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뜻밖의 초대
- 하지만 최은하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 사실상 그녀는 그런 것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 여씨 가문에 연줄을 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정씨 가문 사람들이고 그녀는 필요 없었다.
- 그래서 여시준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딱히 상관이 없었다.
- 정하늘은 최은하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 ‘어디 끝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해봐! 겉으로는 이래도 속에서는 피가 떨어질걸? 쌤통이야! 여시준 같은 사람이 왜 너 같은 촌뜨기를 마음에 품겠어?’
- 하지만 아까부터 여시준의 시선은 최은하에게 향해 있었다는 걸 그들은 알지 못했다.
- 최은하가 탑승을 마치고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여시준은 시선을 돌리고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 옆에 있던 비서는 여시준의 웃음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무슨 상황이지?’
- 그도 그럴 것이 여시준의 웃는 모습은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는 항상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을 대했다.
- ‘대표님이 웃는 얼굴을 본 게 이게 얼마 만이지?’
- 비서가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여시준이 입을 열었다.
- “저기 저 여자랑 저 집안 사람들이랑 너무 다른 것 같지 않아?”
- ‘저 네 사람 중 저 여자는 누굴까?’
- 여시준의 옆에서 오랜 세월 일한 비서는 물론 이런 의문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유독 최은하의 옷차림이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 비서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 “확실히 다르네요. 다른 세 분은 전부 명품을 걸치고 있는데 저 아가씨는… 로드샵에서 아무거나 사 입은 것 같네요.”
- 하지만 여시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 그의 반응을 본 비서는 자신이 잘못 짚은 줄 알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저 여자를 말씀하신 거 아니었나?’
- 비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여시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옷차림을 얘기하는 게 아니야.”
- 비서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내가 사람을 잘못 짚은 건 아니었네.’
- 비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옷차림이 아니면 뭐예요?”
- 여시준이 평소의 차가운 얼굴로 돌아와서 대꾸했다.
- “아무것도 아니야. 보고 계속해.”
- 그러자 비서는 곧장 하던 보고를 계속했다.
- 비행기 내부.
- 네 사람은 한 줄에 나란히 앉았다. 정도식은 최은하만 보면 화가 치밀어서 그녀에게 짐 좀 들어라, 충전기 좀 가져와라 하며 쉴 틈 없이 심부름을 시켰다.
- 모르는 사람들 눈에 최은하는 그저 그들 가족의 가정부로 보일 정도였다.
- 하지만 최은하는 원망은커녕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착실히 일했다.
- 결국 참다못한 정도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 “그만하고 이리 와.”
- 최은하가 옆에 다가가서 앉자 정도식이 물었다.
- “여 대표가 너한테 신세 진 게 있다며? 그런데 왜 널 기억을 못 하는 거지?”
- 최은하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 “그렇게 큰 도움도 아니었고 기억을 못 하시는 게 당연하죠.”
- “그러면 방법을 대서….”
- 정도식이 말끝을 흐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최은하의 표정을 보자 너무 순진한 것도 좋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만약 정하늘이었다면 진작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먼저 여시준에게 대시했을 것이다.
- 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 “됐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너 앞으로 배울 것이 많아!”
- “네.”
- 최은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이때 승무원이 다가가서 말했다.
- “정도식 고객님, 안녕하세요. 항공사 특혜로 이번에 포인트가 많이 쌓인 고객님과 가족분들께 공짜로 티켓을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드리고 있습니다.”
- 정도식이 이번에 일반석을 구매한 것도 정말 구두쇠여서가 아니라 이번에 공짜 업그레이드 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정도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감사합니다. 그러면 안내 좀 부탁드리죠.”
- 정하늘과 최시월도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 승무원의 시선이 최은하에게 닿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 “죄송합니다. 이번에 업그레이드는 세 분만 해드릴 수 있어서요. 어떻게 할까요?”
- “세 명만요?”
- 정도식은 고민에 잠겼다. 도대체 정하늘을 데리고 가야 할까, 아니면 최은하를 데리고 가야 할까?
- 최시월은 그의 고민을 알아차리고 이때다 싶어서 귓속말로 말했다.
- “당신도 봤잖아요. 은하는 약간 둔한 구석이 있어서 별 도움이 안 돼요. 이번이 하늘이 시상식이도 하니까 하늘이를 데리고 가는 게 어때요?”
- 정도식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는 고개를 돌려 최은하를 달랬다.
- “세 명만 가능하다고 하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네. 어차피 비행기에서 내리면 또 같이 이동할 거니까 괜찮을 거야.”
- 최은하는 조용히 정도식을 응시했다.
- 실망감이 없다면 거짓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서 최시월과 정하늘에게 꼬투리 잡을 빌미를 주기는 싫었다.
-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저 괜찮아요.”
- “그럼 이따 보자.”
- 말을 마친 정도식은 최시월과 정하늘을 데리고 비즈니스석으로 향했다.
- 최은하를 지나치던 순간 정하늘이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 “언니, 역시 아빠는 날 더 이뻐하시는 것 같아. 앞으로 힘내! 난 비즈니스석으로 갈 테니까 언니는 일반석에서 푹 쉬어. 비즈니스석이라고 뭐 별거 있겠어? 좀 쾌적하고 서비스가 더 좋을 뿐이지. 너무 속상해하지는 마.”
- 최은하는 우습다는 듯이 정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 “하늘아, 어서 가. 계속 꾸물거리다가 아빠가 마음이 바뀌어서 네가 아닌 나를 데리고 가시면 어떡하니?”
- 최은하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자 순간 정하늘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그녀는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가방을 챙겨 비즈니스석으로 향했다.
- 비즈니스석에 도착한 세 사람은 편히 앉아 서비스로 나오는 와인을 주문했다.
- 일반석.
- 정도식 일가가 떠나자 최은하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 그녀도 사람인데 당연히 속상했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 그래서 끊임없이 괜찮다고 자신을 속여야 했다.
- 이때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 “저기… 혹시 혼자 어디 가시는 거예요? 옆에 앉아도 될까요?”
- 훈훈한 외모의 남자가 그녀를 향해 눈빛을 빛내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
- 최은하가 차갑게 대꾸했다.
- “아니요, 저 일행 있어요.”
- 남자가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최은하 같은 여인은 그가 함부로 대시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그는 갑자기 도대체 어떤 남자가 그녀를 가질지 궁금해졌다.
- 남자가 떠나고 잠시 후, 또 누군가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 “혹시….”
- 최은하는 약간 짜증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 상대는 아까 공항 대기실에서 만났던 여시준의 비서였다.
- 상대가 자기소개를 했다.
- “저는 여 대표님 수행비서입니다. 여 대표님께서 전용기에 아가씨를 초대하셨습니다. 이미 항공사 측에는 제가 미리 얘기를 해둔 상황이고 지금 저를 따라가시면 됩니다.”
- 최은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비행기에는 사람도 많고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도 많았기에 모처럼의 휴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 “좋아요.”
- “그러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 남자가 공손히 말하며 길을 안내했다.
- 비행기에서 내리려면 비즈니스석을 지나가야 한다.
- 최은하가 다가가자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한 사람은 정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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