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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독사 사건 3

  • “뭐?!”
  • 사람들은 그 고용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뱀 한 마리가 쉭쉭 하며 긴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 머리는 크고 경부 양측이 부풀어 오른 흔히 볼 수 없는 뱀이었다. 그 뱀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 겁에 질린 고용인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 “도, 도망가!”
  • 그들은 비명소리와 함께 앞다투어 방을 뛰쳐나갔다.
  • 그리고 이때, 정도식과 최시월도 달려 나왔다.
  • 상황을 파악한 정도식도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며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최시월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떨리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집안에 뱀이 있어? 빨리 저 뱀부터 치우지 않고 뭣들 하는 거야!!”
  • 하지만 고용인들은 서로 멀뚱멀뚱 눈치만 볼 뿐, 누구하나 감히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 보기만 해도 무서워 죽겠는데 독사를 치우라고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 유독 가장 늦게 도착한 유모만이 복잡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 그건 다름 아닌 그녀가 최은하의 방에 가져다 놓은 뱀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서 나타난 걸까?
  • 그때 유리박스에 든 그 녀석을 가져갈 때도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지금은 더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이 독사의 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 한 시간 이내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정하늘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 하지만…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
  • 최시월은 아무도 나서지 않자 정도식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 “여보! 저 뱀 좀 어떻게 해봐요!”
  • 하지만 정도식이라고 용기가 있을까?
  • 그렇다고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가문의 가장으로서 체면을 구기기도 싫었다.
  • 딸이 뱀에게 물렸는데 아비로서 앞에 나설 엄두도 못 냈다는 소문이 밖으로 퍼지면 그의 입지도 크게 흔들릴 상황이었다.
  • ‘이게 다 저 겁쟁이들이랑 나를 등 떠민 최시월 때문이야!’
  • 정도식은 저들이 아니라면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거라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 잠시 후,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빗자루 하나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이때, 등 뒤에서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빠, 이른 새벽부터 여기서 뭐 하세요?”
  • 정도식이 고개를 돌려 보니, 잠옷을 입고 머리는 부스스한 채 금방 잠에서 깬 것처럼 보이는 최은하가 보였다.
  • 그가 난감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 “방에 뱀이 들어왔는데 하늘이가 물렸어. 내가 가서 처리해야 해….”
  • “그건 안되죠!!”
  • 최은하는 잠이 다 달아난 얼굴로 정도식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 “너무 위험해요, 아빠!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 그 말을 들은 최시월이 크게 분노하며 손을 들어 최은하의 귀뺨을 때렸다.
  • 정작 최은하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잠시 멈칫하다가 그대로 맞아 주기로 했다.
  •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최은하의 얼굴이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 ‘잘 때렸어!’
  • 최시월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 “망할 년! 네 동생이 안에서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독한 년 같으니라고,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집사! 이 년을 빨리 내쫓아 버려요!”
  • 옆에 있던 집사가 난감한 표정으로 정도식의 눈치를 살폈다.
  • 정도식이 입을 열기도 전에 최은하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말했다.
  • “아빠, 저는 단지 아빠가 걱정돼서 말렸던 거예요. 아빠는 이 가문의 기둥이신데 아빠한테 무슨 일이라도 나면 우리는 어떡하라고요? 이제야 아빠를 찾았는데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 그 말은 마침 정도식이 원하던 말이었다.
  • ‘그래, 난 이 집안의 기둥이야! 내가 없으면 처자식은 누가 먹여 살려! 역시 날 생각해 주는 건 은하밖에 없구나!’
  • 정도식이 미간을 찌푸린 채 최시월을 쏘아보았다.
  • “애는 왜 때려? 그냥 내가 걱정돼서 말린 것을!”
  • “여보, 그게 아니라 쟤는 분명 하늘이를….”
  • “이모!”
  • 최은하가 최시월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 “정말 제가 그렇게 의심스러우시면 증명해 보이면 되잖아요. 저도 하늘이를 걱정하는 사람이에요!”
  • 말을 마친 최은하는 정도식의 손에서 빗자루를 빼앗아 들고 뱀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 “큰 아가씨, 조심해요! 저건 독사예요!”
  • 참다못한 고용인들이 그녀를 말렸다.
  • 정도식은 말려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 정하늘보다 최은하가 그에게는 더 이용 가치가 있는 딸이었다.
  • “은하야, 가지 마!”
  • 정도식이 손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최은하는 그의 손을 가볍게 밀치고 뱀을 향해 다가갔다.
  • 극도로 흥분 상태였던 코브라는 최은하가 다가가자 곧장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 최은하는 ‘간신히’ 뱀의 공격을 피한 뒤, 빠르게 빗자루로 뱀의 꼬리를 쳤다.
  • 더 분노한 코브라가 무섭게 혀를 내두르며 최은하를 향해 다가갔다.
  • “쉭쉭… 쉭….”
  • 겁에 질린 사람들은 슬금슬금 구석으로 피하고 최은하는 홀로 방에서 뱀과 사투를 벌였다.
  • 사람들이 보기에 지금의 최은하는 용사가 따로 없었다.
  • 용맹무쌍한 용사!
  • 드디어 10여 분 뒤, 최은하는 땀을 뚝뚝 흘리며 ‘간신히’ 뱀의 머리를 잡았다.
  • “가위나 칼 좀 가져다줘요!”
  • “저한테 칼이 있어요!”
  • 한 고용인이 다가오더니 그녀를 향해 과도 하나를 건넸다.
  • 그것을 건네받은 최은하는 눈을 질끈 감고 무서운 척 벌벌 떨며 뱀의 머리를 잘랐다.
  • 무시무시한 코브라는 머리를 잘린 채 바닥에 늘어졌다.
  • 그제야 정도식은 최은하에게 다가가서 관심 조로 물었다.
  • “은하야! 괜찮니?”
  • 최은하는 무서워서 벌벌 떠는 시늉을 하며 정도식의 품에 안겼다….
  • “아빠! 저 너무 무서웠어요….”
  • “우리 착한 딸, 무서워하지 마. 뱀은 이미 죽었어!”
  • “아빠가 있으니까 저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빠, 빨리 하늘이부터 병원으로 옮겨요….”
  • 최은하는 고개를 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 정도식의 마음은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 ‘하늘이 나를 굽어살피신 거야!’
  • 그는 최은하의 얼굴에 난 손자국을 보자 분노가 치솟아서 최시월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은하는 하늘이 살리겠다고 목숨까지 던졌는데 애 얼굴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 “여보….”
  • “이렇게 사리 분별을 못하는데 집안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앞으로 장부는 내가 관리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 최시월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 “여보, 난 그냥….”
  • 최시월이 다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정도식은 차갑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 “입 다물어! 듣고 싶지도 않아! 오늘부터 방 안에서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고 있어! 반성 다 하기 전까지는 방문 밖으로 나오지도 말고!”
  • 이때 고용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 “대표님, 구급차가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