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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릴사위가 능력을 숨김

데릴사위가 능력을 숨김

프로사이다

Last update: 2024-05-19

제1화 잘못된 사랑

  • 가을이 되면서 전국 곳곳의 결혼식이 성수기를 맞았다.
  • 부산시, 해운대로.
  • 고급스러운 벤츠 한 대가 신부를 데리러 가는 웨딩카를 막아 나섰다.
  • “도련님, 가족분들의 토론 끝에 이례적으로 도련님을 가문에 복귀 시키기로 결정했어요. 도련님이 동의만 하신다면 도련님 어머니의 신주를 진 씨 가문 사당에 모실 수 있어요.”
  • 두 차 사이에 거만한 표정의 개량한복을 입은 노인이 턱시도를 차려입은 진천하에게 말하고 있었다.
  • “우리 어머니 신주를 진 씨 가문 사당에 모신다고?”
  • 개량한복을 입은 노인은 진천하가 감지덕지해할 줄 알았으나 그의 눈빛에는 오히려 시큰둥한 기색이 역력했다.
  • “진 씨 가문은 그럴 자격이 없어! 돌아가서 진 씨 가문 사람들한테 전해. 그 사람들이 우리 모자에게 빚진 건 조만간 모두 돌려받을 테니 알아서 기다리라고 말이야. 용이야, 여긴 네가 처리해. 난 먼저 신부를 데리러 가야겠어.”
  • “네, 진 회장님.”
  • 진천하는 운전기사만 남겨둔 채 웨딩카를 몰고 훌쩍 떠났고 개량한복을 입은 노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 진 씨 가문은 경기도에서 최고의 명문가였다!
  • 한낱 하녀의 밑에서 태어나 모든 걸 빼앗기고 쫓겨난 서자 주제에 감히 진 씨 가문을 모욕하다니?
  • 그러나 곧이어 그 노인은 운전기사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온몸이 굳어버린 듯했다.
  • “당… 당신은 청룡?”
  • 노인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 운전기사는 그저 쌀쌀맞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신분을 인정했고 노인은 저도 모르게 두 발짝 뒤로 물러나더니 목이 멘 듯 말을 이어나갔다.
  • “그럼 도련님이 6년 전 전 세계의 지하 세력을 통합시키고 사대 전장을 데리고 모든 적들을 쓸어버린 뒤 각국을 몰아붙여 5년의 계약을 체결하고 신비롭게 사라진 천하 군신이란 말인가요?”
  • “맞아요, 진 회장님은 국내 많은 기업들이 신속하게 국제 시장을 장악하고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기꺼이 5년 동안 조용히 지내셨어요. 내일이면 5년의 기한이 끝나는 날이니 이 세상은 또 한 번 진 회장님에 의해 떠들썩해지겠죠!”
  • 청룡의 눈빛은 불타듯 이글거렸다. 거만하던 노인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 이때 진천하는 신부를 데리러 갈 웨딩카를 몰고 끝없이 펼쳐진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 핸들을 잡은 손에는 작은 호두 한 알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는 18년 전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던 겨울을 떠올리고 있었다.
  • 진천하의 어머니는 경기도 최고의 명문가 진 씨 가문의 하인이었으나 진 씨 가문의 맏아들이 술에 취해 실수를 하는 바람에 그가 생겼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신분이 낮았기 때문에 진 씨 가문은 체면상 두 모자를 그 가문의 사람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듯 진천하가 6살이 되던 해 그가 진 씨 가문의 서자라는 신분이 타인에 의해 밝혀졌고 진 씨 가문은 체면을 위해 두 모자를 진 씨 가문에서 쫓아내고 심지어 경기도에 머물지도 못하게 했다.
  • 그해 겨울, 그들 모자는 습한 추위가 가득한 부산시로 내려오게 되었다.
  • 그의 어머니의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나서야 진천하는 어머니가 타향에서 동사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 “이 외투는 너에게 줄게. 그리고 호두도 한 알 있는데 이건 네가 죽을 때까지 널 지켜줄 거야…”
  • 진천하 역시 추위에 거의 정신을 잃어갈 무렵, 호두 팔찌를 찬 큰 눈의 여자아이가 그에게 외투를 건넸고 작은 호두 한 알도 함께 주었다.
  • 여자아이의 시크한 말투와는 달리 아주 따뜻한 한마디였다.
  • 진천하는 그녀가 건넨 외투와 호두 덕분에 기적적으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던 겨울을 견뎠다.
  • 그는 성공과 명성을 모두 얻은 뒤 그때 그 호두 팔찌를 차고 있던 소녀를 찾아내 그녀에게 구애를 했고 오늘이 지나면 그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권력이 높은 귀부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 30분 뒤, 잘 꾸며진 한 여자의 침실.
  • 진천하는 손에 꽃을 든 채 여자친구인 서은정과 들러리를 서줄 박미주 앞에 서있었다.
  • “은정아, 전에 이미 예물은 4천만 원만 받기로 약속했잖아. 왜 6천만 원이나 더 늘었어?”
  • 진천하는 이미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은 채 아름다운 미모로 그에게 아양을 떠는 서은정을 보며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 방금 전 그의 예비 장모인 강영순이 그에게 6천만 원의 예물비를 더 보태야만 서은정을 데려갈 수 있다고 했고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남동생도 다음 달에 결혼하게 되는데 신부 측에서 신혼집을 원해 계약금 6천만 원을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 그리고 진천하가 전에 준 4천만 원의 예물 비용으로는 이미 차를 구입했다.
