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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박미주 이제 끝났네

  • “박미주, 너 이 나쁜 계집애, 여긴 왜 왔어?”
  • 들어온 사람이 박미주라는 걸 확인하자 사람들은 흠칫 놀랐고 큰아버지인 박기태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 “박미주, 너 당장 꺼져, 여기 널 반기는 사람은 없어!”
  •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박미주가 자신들을 비웃으러 온 거라고 생각하여 너도나도 독기 품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박미주는 그런 친척들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죄책감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 “할아버지, 몸은 좀 어떠세요?”
  • 박미주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렸다. 할아버지가 박미주 가족을 집에서 쫓아내긴 했지만 어쨌든 할아버지는 집안 가장이고 그녀가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었다.
  • 핏기가 전혀 없는 얼굴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박미주는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 “이 할아비는 아직 건강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이만 돌아가!”
  • 일이 이 지경이 된 이상, 손녀를 탓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다고 여긴 할아버지는 박미주를 질책하지 않은 채, 덤덤하게 말했지만 시선을 옆으로 돌리던 순간, 십 년은 늙은 듯 초췌한 얼굴이었다.
  • “할아버지, 저는…”
  • 박미주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한 얼굴이었고 이를 본 진천하는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가 고고한 자태로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 “미주는 오늘 박헌 그룹을 인수하러 온 겁니다. 이건 당신들이 어제 사인한 계약서예요. 인수인계가 끝나면 이곳에서 당장 꺼지세요!”
  • 진천하가 박미주 손에 들고 있던 인수 계약서를 건네받더니 테이블에 던져버렸으며 저런 피도 눈물도 없는 친척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지 않았다.
  • “뭐라고? 베일에 싸인 그 보스가 박미주라고?”
  • 진천하의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 “당신들이 들은 게 맞아요. 미주가 바로 박헌 그룹을 인수한 배후자입니다. 놀라셨죠?”
  • 진천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고 사람들은 어제 사인한 매각 계약서를 확인하더니 그제야 의심을 거두고 너도나도 놀란 표정이었다.
  •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 한참 지난 뒤, 큰아버지인 박기태가 나서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박미주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 “이 난리 통에 양아치 짓을 한 게 너였구나. 어쩐지 수법이 예사롭지 않다 했어. 배은망덕한 계집애!”
  • “우리 회사 돌려내! 안 그러면 너 이 계집애 오늘 죽을 줄 알아!”
  • 화가 잔뜩 난 박 씨 가문 젊은이 몇 명이 테이블에 놓여있던 물건들을 집어 박미주에게 던지기 시작했고 이를 본 진천하가 재빨리 박미주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며 그녀를 보호했다.
  • “셋 셀 동안 계속 이렇게 무례하게 나오면 저희는 이곳을 당장 떠날 겁니다. 그럼 인수가 취소될 것이고 당신들은 파산을 면치 못하겠죠!”
  • 진천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 씨 가문 사람들은 공격을 멈춘 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잿빛이 된 얼굴로 가만히 듣고 있던 할아버지 박인수는 박미주가 회사를 인수한 배후자라는 진천하의 말에 얼굴이 환하게 폈다.
  • 박헌 그룹은 박인수가 평생을 기울여 경영한 회사였고 어쨌든 박미주는 박인수의 핏줄이었기에 회사가 다른 외부인의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 그녀가 인수하는 게 훨씬 나았다.
  •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 “여보, 이 사람들 복에 겨워 저러는 거 같은데, 이번 인수는 없던 일로 하자. 파산 당해서 길거리에 나앉든 말든 상관하지 말자!”
  • 진천하가 박미주를 회장 자리에 앉힌 뒤, 사람들을 쓱 훑어보며 박미주에게 말하더니 그녀를 보며 윙크까지 날렸다.
  • 이를 본 박미주는 진천하의 뜻을 바로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 순간, 모든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더니 경악에 찬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 사람들은 박미주가 무슨 돈으로 박헌 그룹을 인수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만약 그녀가 정말 인수를 포기한다면 이 시기에 박헌 그룹을 인수하려는 자를 찾기 힘들 것이며 회사는 결국 파산하게 될 것이다.
