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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뒤늦은 후회

  • ‘그렇게 악랄한 년을 아빠가 집에 그냥 둘리 없어. 앞으로 정씨 가문 아가씨는 나 하나야!’
  • 그녀는 둘째 아가씨라는 타이틀이 죽기 보다 싫었다.
  • “좀 빨리 가 줘요! 집에 빨리 가 봐야 하니까!”
  • 정하늘이 신경질적으로 기사를 재촉했다.
  • 차는 빠르게 달려 정씨 가문 별장에 도착했다.
  • 집안 전체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모두가 깨어 있는 것 같았다.
  • 정하늘은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서 잠 못 든 줄로 착각했다.
  • ‘역시 이 집안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주는 나야.’
  • 정하늘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 그녀는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최시월과 정도식이 따뜻하게 맞아주며 걱정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그때가 되면 그녀는 최은하가 뱀을 자신의 방에 집어넣었다고 얘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최은하는 당장 짐을 싸서 이곳을 나가게 될 것이다.
  • ‘아니지, 최은하는 원래 짐이 없었으니까 맨몸으로 쫓겨나겠네?’
  • 정하늘은 생각할수록 신이 나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 최은하가 쫓겨나는 장면만 생각해도 온몸에 피가 끓으면서 상처의 아픔도 중독 후유증도 깨끗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 “엄마!”
  • 드디어 정하늘이 거실에 들어섰다.
  • 모든 고용인들이 조용히 거실을 지키고 있었고 집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마치 조금 전에 불쾌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 이것은 그녀가 상상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 “엄마, 무슨 일 있었어?”
  • 정하늘이 의아한 표정으로 굳은 표정의 최시월에게 물었다.
  • 그녀에게 다가오는 최시월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그녀한테 뭔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 최시월은 정하늘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차마 욕설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 “몸은 좀 어때? 왜 이렇게 급하게 퇴원했어?”
  • 그제야 자신의 목적이 떠오른 정하늘은 적막한 거실 분위기는 뒤로 한 채 입을 열었다.
  • “엄마, 나 괜찮아. 아빠한테 중요한 할 얘기가 있어서 조금 일찍 돌아온 거야!”
  • 최시월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정하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할 얘기가 있으면 내일 하자. 오늘 이렇게 큰일도 벌어졌고 네가 몸 상태가 좋아지면 그때 하자.”
  • “안 돼, 엄마. 오늘 꼭 해야 해!”
  • 정하늘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최은하를 쫓아낼 방법이 생길지 확실치 않았다.
  • 그래서 더는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 정하늘은 모친이 너무 우유부단하다고 속으로 탓했다. 이럴 때일수록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 그래서 그녀는 최은하를 까발리려는 생각으로 정도식에게 다가갔다.
  • “아빠! 저 꼭 드릴 얘기가 있어요!”
  • 말을 마친 정하늘은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최은하를 쏘아보았다.
  • 최은하도 정하늘의 눈빛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얼굴에도 의미심장한 표정이 서렸다.
  • 정도식이 냉랭한 표정으로 차갑게 물었다.
  •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 그는 만약 정하늘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줄 생각이었다.
  • 하지만…
  • 정하늘이 입을 열었다.
  • “아빠, 제가 물렸던 그 뱀, 사실은 최은하가 제 방에 가져다 둔 거예요! 쟤가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저를 죽이려 했던 거라고요! 저런 악랄한 여자를 절대 집안에 계속 있게 둘 수 없어요, 아빠!”
  • 정도식은 놀란 얼굴로 정하늘을 쏘아보았다. 그런 짓을 벌이고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최은하에게 죄까지 덮어씌우려고 한다.
  • 그의 딸이 이 정도로 멍청하고 악랄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 정하늘은 정도식이 대답이 없자, 그가 아직 최은하를 보내기 아쉬워하는 줄로 알고 더 다그쳤다.
  • “아빠! 마음이 약해지시면 안 돼요! 이번에 실패했지만 언제 다시 저를 죽이려 들지 누가 알아요! 쟤가 저한테 이런 짓을 했으면 아빠한테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 정도식의 표정이 음침하게 일그러졌다.
  • 그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손을 들어 정하늘의 귀뺨을 쳤다.
  • 짝!
  • 날카로운 마찰음이 거실에 울렸다.
  • 아까 최시월이 최은하를 때렸을 때랑은 차원이 달랐다. 순간 정하늘의 입에서 시뻘건 피가 뿜어져 나왔다.
  • 그리고 이빨 하나가 피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 정도식의 귀뺨 하나에 이빨 하나가 빠져 버린 것이다!
  • 정하늘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했다.
  • ‘어떻게 된 일이지? 응당 최은하를 때렸어야 하는 거잖아? 왜 날 때린 거지??’
  • 정하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 그녀가 정도식에게 왜 그러냐고 따지려던 순간, 최시월이 달려와서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방으로 올라가!”
  • “아니,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 정하늘은 억울하고 분했다.
  • 그녀는 다시 최시월의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서서 정도식에게 따졌다.
  • “아빠, 왜 저를 때려요?! 잘못을 한 사람은 분명 따로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최은하 편을 드시는 거예요? 피해자는 저라고요!”
  • “피해자? 넌 아직도 네가 피해자라고 생각해?”
  • 정도식은 기가 막히고 혈압이 터질 것 같았다.
  • “제가 아니면 누군데요? 저 응급실까지 실려갔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고요!”
  • 정하늘은 지금 생각해도 두려웠다.
  • 최은하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그녀는 얼른 다가가서 정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 “하늘아, 아직도 거짓말만 할 거야? 이러다가 아빠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 정하늘이 가소롭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 “네가 언제부터 이 집안사람이었다고 끼어드는 거야?”
  • 최은하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 “너 아직도 모르는구나. 다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어.”
  • 그러자 정하늘이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 “그, 그게 무슨 뜻이야?”
  • 최은하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까 유모가 모든 사실을 자백했어. 네가 날 죽이려고 코브라를 내 방에 집어넣었는데 운이 안 좋게도 코브라가 다시 베란다를 타고 네 방으로 건너갔던 거야…. 하늘아,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이거 다 네가 자초한 거야!”
  • 그 말을 들은 정하늘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 ‘유모가… 날 배신했다고?’
  • 그녀는 그제야 아까 집안에 들어설 때 느꼈던 이상한 분위기와 어서 위층으로 올라가자던 최시월의 말이 떠올랐다.
  • ‘다들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최은하가 저렇게 기고만장했구나! 그래서 아빠가 내 얼굴을 때린 거야!’
  • 정하늘은 순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최시월의 옷깃을 잡았다.
  • “엄마….”
  • 최시월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딸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올라가자!”
  • 정하늘은 드디어 고집을 내려놓고 얌전히 최시월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
  • “거기 서!”
  • 등 뒤에서 정도식의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오늘부터 넌 한 달간 외부 출입 금지야! 도덕 선생님을 붙여 줄 테니까 사람 된 도리부터 배워!”
  • 정하늘은 놀라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 이 집안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이 정도식이었다. 그의 믿음과 총애를 잃는다면 쫓겨날 사람은 그녀가 될 수도 있었다!
  • 정하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 그녀는 오늘 했던 모든 일이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