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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파혼

  • 박미주의 눈에는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고 진천하의 행동이 갑작스러움을 넘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 서은정 일가도 어안이 벙벙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움에 온몸이 굳어졌다.
  • 서 씨 가문 사람들은 어쨌든 하객들이 이미 식장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이별을 빌미로 진천하를 협박하면 그가 친척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모아올 줄 알았다. 신부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의 체면도 말이 아닐 테니까.
  • 그러나 일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진천하는 타협하기는커녕 신부의 들러리인 박미주에게 고백을 했다.
  • 그의 행동은 이미 주위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되었다.
  • “하하! 진천하 너 정신 나간 거 아니지. 바보 같은 내 딸이나 네 궁상맞은 모습을 좋아하겠지…”
  • 얘기를 하던 강영순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 바로 늘 고상해 보이던 박미주가 진천하가 건넨 꽃을 받아들었기 때문이었다.
  • 박미주의 행동에 강영순은 매우 불쾌해졌고 주위 사람들도 모두 의외라는 듯 쳐다보았다.
  • 박미주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 “박미주, 이 나쁜 년아. 정말 뻔뻔하네!”
  • 신부인 서은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무섭게 날뛰며 박미주를 향해 뺨을 날리려 했다.
  • 박미주가 공개적으로 서은정의 결혼을 망친 것은 서 씨 가문 온 가족의 체면을 깎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 “짝!”
  • 맑은 뺨 때리는 소리가 그 자리에서 울려 퍼졌다.
  • 그러나 뺨을 맞은 사람은 박미주가 아닌 서은정이었고 진천하는 어느새 박미주를 자신의 뒤에 숨겨 보호하고 있었다.
  • 현장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 “진천하, 너 지금 고작 이 여우 같은 계집애 때문에 날 때린 거야?”
  • 서은정은 얼얼해진 뺨을 가린 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조용한 현장의 적막을 깼다.
  • 그녀는 평소 자신을 떠받들며 아껴주던 진천하가 지금 여우 같은 박미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뺨을 때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 진천하의 뒤에 있던 박미주조차도 놀라움에 예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이는 방금 전 진천하가 갑자기 돌아서서 그녀에게 고백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고 평소의 그는 서은정을 애지중지 대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갑자기 박미주 때문에 서은정의 뺨을 때리다니, 말이 안 되었다.
  • “박미주가 내 꽃을 받은 순간부터 이 세상 누구도 이 여자를 건드릴 수 없어!”
  • 진천하의 거칠고 차가운 말투는 예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 “시발, 감히 우리 누나를 때려? 죽여버릴 거야.”
  • 서은정의 남동생 서지호는 서은정이 맞는 모습을 보고 분노에 휩싸여 소리를 지르며 재떨이를 집어 들고 진천하를 향해 돌진했다.
  • 서지호의 모습이 눈앞에서 분주히 오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몸은 마치 포탄처럼 날아와 소파에 무겁게 내동댕이 쳐졌다.
  • 눈앞의 광경에 사람들은 머리까지 오싹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많은 사람들이 진천하가 예전에 군인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가 화를 내면 이렇게 무서워질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 수많은 사람들의 놀라움과 공포가 뒤섞인 눈빛 속에서 진천하는 박미주를 끌고 아무렇지 않은 듯 나가버렸다.
  • “이 손 좀 놓아줄래?”
  • 아래층에 도착하자마자 박미주는 진천하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려고 했다.
  • “싫어!”
  • 그러나 진천하는 오히려 박미주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너무 세게 힘을 준 탓에 박미주는 손이 아파졌다.
  • 5년 동안 착각으로 잘못된 사랑을 해왔고 하루아침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다. 천군만마를 마주해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천하 군신 진천하는 지금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 그는 곁눈질로 박미주를 슬쩍 보았다.
  • 그녀는 마치 18년 전 보았던 것처럼 늘씬한 몸매에 예쁜 눈이었다.
  • 비록 화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피부는 희고 고왔고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탐스럽게 윤기가 돌았다.
  • 그야말로 빼어난 미모였다!
  • 이 모든 것이 그 빌어먹을 호두 팔찌가 진천하를 오해하게 만들어 오늘의 어이없는 해프닝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 “너 정말 나랑 결혼하고 싶어?”
  • 박미주는 진천하가 짓궂게 손을 놓지 않자 아예 단념하고 무슨 생각이라도 난 듯 그에게 물었다.