  • 그렇게 되면 박 씨 가문의 명의로 된 집과 차들은 은행에 의해 강제적으로 경매로 넘어가게 되며 그들은 진천하 말대로 정말 길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 “저기, 조카야, 조금 전엔 우리가 너무 흥분했어. 다 준비됐으면 이제 인수인계를 시작할까?”
  • 머릿속으로 빠르게 손익을 따지던 큰아버지와 셋째 삼촌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박미주에게 말했지만 박미주는 덤덤하게 비아냥거렸다.
  • “전 이제 더 이상 박 씨 가문 사람이 아닌데 조카라는 호칭을 제가 어찌 감히 감당하겠어요!”
  • 무례하게 구는 박미주를 보며 젊어서 패기가 넘치는 사촌 남동생이 화가 치밀어 올라 박미주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 “박미주, 이 나쁜 년아, 적당히 해. 우린 회사가 파산을 당해도 절대 너한테 팔지 않을 거야!”
  • 아들의 말에 깜짝 놀란 셋째 삼촌이 아들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 “망할 놈,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나대! 당장 사촌 누나에게 사과해! 안 그러면 호적에서 파버릴 줄 알아!”
  • 단 한 번도 아버지가 이토록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박형석은 놀란 마음에 박미주를 보며 내키지도 않는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 “미… 미안해!”
  • 말을 끝낸 박형석은 돌아서서 밖으로 뛰쳐나갔고 회사 대문 밖에서 줄담배를 피우던 그는 마이바흐 한 대가 회사 입구 쪽에 멈춰 선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 다음 순간, 부산 시 갑부 이덕규와 그의 아들이 허둥지둥 차에서 내렸고 이 씨 부자를 보자 박형석은 두 사람이 박미주에게 따지러 온 거라고 확신했기에 곧바로 회사 안으로 뛰어갔다.
  • 회의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회의실에서 나오고 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큰아버지와 마주쳤으며 일부 사람들의 손에는 회사에 놔뒀던 개인 물품도 있었다.
  • 아마도 인수인계를 마친 듯했다.
  • “아버지, 이… 이 씨 부자가 저 나쁜 계집애한테 따지러 왔어요!”
  • 박형석이 들뜬 마음에 소리를 지르자 박인수를 제외한 박 씨 가문 사람들은 너도나도 들뜨기 시작했다.
  • “진짜야? 그 사람들 어디까지 왔어?”
  • “문 앞까지 왔어요. 지금 모시고 올게요.”
  • 박형석은 자발적으로 두 사람을 모시러 다시 밖으로 뛰어갔고 한참 뒤, 이 씨 부자가 허둥지둥 뛰어오는 모습을 본 박 씨 두 형제가 서둘러 인사를 올렸다.
  • “이 사장님, 여긴 어쩐…”
  • “박미주 씨 지금 어디 계십니까?”
  • 박기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덕규가 다급하게 물었고 그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어마어마한 기세에 박 씨 가문 사람들은 넋을 놓고 보게 되었다.
  • “안에… 있어요.”
  • 박기태는 이 씨 부자의 압도적인 기세에 밀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이덕규는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아들을 데리고 박헌 그룹 회의실로 들어섰다.
  • 그 모습에 박 씨 가문 사람들은 재미난 구경을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 회의실 입구로 달라붙었다.
  • “박미주와 저 빌어먹을 놈은 이제 끝났어, 기세 등등한 모습도 얼마 못 갈 거야!”
  • 이덕규의 화난 모습에 박 씨 가문 사람들은 박미주와 진천하의 비참한 최후가 상상되는 것만 같았다.
  •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부산 시 제일 명문가에게 그런 모욕을 주다니, 이건 죽으려고 환장한 거나 다름없는 짓이다.
  • 사람들은 문 앞에 서서 목을 쭉 뺀 채, 회의실 안을 쳐다보며 이 씨 부자 앞에서 벌벌 떨게 될 박미주와 진천하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