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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복수

  • 박 씨 가문에서 쫓겨난 박기환은 딸 박미주 집에 잠깐 얹혀살기로 했다.
  • “아빠, 천하랑 같이 먼저 짐을 옮기고 계세요. 저 먼저 집에 가서 방을 좀 치우고 있을게요.”
  • 박미주는 서재에서 잠을 자는 진천하를 보고 부모님이 의심할까 걱정돼 방을 치우겠다는 이유로 먼저 집으로 돌아가서 그의 짐을 제 방으로 옮기기로 생각했다.
  • “그래. 몸조심하면서 가.”
  • 그렇게 서로 흩어지고 반 시간이 지난 시점에 진천하가 짐을 차에 싣고 있던 그때, 박기환은 주영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 “뭐라고? 은행에서 매를 맞았어? 당신 지금 어느 은행이야? 우리 지금 당장 갈게.”
  • 전화 너머에서 주영란의 훌쩍이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란 박기환은 얼른 진천하와 함께 은행으로 향했다.
  • 은행에 도착한 뒤 진천하는 은행 팀장의 사무실을 발로 뻥하고 세차게 걷어찼다. 그러자 육중한 문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 “당신들 누구야?”
  • 은행 팀장과 경비원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중 먼저 정신을 차린 은행 팀장이 갑자기 쳐들어온 두 사람을 향해 큰소리로 호통쳤다.
  • 문이 부서지면서 낸 굉음에 홀에 있던 손님들과 은행 직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일제히 같은 쪽을 향했다. 그들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사무실 주위에 천천히 몰려들었다.
  • 진천하와 박기환은 은행 팀장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주영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것을 본 두 사람은 분노를 터트렸다.
  • “장모님, 어떤 새끼가 장모님을 이렇게 만들어놨어요?”
  • 진천하는 고개를 돌려 어둠이 드리운 얼굴로 은행 팀장과 경비원을 쳐다봤다.
  • “저리 비켜. 누가 네 장모님이야! 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길래 은행 사람들이 네 카드를 보자마자 날 이리로 끌고 와서 혹독하게 고문하는 거야?”
  • 주영란은 진천하의 얼굴을 향해 삿대질을 날리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의 말을 듣고도 어리둥절한 진천하와 박기환은 다시 고개를 돌려 은행 팀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두 사람이 뭐라고 묻기도 전에 은행 팀장이 먼저 알아서 시비를 걸어왔다.
  • “네가 바로 미러 퍼플 카드를 훔치고 이 사람한테 현금을 인출해오라 시킨 정신 나간 새끼야? 경비원, 저 사람을 잡아다가 당장 경찰서로 끌고 가.”
  • 주영란의 말을 통해 눈앞의 젊은 남성이 바로 카드를 훔친 도둑임을 확인한 은행 팀장이 경비원에게 진천하를 잡으라고 지시했다.
  • 미간을 찌푸린 진천하는 손을 뻗어 경비원을 구석자리에 밀어 넣고는 은행 팀장의 앞으로 걸어갔다.
  • “그거 제 카드인데, 훔치긴 뭘 훔쳤다는 겁니까?”
  • 진천하는 침착을 잃지 않으며 은행 팀장에게 되물었다.
  • “흥.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우기기는. 너 이 미러 퍼플 카드가 어떤 카드인지 알아? 이 카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발행한 한정 카드로 메인이랑 서브로 나뉘는데, 서브 카드만 해도 최저한도가 자그마치 2천억이야, 2천억. 그리고 메인 카드는 한도가 아예 없어. 전 세계에 딱 99장만 있는 이 미러 퍼플 카드는 거의 대부분을 각 나라의 왕실들이 갖고 있지.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이 카드가 바로 그 미러 퍼플 카드의 서브 카드인데 안에 지금 잔액이 무려 1억 달러가 들어있어. 자, 그럼 이제 질문한다. 넌 어느 나라의 왕자이지?”
  • 은행 팀장은 냉소와 함께 미러 퍼플 카드의 이력에 대해 쭈욱 설명하더니 마지막에는 카드로 진천하의 뺨까지 찰싹 때렸다.
  • “헉!”
  • 은행 직원은 물론이고 미러 퍼플 카드에 대한 정보를 들은 다른 손님들도 모두 헛숨을 들이켰다. 그중에서도 특히 박기환과 주영란이 절망적인 눈빛을 했다.
  • 주영란은 그제야 왜 은행에서 이토록 난리를 피웠는지 이해했다. 이 미러 퍼플 카드의 주인은 보통 신분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진천하가 어디에서 이 카드를 훔쳐 왔는지 몰랐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 딸인 박미주가 저 범죄자랑 혼인신고를 이미 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주영란은 딸마저 이번 일에 연루될까 걱정되었다.
