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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주인공의 등장

  • 정씨 가문 정원.
  • 정원에서는 한창 생일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 L 사 신상 드레스를 입은 정하늘이 한창 여러 재벌 2세들 사이에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었다.
  • “하늘아, 이 드레스 정말 예쁘다. 마치 은하수 같아!”
  • “이거 봄 시즌 신상이지? 난 사고 싶어도 못 사는데 이걸 구매했어? 너희 아빠는 역시 최고야!”
  • “생일 축하해, 하늘아. 이번에 송 감독님 캐스팅도 받았다면서? 올해 가장 빛나는 여 배우상은 무조건 너겠지? 연예계에서 잘나간다고 우릴 잊으면 안 돼.”
  • “연예계는 무슨. 하늘이는 그냥 취미로 놀러 간 거야. 하늘이 신분에 연예계에서 뜨는 건 일도 아니지.”
  • 사람들의 칭찬에 정하늘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 “다들 고마워. 난 케익 도착했나 가볼게.”
  • 별장에 돌아온 정하늘은 밖으로 나가려던 그녀의 어머니와 부딪쳤다.
  • “엄마!”
  • 그녀는 엄마인 최시월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 “오빠가 보낸 사람들은 아직도 안 돌아왔어? 오늘은 내 스무 살 생일이야. 나 이런 날에 사람들한테 우리 가문에 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당했던 숨겨둔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 최시월은 자상한 얼굴로 정하늘의 옷매무시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
  •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했어. 걱정하지 마. 그년은 절대 못 돌아와. 운이 좋아서 돌아온다고 해도 납치당해서 평생 시골에서 살다 온 애야. 시골 촌뜨기가 뭘 할 수 있겠어?”
  • 그 말을 들은 정하늘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차라리 그 시골뜨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비교 대상이 있어야 자신이 진짜 정씨 가문의 공주님이라는 것을 더 뒷받침해 줄 테니까.
  • “큰일 났어요! 사모님!”
  • 다급히 달려온 고용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 “파티장에 여씨 가문 헬기가 착륙했어요.”
  • “여씨 가문?”
  • 순간 정하늘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 “엄마, 설마 아빠가 여시준까지 초대한 거야?”
  • 놀란 건 최시월도 마찬가지였다.
  • 정씨 가문도 비록 전국 최상위권의 재벌가였지만, 여씨 가문은 전 세계 정상에 우뚝 선 대 그룹이다. 그리고 여시준은 여씨 그룹의 후계자로서, 그들이 딸 생일파티 한답시고 초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 ‘설마… 그이가 이번에 여씨 그룹에 제안한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었나?’
  • “가 보자!”
  • 최시월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기쁨이 더 컸다.
  • 만약 그들이 여씨 가문과 연을 맺게 된다면 다음 대까지도 두 다리 쭉 펴고 살 수 있을 터였다.
  • 두 모녀는 옷매무시를 정돈하고 기쁜 표정으로 정원으로 나갔다.
  • 정원에는 이미 수도권 재력가 자제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 정하늘이 다가가자 몇몇 재벌 2세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 “하늘아, 여씨 가문까지 초대하다니! 정말 대단해!”
  • “이렇게 중요한 일을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어? 진작 알았으면 메이크업을 샵에 가서 받고 왔을 텐데.”
  • 정하늘은 겉으로는 활짝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코웃음 쳤다.
  • ‘여시준이 만나러 온 사람은 나야. 네가 뭔데 화장을 해?’
  • 그녀는 저번 달 여씨 가문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여시준이 자신에게 한눈에 반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나 이제 여씨 가문 사모님이 되는 건가!’
  • 그리고 이때, 헬기 문이 천천히 열렸다.
  • 사람들의 기대 속에 남루한 옷차림의 여자가 헬기에서 내렸다.
  • 가냘픈 몸매에 얼굴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머리는 산발이 된 초라한 모습을 한 여자였다.
  • “이게….”
  • 사람들의 시선이 정하늘에게 쏠렸다. 평소 정하늘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무리 중 산 사람이 비아냥거렸다.
  • “하늘아, 저 사람도 혹시 네가 초대한 손님이야? 거지 같은데…?”
  •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정하늘이 다가가서 따지듯 물었다.
  • “당신 누구야? 누군데 내 생일 파티에 와서 분위기를 망치는 거지?”
  • “생일 파티?”
  • 최은하는 눈앞의 이 기고만장한 여자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최시월의 양녀 정하늘이었다. 하지만 흥신소 직원은 정하늘이 이모 최시월과 그녀의 친부 정도식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라고 말했다.
  • 친딸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생아를 위한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 최은하는 헛웃음이 나왔다.
  • “내가 누구냐고?”
  • 최은하가 눈앞의 여자를 노려보며 대꾸했다.
