비를 넘겼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하지만 독사가 방에 나타난 것이 누군가의 소행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때, 분노에 온몸을 떨었다.
  • “사모님, 대표님께서 돌아오셨어요!”
  • 방 밖에서 고용인이 살며시 보고했다.
  • 최시월은 더는 방 안에만 갇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문은 밖에서 굳게 잠겨 있고 열쇠도 정도식에게 있었다.
  • 방 안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벼루 하나를 찾아서 문을 부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 마침 집안으로 들어서던 정도식과 최은하는 위층에서 헐레벌떡 뛰어내려오는 최시월과 마주쳤다.
  • 최시월이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 “여보! 이건 분명 저년 짓이에요! 우리 하늘이를 죽이려고 일부러 남방에서 뱀을 가지고 온 거라고요! 저년 외에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 없잖아요! 여보, 우리 하늘이 불쌍해서 어떡해요!”
  • 뒤로 한걸음 물러선 최은하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 “이모, 이모는 처음부터 제가 하늘이를 해치려 한다고 의심하셨죠. 그래서 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목숨 걸고 하늘이를 구했어요… 그것도 부족하셨나요? 어떻게 저한테 이런 누명까지 뒤집어씌울 수 있죠?”
  • 최시월은 최은하를 향해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욕설을 퍼부었다.
  • “네가 아니면 누가 있겠어! 불쌍한 척 그만해! 여보, 어서 저년을 경찰서에 보내요!”
  • “그만해!”
  • 참다못한 정도식이 소리를 질렀다.
  • “이미 한번 애한테 누명을 씌운 것도 모자라 또 그러려는 거야? 이번 사건은 내가 알아서 잘 조사를 할 거야! 그러니 당신은 방으로 돌아가서 나오지 마! 뭣들 하는 거야? 어서 사모님을 모시고 방으로 올라가!”
  • “네, 대표님.”
  • 고용인들은 다시 최시월을 강제로 방으로 끌고 갔다.
  • “여보, 내 말 좀 믿어줘요! 꼭 낱낱이 조사해 줘요….”
  • 최은하는 끌려가는 최시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코브라 사건이 최시월과는 연관이 없다고 속으로 확신했다.
  • 만약 최시월도 가담했었다면 그녀는 절대 낱낱이 조사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 ‘잘됐네….’
  • 정하늘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최은하는 정도식을 보며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 “아빠,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집안 곳곳에 CCTV가 있던데 한번 돌려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밤중에 별장에 드나든 사람은 없었는지…. 그리고 근처에 암시장이 있는지 사람을 보내 알아봐요. 혹시 최근에 누가 코브라를 사간 적은 없는지.”
  • “은하 네 말이 맞다.”
  • 정도식이 집사를 향해 지시했다.
  • “아가씨 말대로 해! 그리고 별장 내 모든 사람의 방을 샅샅이 뒤져. 혹시라도 뱀이 또 있을 수도 있으니까.”
  • 밤중에 깨서 여태 분주히 돌아쳤지만, 혹시라도 독사가 튀어나올까 봐 정도식은 불안해서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 잠시 후, CCTV를 조사하던 고용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 “대표님, 밤 열한 시 좌우에 둘째 아가씨의 유모가 별장을 나섰습니다. 그분을 빼고는 오늘 아무도 별장을 나가지 않았어요.”
  • “유모?”
  • 정도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 “당장 유모 불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