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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설마 훔친 카드?

  • 집에서 박미주를 기다리고 있었던 진천하는 청룡이 보내온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 “박 씨 가문에서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 영상을 본 진천하는 대노했다. 청룡이 보내온 영상은 바로 박미주네 가족이 본가 별장 문 앞에서 팽 집사한테 수모를 당한 뒤 말다툼을 하던 장면이었다.
  • 박미주가 예전의 그 꼬마 아이라는 걸 알게 된 진천하는 일전에 청룡에게 몰래 박미주의 안전을 보호할 것을 지시했었다. 이 영상은 청룡이 박미주를 따라다녔기에 알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 “용아, 나 대신 두 가지 일을 해줘야겠어. 하나는 이틀 안에 박헌 그룹을 인수하는 절차를 밟아줘. 모레가 미주 생일인데 박헌 그룹을 생일선물로 그녀한테 줄 생각이야.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이덕규 그놈한테 사람 됨됨이를 좀 가르쳐 줘.”
  • 감히 이 천하 군신의 여자가 직접 사과하러 찾아가게 만들어? 이 씨 가문한테 그럴 자격이 있기는 있고?
  • 부리나케 이 씨 가문으로 달려간 진천하는 마침 이준혁 본가 별장에서 실망 가득한 얼굴로 걸어 나오던 박미주 가족을 보게 되었다. 이 씨 가문에는 하인들 외 집에 아무도 없었다.
  • “미주야, 괜찮아?”
  • 초췌해진 박미주 얼굴을 보며 진천하는 가슴이 쿡쿡 쑤시는 걸 느꼈다.
  • “대체 무슨 낯짝으로 여길 온 거야! 이게 다 헌신짝인 너 때문이야. 지금 우리 가족이 어떻게 됐는지 안 보여? 가문에서 쫓겨났지, 미주의 일생도 이젠 끝났어! 지금 이게 네가 바라던 결과야? 어때, 이제 만족해?”
  • 주영란은 진천하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
  • “죄송합니다. 저에게 이틀만 시간을 주세요. 꼭 두 분이 만족할 수 있게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하겠습니다.”
  • 진천하의 눈에 미안한 기색이 스쳤다. 그는 박인수가 제 가문의 이익을 위하여 아들까지 내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진천하가 간과한 부분이었다.
  • 주영란과 박기환은 또 진천하가 입에 바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그를 향한 경멸이 더욱 짙어졌고 불만 또한 한가득 쌓였다.
  • “죄송하면 뭐해. 그리고 뭐? 이 사태를 해결겠다고? 고작 6천만 원도 내놓지 못해 파혼한 주제에 뭘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데?”
  • 눈을 세모로 치켜뜬 채 쏘아붙이던 주영란은 당장이라도 진천하의 따귀를 몇 대 날릴 기세였다.
  • “엄마, 천하 잘못이 아니에요. 다 제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저지른 일이에요. 다른 사람과는 상관없어요.”
  • 박미주는 진천하 앞을 막아 나서며 그를 위해 변호했다. 아직까지도 진천하 편을 드는 딸을 보며 주영란은 하마터면 심근경색이 올 뻔했다. 그녀는 박미주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했다.
  • “지금 어느 때라고 아직도 저런 입에 발린 소리만 할 줄 아는 몹쓸 놈 편을 들어. 엄마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작정했어?”
  • “다들 그만해. 이 씨 가문에 사람도 없다는데 우리도 이만 돌아가야지. 당신은 시장에 가서 닭 한 마리 사 와서 미주한테 먹이도록 해.”
  • 주영란이 또 한바탕 싸움을 일으킬 것 같자 박기환이 강제로 제지하고 나섰다. 그의 언질을 듣고 나서야 주영란은 딸이 지금 임신 상태라는 걸 상기해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재웠다.
  • “그럼 다들 먼저 들어가세요. 저 시장에 들러서 장 보고 들어갈게요.”
  • 주영란은 참지 못하고 또 진천하에게 욕이 나갈까 겁나 얼른 택시 하나를 잡아 시장으로 향했다.
  • “우리도 이만 가자.”
  • 안타까운 표정을 한 진천하가 박미주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박기환과 같이 이동했던 터라 진천하의 손을 쳐내면 진실이 들통날까 봐 두려웠던 박미주는 진천하의 터치를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었다.
  • 시장에 도착한 주영란은 카카오페이에 잔액이 전혀 없고, 거기에 연동된 카드도 동결됐음을 발견했다.
  • “아버님도 너무하셔. 우리 가족을 숨 막혀 죽게 만들 작정이신 거야?”
  • 주영란은 분노로 이가 갈렸다.
  • “손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만 삼천 원입니다.”
  • 차가 멈춘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주영란이 돈을 낼 생각을 않자 택시 기사가 불쾌한 기색으로 재촉해왔다.
  • “기사님, 저 지금 휴대폰에 잔액도 없고 현금도 들고나온 게 없어서 그런데 잠깐 저 앞에 있는 은행에 들러서 돈을 뽑아다 드릴게요.”
