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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정씨 집안의 꽃은 나야

  • 최은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몇몇 재벌 2세들이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 “최은하 씨, 어쩐지 친근해 보이셔서 그러는데 친구 해도 될까요?”
  • “최은하 씨, 어쩜 몸매가 이렇게 좋으세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어요?”
  • “우리 연락처 교환해요. 이제 서울에 계속 계실 거니까 자주 연락해요.”
  • 그들은 제 딴에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최은하에게 호감을 표시했지만, 최은하는 그들의 목적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요… 저도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 최은하가 여자들한테 둘러싸여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정신을 잃었던 정하늘이 드디어 깨어났다.
  • 눈을 뜨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걱정 가득한 최시월의 표정과 옆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정도식의 모습이었다.
  • 정하늘은 속으로 부아가 치밀었다.
  • ‘전부 다 최은하 그년 때문이야. 그년이 나타나서 나한테서 아빠의 사랑을 빼앗아갔어!’
  • 정하늘은 화도 나고 서럽기도 해서 눈물을 흘렸다.
  • “엄마….”
  • “우리 딸, 깼어? 울지 마, 울지 마….”
  • 최시월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을 달랬다.
  • 옆에 있던 정도식은 정하늘이 의식을 되찾자 냉큼 아래층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 “아래층에 손님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깼으면 얼른 준비하고 내려와. 난 먼저 내려가 볼게.”
  • 말을 마친 정도식은 두 모녀의 대답도 듣지 않고 급히 자리를 떴다.
  • 방문이 닫히자 정하늘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베개를 들어 문 쪽으로 던졌다.
  • “엄마! 아빠 좀 봐! 나 더는 못 참겠어! 최은하가 당장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 최시월 역시 분노가 차올랐다. 자신의 딸을 위해 준비한 생일 파티에서 정작 사람들의 관심은 최은하에게 전부 쏠렸다.
  • 최시월은 깊게 심호흡하고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부드럽게 딸을 달랬다.
  • “우리 딸, 너무 조급해하지 마. 돌아오자마자 사고가 나면 너희 아빠는 분명 우리를 의심할 거야. 너도 알잖아. 아빠는 보수적이고 고집이 센 분이라 자기 말을 거역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는 거. 너 침착해야 해!”
  • “그럼 이제 어떡해?”
  • 정하늘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통곡했다.
  • “내 생일파티인데 다 망했어! 사람들은 분명 미친 듯이 날 비웃을 거야. 뒤에서 다른 사람 흉보는 걸 가장 좋아하는 인간들이니까! ”
  • 최시월이 뭔가 말을 하려는데 마침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온 유모가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 “사모님, 아가씨! 좋은 소식이에요!”
  • 하지만 정하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 “이런 상황에 무슨 희소식이야? 재수가 없어 죽겠는데! 오늘은 내 인생에서 최악의 날이야!”
  •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최은하에게 뺏기고 사람들 앞에서 쓰러지기까지 했으니 그 부잣집 여식들이 뒤에서 그녀를 뭐라고 할까?
  •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던 최시월이 유모에게 물었다.
  • “무슨 희소식? 그게 뭐야?”
  • 유모가 흥분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 “조금 전 우편이 왔는데 여기 로열 커피 학원의 도장이 찍혀 있어요!”
  • “정말?”
  • 최시월은 다급히 유모의 손에서 서류를 받았다.
  • 그리고 위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뒤, 기쁜 얼굴로 정하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 “하늘아! 정말 좋은 소식이야! 저번 로열 바리스타 대회에서 네가 우승을 했대!”
  • 로열 바리스타 대회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리스타들이 연합하여 주최하는 큰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 사람은 관례대로 여씨 그룹 심야 커피 하우스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된다.
  • 이런 큰 대회에 참가한 것도 대단한데 우승까지 했으니 크나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 그 말을 들은 정하늘도 기쁜 표정으로 서류를 반복해서 훑어보았다.
  • 축하의 말 이외에도 N시티 국제 호텔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 관례대로라면 여시준도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여 심야 커피 하우스의 새 홍보대사를 선포하게 될 것이다.
  • 순간 정하늘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
  • 최시월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이번 생일 파티에서 여 대표님이 네 얼굴도 익혔으니까 시상식에서 네가 얼굴을 드러내면 분명 놀라실 거야.”
  • 정하늘은 서류를 손에 꽉 움켜쥐며 신이 나서 말했다.
  • “맞아! 분명 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을 거야! 내가 홍보대사가 되면 뒤에서 내 욕을 하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게 될 테고!”
  • 그러면 그녀는 또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고 여시준도 그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 “정말 좋은 일이네!”
  • 최시월은 손에 끼고 있던 값비싼 크리스탈 팔찌를 유모에게 건네며 말했다.
  • “이런 희소식을 전해줘서 고마워. 이건 그 보상이야.”
  • 유모가 어쩔 바를 몰라 하며 거절했다.
  • “사모님, 이건 받을 수 없어요. 저는 그저 우편을 받아서 가져다드린 것뿐인데요…. 이거 못해도 수천만 원 할 거잖아요?”
  • 최시월은 팔지를 유모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며 말했다.
  • “수천만 원이 아니라 아무 보석상에 가져다 팔아도 억은 받을 수 있을 거야. 물론 유모가 해줘야 할 일도 하나 있어.”
  • 유모가 탐욕스러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 “무슨 일이요? 말씀만 하시면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겁니다!”
  • “최은하를 감시 잘 해줘! 이상 행동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보고하고!”
  • “네! 그 시골뜨기는 저한테 맡겨 주세요!”
  • 그 말을 들은 최시월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 최은하는 정말 시골에서 올라온 것일까?
  • 최시월이 보낸 사람들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고 최은하가 그녀에게 알려준 거처는 남도에 있었다. 그곳은 절대 시골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이었다….
  • 그때 최은하가 주소를 보내왔을 때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최은하가 시골에서 남도에 일하러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지금 보면 10년 동안 최은하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 우아한 기품과 당당함은 시골에서 자란 여자애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 최시월은 이런 생각을 하며 정하늘에게 신신당부했다.
  • “하늘아, 그 계집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대야. 내가 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진 절대 섣불리 행동하지 마. 혹시라도 일을 그르칠 수 있으니까.”
  • “알았어, 알았어.”
  • 정하늘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 ‘시골에서 올라온 주제에 어쩌다가 친모의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얼굴 좀 반반한 것 빼고 무슨 재주가 있을까? 설마 친엄마의 지능까지 물려받았겠어?’
  • 높은 지능은 타고난 것도 중요하지만 대부분 훌륭한 교육환경이 뒷받침해 줘야 하는 것이다.
  • 그리고 정하늘은 대다수 재벌 2세들 사이에서도 학교 성적이 우수한 편에 속했다! 이는 사교육에 거액의 돈을 쓴 결과였고 그러니 시골에서 겨우 고등학교나 졸업했을 최은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었다.
  • ‘내가 그깟 시골뜨기 하나 못 이길까 봐? 이번엔 그냥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했을 뿐이야.’
  • “엄마,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최은하랑 같이 시상식에 참석할래. 그때 가서 최은하는 나와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스스로 물러나게 될 거야.”
  • 최시월도 좋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아빠도 같이 가자고 해. 도대체 누가 전도유망한 정씨 집안의 꽃인지 제대로 보여줘야지!”
  • 두 모녀는 그렇게 최은하의 초라한 모습을 상상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얼굴만 반반한 시골뜨기는 절대 서울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