  • “누구긴 누구겠어? 네 아빠의…”
  • “너!”
  • 정하늘이 버럭 화를 내려던 찰나, 최은하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 “친딸이지.”
  • 순간 정하늘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었고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정하늘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 “너… 최은하?”
  • ‘그 시골뜨기? 역시 시골뜨기가 맞았네!’
  •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최시월이 안 되겠다 싶어서 다가가서 말했다.
  • “은하야, 정말 너야? 내가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데… 불쌍한 우리 아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 최은하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인사했다.
  • “이모, 한결같으시네요.”
  •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 보면, 그녀의 어머니의 친동생이 그녀의 아빠랑 결혼을 한 상황이었다. 처제가 형부랑 결혼을 한 상황!
  • ‘황당하네!’
  • 최은하는 그들 사이에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 손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지금의 사모님이 사실은 전 부인의 동생이었대….”
  • “그렇다면 저분은 10년 전 납치당했던 전 사모님의 딸 최은하?”
  • “지금의 정씨 그룹은 사실 최씨 가문이 일군 기업이었대. 정 대표님은 최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왔던 거고. 그런데 최씨 가문의 장녀가 죽고 최씨 그룹이 정씨 그룹으로 바뀐 거야.”
  • “그런 일이 있었어? 정말….”
  • 술렁이는 소리를 들은 최시월은 얼굴이 붉어져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 “아가, 돌아왔으면 됐어. 이모랑 가서 좀 씻고 나오자. 너 어떻게 된 거야…. 꼴이 이게 다 뭐야. 시골 생활이 많이 힘들었지?”
  • ‘이 와중에도 내가 시골에서 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보군.’
  • 최은하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등 뒤에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기.”
  • 술렁이던 사람들은 헬기에서 내린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놀라서 얼음처럼 그 자리에 굳었다.
  • 여시준!
  • 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그 여시준?!
  • “여 대표님?!”
  • 정하늘이 빨개진 얼굴로 앞으로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 “혹, 혹시 제 생일 파티에 참석하러 와주신 건가요? 감사합니다….”
  • 정하늘은 기쁨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 그녀는 여시준이 그저 사람을 시켜 축하 인사만 보내온 것인 줄 알았는데 여시준 본인이 현장에 나타났던 것이다!
  • 그녀는 봄날이 드디어 왔다고 느꼈다!
  •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환호성을 지르며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 주변에서 부러움의 눈길이 쏟아졌다.
  • 비록 양녀의 신분이지만 만약 여시준의 여자가 된다면 평생 팔자 피는 것이다!
  • 하지만 그 순간,
  • “누구지?”
  • 여시준이 그제야 정하늘을 발견했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눈빛에서 귀찮음과 짜증이 가득 섞여 있었다.
  • 여시준에게 정하늘은 그저 낯선 사람이었다.
  • “풉!”
  •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뭐야, 난 또 여 대표님이 정하늘 생일 축하해 주려고 오신 줄 알았는데, 아예 정하늘이 누군지도 모르고 계셨네.”
  • “하하하… 너무 웃겨! 내가 쟤라면 지금 당장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가서 평생 나오지 않을 거야!”
  • 정하늘의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지고 당황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웃고 있는 두 여자를 쏘아보았다.
  • 다행히 이성을 잃지 않은 최시월이 상황을 무마하려 앞으로 나섰다.
  • “여 대표님, 여기까지 방문을 해주셔서 너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 딸 생일인데 그래서 대표님께서 축하해 주시러 왔다고 오해를 좀 했나 보네요. 우리 그이랑 사업 얘기를 하시러 오셨나 본데 그이는 지금 위층에 계셔요. 올라가서 차라도 한 잔 하시죠.”
  • 그러자 손님들은 얼른 비웃는 표정을 감추었다.
  • 여시준이 직접 사업 얘기를 하러 왔다는 것, 그 자체로도 크나큰 영광이었다.
  • 하지만 그 순간, 여시준이 또 입을 열었다.
  • “그쪽은 누군데 그러시죠?”
  • 손까지 내밀었던 최시월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 ‘여 대표가 나를 몰라??’
  • “풉!”
  • 손님들은 또다시 웃음을 참느라 진땀을 뺐다.
  • ‘이 모녀, 개그 하러 나온 사람들인가?’
  • 최시월은 무안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 ‘내 얼굴도 모른다고 하고, 그러면 여시준은 도대체 누굴 만나러 온 거지?’
  •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 그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던 최은하가 사실은 여시준의 헬기에서 내렸다는 점이었다.
  • 너무 갑작스러운 등장이고 행색이 너무 초라해서 모두가 최은하와 여시준이 같이 내렸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 ‘설마 최은하와 여시준이 아는 사이?!’
  • 최시월이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여시준은 느긋하게 그녀를 제치고 최은하의 앞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