  • 주영란이 미안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가방에는 동결된 카드 외에도 다른 은행 카드가 여러 장 들어있었다. 주영란은 그 카드들이 동결되지 않았기를 바랐다.
  • “거참 귀찮네. 그럼 서둘러 주세요. 다른 손님도 받아야 되는데 이러면 지장이 생기잖아요.”
  • 더욱 불만이 많아진 택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태도가 안 좋긴 했지만 택시 기사의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 주영란은 불쾌한 마음을 감추고 차에서 내려 은행으로 향했다. 그녀가 중간에서 튈까 봐 걱정된 택시 기사도 차에서 내려 그녀의 뒤를 따랐다.
  • ATM기에 줄 서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터라 주영란은 번호표를 뽑고 은행 창구로 바로 직행했다.
  • “안녕하세요. 여기 있는 카드들 현금 인출이 가능한지 확인해 주세요.”
  • 주영란은 대여섯 장의 카드를 한꺼번에 은행 직원에게 넘겼다. 예의 있게 카드를 건네받은 은행 직원은 한 장, 한 장 카드를 긁어 보았다. 그중 다섯 장의 카드는 모두 동결된 상태였다. 마지막 카드를 손에 든 은행 직원은 무심결에 카드를 내려다보았다가 하마터면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녀의 손에는 미러 퍼플 색깔의 카드가 들려있었다.
  • 은행에서 지금껏 근무하면서 은행 직원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한정으로 발행한 이런 최상급 은행 카드는 처음 접해보았다. 이 미러 퍼플 카드는 전 세계에 99장으로 한정 발행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을 각 나라의 왕실들이 갖고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카드는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으며 일반 사람은 신청할 수 없는 그런 카드였다. 주영란이 내놓은 카드는 서브 카드였는데 그 안에만 무려 1억 달러가 들어있었다.
  • “고객님, 지금 여기에 있는 카드들 중 이 카드만 현금 인출이 가능한데 얼마 인출해 드릴까요?”
  • 은행 직원은 미러 퍼플 카드를 가리키며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긴장한 표정으로 주영란에게 물었다. 그녀는 몰래 주영란의 모습을 관찰하며 상대방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해했다.
  • “다 꺼내 주세요.”
  • 주영란은 은행 직원이 가리킨 카드가 어떤 카드인지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박인수가 마지막 카드까지 동결하기 전에 그녀는 은행 직원에게 모든 돈을 인출할 것을 요구했다.
  • “손님, 진짜로 다 인출하시려는 게 맞으실까요? 카드에 잔액이 너무 많으셔서 지금 그 정도의 현금이 저희 은행에 없거든요. 다른 곳에서 지금 조달 받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거고요.”
  • 은행 직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며 얼른 해명했다.
  • “무슨 은행이 현금을 그렇게 적게 가지고 있어요? 고작 이 정도 돈도 다른 곳에서 조달 받아야 돼요?”
  • 원래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주영란이 작게 불평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자신이 갖고 있는 카드 중 금액이 제일 많아 봤자 6천만 원 정도가 들어있었다. 은행에 현금으로 6천만 원도 없다는 게 주영란은 이해되지 않았다.
  • 그녀의 불평에 은행 직원이 입을 떠억 벌렸다. 1억 달러, 한화로 계산하면 무려 1300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이 눈앞의 손님에게는 고작 이 정도 돈으로 치부되자 은행 직원은 경악했다.
  • “됐어요, 그럼. 현금이 그렇게 많이 없다고 하니 일단 20만 원만 먼저 꺼내 주세요.”
  • 계속 그녀의 뒤에서 버티고 서있는 택시 기사를 생각해 주영란은 현금을 먼저 조금이라도 꺼내 택시비를 지불해야겠다 생각했다. 은행 직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내심 자기의 태도가 좋지 못해 눈앞의 손님이 고의로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줄 알았다.
  • “네, 알겠습니다. 그럼 비밀번호 지금 입력해 주세요.”
  • 주영란은 카드의 비번을 다 하나로 통일했기 때문에 머뭇거릴 틈도 없이 바로 입력했다. 그러나 은행 직원의 모니터에는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알림이 떴다. 두 번을 연속으로 똑같이 입력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 이때부터 주영란은 긴장되기 시작했다. 한 번만 더 입력을 잘못하면 카드가 정지되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카드였기에 이것마저 정지됐을 때 지금 자신의 상황으로 카드를 해제할 수 있을지 주영란은 확신이 없었다.
  • 고개를 돌려 택시 기사를 한번 쳐다본 주영란은 그의 재촉하는 듯한 시선을 느끼고는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조심스레 입력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떨지는 뻔했다.
  • 설마 다른 사람의 카드를 훔친 건 아니겠지? 주영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던 은행 직원의 뇌리에 작은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 “손님, 주민등록증 한 번만 보여주시겠어요?”
  • 은행 직원이 차분하게 주영란에게 요구해왔다. 주영란은 그녀가 카드 정지 해제를 도와주려는 줄 알고 별 의심 없이 은행 직원에게 주민등록증을 건넸다.
  • 미러 퍼플 카드와 주영란의 신분을 대조해 본 은행 직원은 그 자리에서 즉시 경비원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