  • “천하야, 내가 일부러 널 곤란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정말 어쩔 수 없어서 그래. 은정이한테 하나뿐인 동생인데 누나와 매형이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겠어, 안 그래?”
  • 문밖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엿듣고 있던 강영순이 으스대는 기세로 문을 밀고 들어왔다.
  • “그건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제가 몇 년 동안 모은 돈은 이미 드린 4천만 원이 전부예요. 지금 당장 6천만 원을 더 내라고 하시는 건 좀 무리예요. 일단 제가 은정이 데리고 결혼식장에 가서 예식부터 마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내일이 되면 예물을 얼마를 원하시든 제가 다 해드릴게요.”
  • 진천하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 오늘 밤 12시만 지나면 5년의 계약이 끝나게 되고 진천하는 다시 어마어마한 재부를 얻게 될 것이기에 고작 6천만 따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 “진천하, 너 지금 내가 바보로 보여? 너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지금 당장 전화해서 이 6천만 원을 모으든지 아니면 내 딸이랑 당장 헤어지든지 해. 6천만 원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 놓고 내 딸을 너에게 맡기겠어?”
  • 강영순은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말했고 진천하는 고개를 돌려 서은정을 바라보았다.
  • “은정아, 하객분들이 이미 호텔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넌 어쩔 생각이야?”
  • “난 엄마 말에 동의해. 동생이라곤 걔 하나인데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겠어. 남자로서 만약 이 6천만 원도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냥 너랑 헤어져야지.”
  • 서은정은 이별로 진천하를 협박했다.
  • “정말 나랑 헤어질 거야?”
  • 진천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오늘 밤이 지나면 자신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귀부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었지만 그녀는 결국 이별을 택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로 너의 사탕발린 말에 속아 너 같은 못난 남자와 사귀게 된 거야.”
  • 서은정은 억척스러운 표정으로 막 나가듯 말했다.
  • 옆에 있던 들러리 박미주는 두 사람의 싸움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는지 입을 열었다.
  • “은정아, 내 생각엔 너희 두 사람 일단 결혼식장에 가서 예식을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동생의 신혼집 계약금이 부족한 문제는 식을 올리고 나서 천천히 의논해 봐도 되잖아.”
  • 진천하는 박미주의 말에 감격의 눈길을 보냈고 그는 그녀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 박미주는 조금 시크하긴 해도 진천하는 그녀가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박미주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도 이렇게 쉽게 서은정과 만나게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박미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정 어린 눈빛을 보냈고 두 사람의 눈짓을 본 서은정은 기분이 언짢았다.
  • “박미주, 동정하는 척하지 마. 네가 나더러 6천만 원도 못 내놓는 쓰레기한테 시집가라고 권했잖아. 그냥 내가 널 잘못 본 거로 치자. 이 쓸모없는 팔찌는 너한테 다시 돌려줄게. 저 쓰레기가 그렇게 불쌍하면 네가 결혼해 주면 되겠네.”
  • 서은정은 손목에 차고 있던 호두 팔찌를 벗어 박미주에게 던졌다.
  • “이 호두 팔찌 네가 은정이한테 준거야? 언제 준 건데?”
  • 진천하는 호두 한 알이 빠진 팔찌를 받아들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미주를 바라보았다.
  • “6년 전에!”
  • 박미주의 대답은 한결같이 간결했다.
  • 진천하는 놀라움에 머리가 띵하고 울렸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 알고 보니 팔찌의 주인은 박미주였고 그녀가 바로 18년 전 진천하에게 외투와 호두를 건네준 큰 눈의 소녀였다.
  • 진천하는 5년 동안 서은정을 착각하고 잘못 사랑해왔던 것이었다.
  • “박미주, 나랑 결혼해 줄래? 네가 허락만 하면 널 아끼고 사랑하고 평생 지켜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줄게!”
  • 진천하는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꽃을 박미주의 앞에 내밀며 다정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