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 서재에 추가하기

이전 화 다음 화

제4화 6천만 원 줄 테니 우리 딸에게서 떠나

  • “너 지금 이게 뭐야…”
  • 박미주는 눈썹을 찡그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신혼집을 살 때 서은정의 이름으로 산 거라서 그 사람들이 날 쫓아내니까 이 늦은 밤에 갈 곳이 없네. 그래서…”
  • 진천하는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서 씨 가문 사람들에게 집을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쫓겨난 진천하는 이곳으로 옮겨와 박미주와 함께 동거할 핑계가 생겼기에 화가 나기는커녕 오히려 서 씨 가문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 “일단 들어와.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이번 일이 끝나면 너도 곧바로 이 집에서 나가줘야 해.”
  • 박미주는 앞으로 부모님과 할아버지를 대처하려면 진천하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그의 요구에 동의했다.
  • 그렇게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 박미주의 전셋집은 방 2개에 거실 하나와 주방이 하나 있었고 그중 한 하나는 침실이고 나머지 방은 서재였다.
  • 집안의 장식은 핑크색이 주를 이루며 은은한 향기도 있어 여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 박미주는 진천하가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재를 정리해 진천하에게 내주었고 홈웨어를 입은 박미주는 부지런한 아내처럼 진천하의 침대를 정돈해 주고 있었다.
  • “아내가 있으니 정말 좋네!”
  • 문 앞에 기대어 박미주를 바라보던 진천하의 마음속에는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 “침대 시트는 다 깔았으니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 박미주는 외간 남자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여전히 적응이 안 되었고 진천하에게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도망치듯 자기 방으로 달려가 문을 걸어 잠갔다.
  • 비록 진천하가 예전부터 그녀에게 성실한 인상을 준 사람이었지만 오늘 그의 활약을 보면 그녀가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진천하는 목표를 박미주에게로 옮긴 듯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말투도 조금 오글거렸다.
  • 침대에 누운 박미주는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날 밤, 그녀는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 그러나 옆방에 있던 진천하는 그녀와는 정반대로 그녀가 정리해 준 보금자리에 누워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마음이 매우 평온하고 편안해져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날이 밝을 무렵에야 깨어났다.
  • 잠에서 깬 진천하는 휴대폰 메일함에 수십 통의 읽지 않은 메일이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 5년간의 계약이 어젯밤 12시에 이미 만료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진천하는 메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 세계 각국의 거물들과 그의 옛 부하들이 5년 계약 만료와 카드 해제를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던 것이었다.
  • 청룡을 제외한 전 세계 사람들은 그가 사라진 지 5년이 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부산에 5년째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 5년의 계약이 만료된 지금 그는 그의 방대한 재산들을 다시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진천하는 메일을 다 읽은 후 모든 메일을 지우고 단 한 통의 답장도 하지 않았다.
  • 지금 그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그저 박미주의 곁을 지켜주고 싶었으며 그녀와 아이까지 낳을 수 있다면 이보다 완벽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 “일찍 일어났네. 나 뭐 좀 사 올 테니까 이따가 같이 부모님 뵈러 가자.”
  • 박미주는 피곤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서 진천하에게 말했다. 어젯밤 잠을 설친 것이 분명해 보였다.
  • “그래!”
  • 진천하는 곧바로 씻으러 욕실로 달려갔다.
  • 그러나 박미주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고 진천하는 박미주인 줄 알고 얼른 달려가 문을 열었다.
  • “왜 이렇게 빨리…”
  • 진천하는 문을 열고 박미주를 놀려주려 말을 꺼냈다가 바로 멈추었다.
  •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박미주가 아닌 다크서클이 내려온 두 중년 남녀였기 때문이었다.
  • 남성은 큰 키에 네모난 얼굴이었고 여성은 온화하고 화려한 용모를 갖추고 있어 한눈에 두 사람이 부잣집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 게다가 진천하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박미주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 “누구 찾으시죠?”
  • 진천하는 마음속으로 그 두 사람의 정체를 이미 짐작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 “당신이 진천하야? 우린 미주 엄마, 아빠야.”
  • 박미주의 엄마 주영란은 진천하를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 “장인 장모님이시네요. 어서 들어오셔서 차라도 같이 마셔요.”
  • 진천하는 서둘러 두 사람을 들어오게 한 후 그들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 “차는 됐고,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은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이 카드에 6천만 원이 들어있으니 돈 가지고 바로 우리 딸한테서 떠나.”
  • 주영란은 단도직입적으로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책상 위에 놓고 진천하에게 차갑게 말했다.
  • 어젯밤 박인수는 정신이 들자마자 사람을 시켜 조사를 했고 눈앞에 있는 진천하가 약혼녀 측에서 갑자기 6천만 원의 예물 비용을 더 달라고 하는 바람에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해 신부 들러리인 박미주에게 청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들이 알고 있는 평소의 박미주라면 그저 진천하를 방패로 삼아 이준혁과의 결혼을 거절하고 싶은 마음에 그와 함께 혼인 신고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 “아버님, 어머님. 제가 미주에 대한 감정은 진심인데 두 분이 어떻게 제가 미주에 대한 마음을 돈으로 모욕하실 수 있으세요?”
  • 진천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박미주의 부모님과 만나는 장면을 수도 없이 상상해 보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 아무래도 박미주의 솔직한 성격은 유전인 것 같다. 그녀가 두 사람의 친딸임은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다.
  • “너희들 일에 대해서 우리도 이미 다 알아냈으니까 연기 좀 적당히 해. 6천만 원이면 서 씨 가문에서 더 달라고 하는 예물 금액으로 충분해. 만약 이 돈이 적다면 4천만 원을 더 얹어주지. 젊은 사람이 알아서 물러날 줄 알아야지.”
  • 박미주의 부모님은 이미 모든 것을 예상한듯했고 주영란은 가방에서 카드 하나를 더 꺼내 탁자 위에 던지며 말했다.
  • 그녀의 행동에 진천하는 완전히 분노에 휩싸였다.
  • “제 카드에 1억 달러가 들어있으니 두 분께서 차라도 사 마시세요. 그리고 저와 미주 사이의 일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말아주세요. 어때요?”
  • 진천하는 지갑에서 미러 퍼플카드를 꺼내 방금 전 주영란과 같은 방식으로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