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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박 씨 가문에서 내쫓긴 박미주 일가

  • 정신을 차린 박인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건강에 크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 “아버지, 둘째네 이번에 진짜 큰 사고 쳤어요. 미주랑 이준혁 씨랑 결혼하는 거 지난주에 이미 다 발표했단 말이에요. 심지어 이 씨 가문에서 여러 명문가들한테 청첩장까지 다 보낸 상태인데, 박미주 고 계집애가 어디서 헌신짝 하나 구해와서 파혼해버렸으니 이 씨 가문을 욕보인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앞으로 이 씨 가문이 부산에서 어디 머리나 들고 다니겠어요? 그쪽 가문에서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오늘 아침에만 해도 벌써 세 군데 업체에서 협력을 그만두겠다고 연락해왔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태를 수습해야 돼요.”
  • 박기태는 박인수가 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이건 말건 그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 똑같이 걱정 가득한 척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박기주는 굳이 이런 시기에 아버지를 자극하는 맏형에 불만 있었지만 지금 박 씨 가문에 위기가 닥친 건 사실이라 같이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었다.
  • “맞아요, 아버지. 그 누구도 부산에서 이 씨 가문한테 이런 모욕을 안겨준 적이 없었어요. 이 씨 가문에서 분명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는 한 우리 박 씨 가문은 진짜 끝이라고요.”
  • “하.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어쩔 수 없지. 그래 다들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게냐?”
  • 한숨을 내쉰 박인수가 물었다.
  • “할아버지, 제 생각엔 이게 다 둘째 작은아버지가 딸을 잘못 교육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상황을 보세요. 부산 제일의 명문가인 이 씨 가문에게 미움을 산 건 물론이고, 박미주가 어디서 남이 내다 버린 헌신짝이나 주워온 탓에 우리 박 씨 가문의 체면도 완전 말이 아니게 됐어요. 그러니까 차라리 처벌을 내린다 생각하고 둘째 작은아버지네 일가를 가문에서 내쫓는 게 어떠세요? 그러면 우리도 이번 일에서 발을 뺄 수 있을 거고 이 씨 가문에서도 우리한테 뭐라고 탓하지 못하겠죠.”
  • 박미주의 사촌 오빠인 박형욱이 누구보다도 빠르게 제가 생각한 해결 방안을 얘기했다.
  • 사실 이 방법은 박형욱과 박기태가 사전에 미리 말을 맞춰놓은 것으로 박기태가 먼저 서두를 떼면 두 사람이 서로 주고받으며 추진하기로 되어있었다. 두 사람의 목적은 박미주 일가를 박 씨 가문에서 쫓아내 이 씨 가문의 분노를 잠재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그들의 모든 자금줄을 잘라낼 생각이었다.
  • “그… 셋째야, 넌 어떻게 생각하냐?”
  • 박인수는 큰 아들네 부자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본 뒤 고개를 돌려 막내아들인 박기주에게 물었다.
  • “저는… 형욱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둘째 형님네랑 관계를 끊어야 이 씨 가문에서 트집을 잡을 핑계가 없어질 것 같아요.”
  • 박인수의 물음에 박기주는 잠시 머뭇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
  • “됐다, 됐어. 그럼 너희들 말대로 하자꾸나. 미주 일은 형욱이 네가 인수받도록 해. 나 이제 피곤하니까 너희들은 이만 나가 봐.”
  • 첫째와 셋째가 둘째 아들을 내쫓는 데에 모두 동의하자 박인수는 제 가문을 지키기 위하여 할 수없이 그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 박인수의 말에 박기태 부자는 크게 기뻐했고 박기주네 가족은 못마땅한 표정을 했다. 원래 박기환 일가가 가문에서 쫓겨나면 이제 남는 건 박기태와 박기주 두 집안이 가문의 재산을 반반으로 나눠가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박인수가 박미주의 일을 박형욱에게 일임했다는 건 가문의 희망을 조카인 박형욱에게 맡겼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 얼마 전에 박미주는 큰 프로젝트를 하나 맡았는데 곧 사인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협력업체의 배후에 있는 사장은 부산의 갑부 이덕규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최오라는 자로 부산 언더세계의 왕으로 불렸다. 이 씨 가문에서 시비만 걸어오지 않는다면 이 프로젝트 하나로 앞으로 2, 3년 동안 박 씨 가문은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 “흥!”
  • 박기주는 박기태를 향해 콧방귀를 뀌더니 제일 먼저 병실을 나섰다. 저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박기태 부자는 셋째네 가족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모든 사람이 다 떠나고 나서 박인수는 차마 속이 내려가지 않는지 잠깐 표정을 굳히더니 곧이어 다시 확고한 눈빛을 했다. 자신이 한평생 일궈온 심혈을 둘째네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다.