  • “안되겠어요, 여보. 집에 가자마자 미주한테 저 범죄자랑 당장 이혼해라고 해야겠어요. 아기도 무조건 지워버리고. 아니면 저놈 때문에 미주 인생이 완전히 망가질 것 같아요.”
  • 주영란은 얼굴의 고통을 간신히 참으며 박기환에게 작게 말했다. 박기환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전 그 어떤 나라의 왕자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미러 퍼플 카드가 제 것이 아니라는 반증도 없죠. 정 못 믿겠으면 제가 말한 게 진짜인지, 아닌지 가서 컴퓨터로 찾아보면 될 거 아닙니까. 비밀번호는 xxxxxx, 지금 당장 확인해 보세요.”
  • 진천하는 주민등록증과 함께 미러 퍼플 메인카드도 지갑에서 꺼내 은행 팀장의 면전에 대고 던졌다.
  • “아직도 입만 살…”
  • 땅에 떨어진 주민등록증과 또 다른 미러 퍼플 카드를 본 은행 팀장은 계속 호통치려던 것을 멈추고 입을 닫아버렸다. 당당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서있는 진천하를 보며 은행 팀장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불길한 생각이 드는 걸 느꼈다.
  • 카드와 주민등록증을 주운 은행 팀장은 제자리로 돌아와 은행 시스템에 등록하여 미러 퍼플의 자료와 제 손에 들린 주민등록증 번호를 대조해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3분쯤 지났을까, 은행 팀장은 갑자기 의자 위에서 놀라 떨어졌다.
  • “용… 용서해 주세요, 진천하 님. 제가 감히 이 카드가 진천하 님 카드인 줄 모르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정말 죽을죄를 지었어요.”
  • 은행 팀장은 헐레벌떡 진천하의 앞으로 달려가 털썩하고 바닥에 무릎 꿇고 앉은 뒤 고개를 바닥에 조아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젊은 청년이 어찌하여 이 어린 나이에 난다 긴다 하는 재벌들도 신청할 자격 없는 미러 퍼플 카드를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 난데없이 벌어진 장면에 주위에 몰려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문짝이 떨어져 나간 문가에서 구경하고 있던 은행 직원들 또한 하나같이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 번듯한 은행의 한 팀장이 개처럼 한 청년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면서 비는 모습이란 실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 박기환과 주영란 또한 갑자기 벌어진 장면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저 미러 퍼플 카드가 정말 진천하 것이었다니. 그는 허풍을 친 것이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했던 것이었다. 허나 두 사람에게는 아직 의문이 남아있었다. 만약 진천하에게 돈이 그렇게 많았다면 왜 고작 6천만 원의 예물 비용을 내지 못해 서 씨 가문에서 쫓겨나게 된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박기환과 주영란은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졌다.
  • “이제 제 카드인 게 확인되었으니 다른 걸 한번 따져봅시다. 누가 제 장모님을 저렇게 때려놨죠?”
  • 진천하는 은행 팀장과 경비원을 훑어보았다.
  • “저, 저기 사장님. 전… 전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 진천하의 신분이 확인된 것도 다 보고, 또 바닥에 무릎을 꿇은 은행 팀장도 한번 쳐다본 경비원은 구석에서 걸어 나와 털썩하고 무릎을 꿇어버렸다.
  •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제 장모님한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가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랬든, 제 의지로 그랬든 잘못된 행동을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죠. 아까 어떤 손으로 때렸죠? 그 손 잘라냅시다. 그리고 은행 팀장님은 혀를 자르면 되겠네요.”
  • 말을 마친 뒤 진천하는 아직까지도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는 박기환과 주영란을 모시고 사무실을 떠났다. 세 사람이 문밖으로 사라지자마자 사람들 무리 속에서 손에 칼을 든 청룡이 불쑥 튀어나왔다.
  • “허억…”
  • “꺄악! 경비원 손바닥이 잘렸어.”
  • “은행 팀장님 혀도 잘렸어! 무서워.”
  • 진천하와 박기환, 그리고 주영란이 은행을 막 나서려던 그때 그들의 뒤에서 구경꾼들과 은행 직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비위가 약한 몇몇은 은행에서 뛰어나와 바닥에 대고 연신 토악질을 해댔다.
  • 등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박기환과 주영란은 몸을 흠칫 떨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진천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 “장모님, 장모님께 감히 폭력을 휘두른 자들입니다. 목숨을 살려둔 것만 해도 많이 봐준 거예요.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 미주가 집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