  • 겉보기엔 차가워 보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박미주는 그저 서은정의 가족들이 성실한 진천하를 괴롭히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 그가 서 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난감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직접 나섰던 것이었다.
  •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었다.
  • “네가 원한 다면 바로 혼인 신고도 할 생각이야.”
  • 진천하는 부드러운 말투로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 그러나 박미주는 서은정과 헤어지자마자 자신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진천하를 보고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 역시 남자들이란!
  • “우리 할아버지께서 이미 이 씨 가문 외아들 이준혁과 혼약을 맺어놓은 상태라 이 씨 집안이 나중에 너에게 시비를 걸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 박미주는 자신의 상황을 사실대로 말했고 이것 또한 그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 “그냥 정혼일 뿐이잖아. 이미 결혼한 것도 아니고 네가 원한다면 같이 가서 파혼하면 되지.”
  • 담담하게 얘기하는 진천하는 아주 자신 있어 하는 모습이었다.
  • 지금 청룡 앞에서 벌벌 떨고 있을 이덕규 그 늙은이에게 따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선심을 쓴 것인데 이 씨 가문에서 감히 그에게 시비를 걸어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좋아, 혼인 신고서는 내가 작성할 테니까 네가 사인만 해주면 바로 구청에 가서 서류접수할게.”
  • 박미주는 진천하의 대답이 꽤 만족스러웠다.
  • “네 맘대로 해.”
  • 30분 뒤 카페 안.
  • 박미주는 혼인 신고서 한 부를 진천하의 앞에 내밀었고 진천하는 내용도 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 “내용도 안 보고 사인한 거야?”
  • 박미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괜찮아, 난 네가 날 팔아먹는대도 불만 없어.”
  • 그는 박미주와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서류 따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설령 그곳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그는 기꺼이 뛰어들 것이다.
  • “후회하지 않길 바랄게.”
  • 두 사람은 오늘이 금요일인 틈을 타 서둘러 구청으로 가 혼인 신고서를 접수했다.
  • 손에 혼인관계 증명서를 든 박미주는 지체 없이 진천하를 끌고 이 씨 가문으로 가서 파혼하려 했다.
  • 바닷가 최고의 별장에 사는 이 씨 가문은 부산에서 제일가는 명문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 씨 가문의 외아들인 이준혁은 부산 최고의 명문가 자제로 불린다.
  • 이때 방탕한 부산 최고의 명문가 자제 이준혁은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화끈한 몸매의 어린 모델을 품에 안고 있었다.
  • “도련님, 박미주 씨께서 지금 거실에 와 계세요.”
  • 하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문밖에서 울려 퍼졌다.
  • “미주가 왔다고? 지금 바로 나간다고 전해.”
  • 이준혁은 깜짝 놀라 정신을 번쩍 차렸다.
  • 그의 아버지인 이덕규는 방금 전 전화가 와서 경기도에 잠깐 가 있는다고 했으니 그동안 이준혁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약혼녀 박미주까지 스스로 찾아왔으니 이건 정말 겹경사였다.
  • 모든 남성들이 정복하고 싶어 하는 박미주의 냉정하고 도도한 모습을 상상하면 이준혁은 온몸에 피가 들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 “애기야, 오늘 꽤 괜찮았어. 이건 용돈이니까 일단 저기 뒷문으로 나가. 전화로 다시 연락할게.”
  • 이준혁은 몸매가 화끈한 어린 모델에게 줄 카드를 침대 위에 던진 후 깔끔한 슈트로 갈아입고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 박미주는 부산시 모든 성공한 남자라면 정복하고 싶어 하는 차갑고 도도한 미녀였다.
  • 밥 먹듯 바람피우는 바람둥이 이준혁은 어느 한 술자리에서 박미주를 만난 뒤 첫눈에 반했다.
  • 지난달 그는 참다못해 이덕규에게 직접 박 씨 가문을 찾아가서 혼담 얘기를 꺼내달라고 부탁했고 그들의 결혼식은 그가 원하는 대로 다음 달 초로 정해졌다.
  • “미주야, 네가 여긴… 이 사람은 누구야?”
  • 그는 박미주가 뜻밖에도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의 미소 어린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말투도 싸늘해졌다.
  • “소개할게, 이쪽은 내 남편 진천하라고 해.”
  • 박미주의 말투는 여전히 직설적이었다.
  • 그녀는 말을 마치고 혼인관계 증명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팽개쳤다.
  • “그래서 지금 파혼하러 온 거야?”
  • 이준혁은 혼인관계 증명서를 한 번 보더니 화가 나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 대단한 이준혁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