  • 박기태는 병실을 나서자마자 은행에 박기환 일가의 모든 카드를 정지시켜달라는 전화를 넣었다. 그리고 그들 명의의 차량과 부동산도 모두 손을 써놓은 뒤 박 씨 가문에서 박기환 일가를 방출했음을 정식으로 대외에 알렸다.
  •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기태는 집에 전화를 걸어 집사한테 당장 둘째네 일가의 모든 짐을 정리해서 밖에 내던지라고 분부했다.
  • 박미주는 본집 별장에까지 쫓아와서야 부모님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 “미주야, 너 또 왜 여기까지 쫓아왔어. 임신 초기에는 그렇게 나돌아다녀선 안 돼. 조심해야지.”
  • 차에서 방금 내린 주영란이 집까지 쫓아온 박미주를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임신 첫 3개월은 태아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로 자칫 잘못하면 유산 위험이 있었다.
  • “엄마, 아빠. 뭘 그렇게 급하게 돌아가세요. 카드도 까먹고 집에 두고 가시고. 그리고 아까 엄마가 오해…”
  • 박미주는 세 장의 은행 카드를 주영란의 가방에 바로 집어넣고는 자신이 임신하지 않았음을 해명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본가의 집사가 몇몇 하인을 대동하여 나오더니 세 사람의 짐을 밖에 내다던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 “팽 집사,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 주영란은 딸의 얘기를 들을 새도 없이 몸을 돌려 씩씩거리며 팽 집사에게 질문했다.
  • “첫째 형님분께서 말씀하시길 세 분이 박 씨 가문을 위기에 빠트리고 치욕까지 안긴 죄를 물어 어르신께서 세 분을 박 씨 가문에서 내쫓기로 결정했다고 하셨어요. 저희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참, 여기 있는 두 자동차도 가문에서 내준 거니까 다시 거둬들일 거예요. 거기! 차 몰 줄 아는 사람으로 두 명 와봐. 여기에 있는 차를 차고에 당장 갖다 놔.”
  • 박인수가 평소에 박기환을 썩 탐탁지 않아 했던 터라 팽 집사 역시 덩달아 둘째네 가족을 얕잡아 보게 되었다. 거기다가 지금 가문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지금, 팽 집사는 그들의 짐을 밖에다 버린 뒤 다른 사람을 시켜 박미주와 박기환의 차를 끌고 별장 차고에 세워두게 했다. 일련의 조치를 마친 후 팽 집사는 별장 대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 “저… 팽 집사 저거 너무, 너무하잖아요! 안되겠어요. 저 아버님한테 따지러 갈래요.”
  • 한낱 집사한테 치욕스러운 홀대를 당한 주영란은 분노를 삭이지 못해 가슴을 들썩거렸다. 그녀는 박인수와 양심 따윈 개나 줘버린 첫째와 셋째를 찾아가 따져야겠다며 몸을 돌려 당장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 “가긴 어딜 가! 지금 아버지 찾아가면 형님이 순순히 만나게 해줄 거라고 생각해?”
  • 박기환은 주영란을 단번에 잡아당기며 제지했다. 그도 화가 났지만 박기환은 박인수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 번 내린 결정은 절대 바꾸는 법이 없었다. 지금 그를 찾아가는 건 아무 소용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큰 형님과 셋째 동생에게 수모를 당할 수도 있었다.
  • “그럼 어떡해요? 지금 못 돼 처먹은 두 형제한테 이렇게 당하고도 당신은 참아져요, 이게? 내가 애초에 왜 당신같이 쓸모없는 사람을 선택했을까? 이혼해요. 이대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요.”
  • 이런 상황에서도 겁을 먹고 움츠러드는 박기환에 주영란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두 사람은 본가 문 앞에서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 “참지 않으면 어쩔 건데? 내가 집에서 위신 없는 것도 다 당신이 아들 하나 낳지 못해서 그런 거 아냐! 당신이 남자아이만 낳았어도 아버지가 나한테 이랬겠어? 큰 형님도 날 이렇게 얕봤겠냐고!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라고!”
  • 지금까지의 설움이 모두 폭발한 박기환은 주영란에 대한 모든 원망을 한꺼번에 털어냈다.
  •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다 제 탓이에요. 제가 너무 제 생각만 해서 두 분께 폐를 끼쳐드렸어요. 저 지금 당장 이준혁 도련님한테 사과하러 갈게요.”
  • 부모님이 대판 싸우는 모습을 보며 박미주는 갑자기 제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은 마음에 죄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서러움을 이기지 못한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박미주는 이준혁한테 사과하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