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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태도 돌변

  • 영업팀장은 매장에 손님이 들어서자 얼른 마중을 나갔다. 그러다 방금 들어온 손님이 자전거를 끌고 왔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얼굴에 피웠던 웃음이 그대로 사라졌다. 영업팀장은 비범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의 모습에 그래도 혹시나 상대방이 가난뱅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어느 재벌집 2세가 아닐까 싶어 직접 그를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 “어서 오세요. 혹시 구매 원하시는 차종 있으실까요?”
  • 영업팀장이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장착하며 물었다.
  • “아뇨. 그냥 둘러보려고요.”
  • “지금 보시는 차량은 BMW에서 올해 새로 출시한 모델로 깔끔한 화이트 색상에 아주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디자인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차량을 끌고 도로에 나서면 열에 아홉은 돌아볼 정도로 아주 잘 빠진 디자인이죠.”
  • 영업팀장은 굳이 멀리 있는 차를 소개하는 대신 진천하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가까운 차량으로 대충 아무거나 안내했다.
  • 진천하는 자동차 가격을 바로 확인했다. 약 7천만 원 정도로 1억도 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이 정도 가격대밖에 안되는 자동차가 박미주와 같은 미녀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 “겉보기에만 화려하고 내부 디자인이 너무 심플하네요. 다른 걸로 더 둘러볼게요.”
  • 진천하는 대충 아무 이유나 대면서 마음에 들지 않음을 알렸다. 그러자 영업팀장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떠올랐다. 가난뱅이 코스프레는 개뿔, 눈앞의 남자는 진정한 가난뱅이 그 자체임에 분명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흥! 거지 같은 놈. 돈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되지 핑계만 잔뜩이네.”
  • 작은 목소리로 툴툴거린 영업팀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곧바로 떠나가 버렸다.
  • 진천하는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한참을 더 둘러보던 그는 두 대의 아우디 차량에 갑자기 시선을 빼앗겼다. 그중 한 대는 나바라 블루 색상이었고 나머지 한 대는 정열의 레드 색상이었다. 두 자동차 모두 박미주의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렸다.
  • 매장에서 조금 연차가 쌓였다 싶은 딜러들은 팀장이 얼마 안 돼 자리를 비우자 진천하가 천만 원이 조금 넘는 국산차도 살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 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장난끼가 돈 두 명의 고참 딜러는 신입 딜러를 골릴 생각에 진천하를 신입 딜러에게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 “어이, 거기 신입. 네가 가서 저기 저 사장님 상대해 봐.”
  • 그중 한 고참 딜러가 포니테일을 묶은 어린 신입에게 말을 걸었다.
  • “소영아, 가지 마. 저 사람은 딱 봐도 돈이 없어 보이잖아. 저런 사람은 붙어봤자 시간 낭비만 할 뿐이야.”
  • 신입 딜러 교육을 맡고 있는 선배 사수가 신입 딜러인 소영에게 귀띔하며 말했다.
  • “선배님, 그래도 매장에 들어오셨으면 다 똑같은 고객님이죠. 이번에 살 돈이 없다고 그래서 다음에도 없으란 법 없잖아요. 저 그래도 일단 안내해 볼게요.”
  • 소영은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진천하에게 다가갔다.
  • “저 멍청이, 팀장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를 뜬 마당에 거기서 뭘 뜯어먹을 게 있다고 따라붙어. 괜히 시간만 낭비하지.”
  • 신입 딜러의 무모한 행동에 다른 딜러들이 하나같이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방금 전에 그녀에게 조언하던 사수 딜러 또한 다르지 않았다.
  • “안녕하세요, 고객님. 지금 고객님께서 보고 계신 아우디는 올해 새롭게 출시…”
  • 소영은 진천하의 곁을 따라다니며 진심을 담아 두 차량의 성능과 장점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진천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더 자세한 차량 스펙을 듣고 난 뒤 진천하는 방금 본 두 대의 아우디가 박미주의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1억 7천 정도의 금액도 조금 싸긴 하지만 그래도 대충 쓸만은 한 것 같았다. 진천하는 가격보다는 그래도 박미주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걸로 고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진천하의 긍정적인 표정에 소영은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열에 아홉은 차량 판매가 성사될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진천하의 한마디에 흥분했던 소영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 “다른 차도 좀 더 볼게요.”
  • 소영이 굳어있든 말든, 진천하는 또 다른 벤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박미주와 장모님의 차를 해결했으니, 이젠 장인어른과 제가 타고 다녀야 할 차를 고를 차례였다.
  • 숨을 깊이 들이마신 소영은 스스로 기운을 북돋으며 다시 한번 진천하의 뒤를 따르며 인내심 있게 안내를 도와주었다.
  • “고객님. 지금 보시고 계신 C급 AMG 벤츠는 저희가 작년에 메인으로 밀었던 모델로 직수입을 한 차량이고요, 가격은 1억 2천만 원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배기량은…”
  • 소영은 끝까지 인내심을 잃지 않으며 진천하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도와드렸다. 말할 때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버벅대지 않고 술술 소개를 잘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사전 공부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 “됐습니다. 이제 더 소개 안 해주셔도 돼요.”
  • 진천하는 소영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제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한 고객님이 가려는 줄 알고 희망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낯빛이 풀이 죽어 어두워졌다.
  • 구석에서 신입의 표현을 구경하고 있었던 고참 딜러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눈에 훤하다며 낄낄댔다. 신입들은 매번 차랑 판매에 실패할 때마다 저런 표정을 짓고는 했었다.
  • “이 벤츠는 블랙과 화이트로 각각 한 대씩 준비해 주시고요. 아우디 나바라 블루와 레드 그것도 각각 한 대씩 할게요. 내일 번호판까지 다 설치한 뒤 이 주소로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 진천하는 일전에 봐두었던 것까지 합해서 총 네 대의 차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그가 고른 차들은 가격이 한 대에 평균적으로 1억 2천을 넘었다.
  • “고객님, 지금… 그러니까 지금 뭐라고 말씀하신 거죠?”
  • 소영은 제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연신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뺨을 두드렸다.
  • 진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드를 건넸다.
  • “딜러님이 잘못 들은 게 아닙니다. 방금 얘기한 차들로 4대 모두 전액 지불해 주세요.”
  •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소영은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살짝씩 떨려오는 몸을 겨우 진정시켰다. 차를 사지 않고 떠나는 줄로만 알았던 고객님이 갑자기 확 달라져서 한꺼번에 네 대를 계약하다니. 갑자기 들이닥친 행복에 소영은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남들에게 떨리는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하여 소영은 겨우겨우 흥분된 마음을 잠재우며 차량 구매 계약서를 가지러 영업팀장을 찾아갔다.
  • “소영아, 그러니까 눈은 똑바로 뜨고 다녔어야지. 어떤 고객이 자동차를 구매할 능력을 가졌는지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가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사진을 찍어서 트위터에 올리기 위한 목적밖에 없어. 네가 그 가난뱅이한테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지영이는 벌써 1600만 원짜리 픽업트럭 한 대를 팔았어. 지영이를 보고 많이 따라배워, 알겠지?”
  • 신입 딜러인 소영이 그녀를 찾아오자 제가 맡았던 자전거를 타고 온 고객님을 상대로 차량 판매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영업팀장이 곧바로 설교에 들어갔다. 소영은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얌전하게 들었다.
  • “참, 그러고 보니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지?”
  • 설교를 마치고 나서야 영업팀장은 소영에게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 “팀장님, 아까 그 고객님께서 1억 2천 짜리 벤츠 C급 AMG 두 대와 1억 7천 짜리 아우디 RS5 두 대를 주문하셨습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가지러 왔어요.”
  • “뭐? 벤츠 두 대랑 아우디 두 대?”
  • 영업팀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경악했다. 신입 딜러가 한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그녀는 제게 보란 듯이 자랑하러 온 것 같은 신입 때문에 두부에 머리라도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 무려 네 대의 명품카를, 그것도 총 금액이 6억이 넘는 거래를 완성시켰으니 신입 딜러는 보너스 수당만 해도 약 천만 원 정도를 챙길 수 있을 터였다. 원래 영업팀장의 손에 떨어진 복이었으나 사람 볼 줄 몰랐던 그녀 탓에 제 발로 굴러들어 온 복을 뻥 차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 소영의 성공 판매 스토리를 들은 고참 딜러들도 하나같이 모두 멍청한 표정을 했다. 신입을 향한 조롱의 시선이 어느새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들 황소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았다며 신입의 운이 좋았다고 부러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직접 나설 걸 그랬다며 모두들 뒤늦은 후회를 했다.
  • “고객님, 여긴 제 명함이고요. 나중에 자동차 유지 보수가 필요하면 저 찾으시면 돼요.”
  • “사장님, 제 명함도 받아주세요. 다음에 또 차 살 일 생기시면 저를 찾아 주세요. 저는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저녁에 잠이 오지 않을 때 같이 얘기도 나눌 수도 있고, 무료한 시간을 서로 재밌게 보내 봐요 우리.”
  • “……”
  • 어느 정도 미모가 되는 딜러들이 앞다투어 진천하에게 명함과 음료수를 건네며 온갖 영업을 걸어왔다. 제일 먼저 나가떨어졌던 영업팀장 또한 어느새 진천하의 곁에 다가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일전에 그를 개무시하던 태도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