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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커져버린 오해

  • “지금 누구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야. 네 일은 우리가 이미 다 알아냈다니까. 너한테 정말 1억 달러가 있으면 어떻게 6천만 원의 예물 비용을 내놓지 못해서 서 씨 가문에서 빈털터리로 쫓겨날 수 있는 거지?”
  • 주영란은 눈을 부릅뜨고 진천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 “최고 부자들만 신청할 수 있다는 블랙카드는 들어봤어도 이 미러 퍼플카드는 뭐야, 카드 사기꾼들한테 속은 거 아니야?”
  • 박 씨 가문은 오늘 오전 사람을 시켜 진천하의 일에 대해 확실하게 조사했다.
  • 박미주는 평소에 아주 똑똑한 아이였는데 어떻게 이번에 이렇게 멍청한 일을 벌인 것일까?
  • 만약 이 씨 가문의 바람둥이 이준혁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멀끔하고 정상적인 방패를 찾아야지 이렇게 빈털터리로 쫓겨나고 게다가 지능까지 부족한 바보를 찾았으니 이건 정말 남이 들으면 웃을 일이었다.
  • “블랙카드는 일반 부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이 미러 퍼플카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한정적으로 발행한 절판 본이에요. 전 세계에 딱 99장 밖에 없고 기본적으로 각국 왕실의 손에 들어가 있어 신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죠. 이 카드는 돈이 있다고 해서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 박미주의 부모님이 미러 퍼플카드에 대해 무지한 모습을 보이자 진천하는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으나 돌아온 것은 그들의 경멸이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각 나라 왕족들이 다 가지고 있고 신분의 상징이라면 네가 대체 어느 나라 왕자인지 한번 지껄여봐.”
  • 박기환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졌고 진천하가 그 담배꽁초인 양 발에 힘을 주어 밟았다.
  • “아버님, 전 왕실 사람이 아니라 예외예요. 그냥 제가 증명해 보여드리죠.”
  • 진천하는 청룡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20억의 현금을 인출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으나 이때 물건을 사러 나갔던 박미주가 마침 돌아왔다.
  • “연락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 박미주는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부모님이 와 있는 것을 보았고 게다가 두 사람이 진천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어서 달려가 분위기를 풀어주려 했다.
  • “네가 어떤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는지 한번 봐라. 이래서 우리가 안 올수 있겠어?”
  • 박기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주영란은 화난 표정으로 박미주에게 말했다.
  • “엄마, 저 진천하랑 만나는 거 진심이에요. 그리고 저에게도 잘해주는 성실한 사람이니까 밖에서 떠들어대는 쓸데없는 말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 박미주는 부모님들에게 둘러대기 위해 스스로도 낯이 붉어지는 얘기를 했다.
  • 그녀는 어젯밤 이준혁이 전화를 걸어 자신의 부모님을 협박할 것이라 예측하고 두 사람이 진천하에 대해 조사를 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 박기환과 주영란은 입만 열면 허풍을 치는 무능한 놈을 감싸는 박미주를 지켜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주영란은 곧바로 박미주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 “이 계집애야, 너 혹시 저 자식 아이라도 임신한 거야?”
  • 주영란은 박미주에게 낯부끄러운 질문을 했다.
  • “엄마,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 박미주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으며 애매한 대답을 내뱉었다.
  • 말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주영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 몸을 돌렸다. 아직 처녀인 박미주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엄마와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되니 부끄러웠다.
  • 늘 솔직하기만 하던 박미주가 이런 애매한 말로 자신에게 대답하는 것을 들은 주영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주영란은 어쩐지 진천하가 그들이 제시한 1억 원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했다. 알고 보니 박미주는 정말 서 씨 가문에서 말한 것처럼 벌써 이 가난한 녀석과 사이가 가까워져 아이까지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렇다면 박미주가 왜 부잣집 사모님의 자리도 마다하고 심지어 가문의 안위마저 생각하지 않은 채 진천하와 먼저 혼인 신고부터 하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가 갔다.
  • “제대로 혼날 짓을 했네!”
  • 주영란은 한숨을 쉬며 방을 나갔다.
  • “이 자식아, 너 우리 미주 눈에서 눈물이라도 흘리게 하면 우리 두 사람이 목숨 걸고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여보, 우린 이만 가요.”
  • 물은 이미 엎질러졌기에 주영란은 더 이상 진천하와 박미주가 만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기로 했고 거실로 나와 진천하에게 호되게 경고한 후 영문도 모르는 박기환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 주영란의 말에 진천하는 그녀가 두 사람의 교제를 동의한다는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 방에 있던 박미주는 그저 주영란이 그녀에게 또다시 낯부끄러운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을 하느라 주영란이 떠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그녀가 질문에 대한 대답에 대해 생각을 마치고 나왔을 때 주영란은 이미 떠난 뒤였다.
  • “우리 엄마 아빠는?”
  • 거실로 나가니 진천하 한 사람만 보일 뿐 누구도 없어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 “가셨어. 방에서 어머님한테 뭐라고 했길래 이렇게 효과가 좋은 거야? 어머님이 나오셔서 나한테 경고하고는 카드도 여기 둔 채 바로 아버님 데리고 나가셨어.”
  • 진천하는 박미주가 무슨 방법을 썼길래 3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신속하게 주영란을 설득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 “큰일 났다! 설마 내 말을 잘못 이해하신 건 아니겠지?”
  • 박미주는 무언가 알아챈 듯 큰소리를 지르며 책상 위의 카드 석 장을 집어 들고 쫓아나갔다.
  • “저기…”
  • 진천하는 박미주가 그의 미러 퍼플카드까지 함께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입을 열고 말을 하려 했으나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 그 카드는 그저 그의 명의로 된 1억 달러가 들어있는 또 다른 카드였고 박기환과 주영란이 힘들게 박미주를 키웠으니 자신이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 아파트 단지 아래.
  • 주영란은 아무 말 없이 박기환을 끌고 아파트 단지 대문을 나섰다.
  • “여보,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 자식하고 만나는 걸 허락하는 거야?”
  • 박기환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주영란에게 물었다.
  • “그럼 딸이 임신했다는데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요?”
  • 주영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 “뭐라고, 이 계집애가 감히 집안 망신을 시켜, 당장 때려죽여야지.”
  • 박기환은 자신의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젠 이 씨 가문과 인연을 맺을 희망조차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씨 가문은 명망 높은 가문이라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 “거기 서요, 미주가 그렇게 충동적인 건 다 당신의 저급적인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에요. 애초에 제가 독하게 굴었더라면 지금처럼 힘들게 살지 않았을 거라고요!”
  • 주영란은 박기환이 돌아가서 박미주를 혼내려고 하는 것을 보고 서슬 퍼런 얼굴로 욕을 퍼부었다.
  • 처음에 그녀는 박기환의 아이를 가지는 바람에 그와 결혼을 했지만 지금은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
  • “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일단 돌아가서 얘기해!”
  • 박기환은 욕을 먹고 창피한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곧이어 주영란을 차에 태운 후 재빨리 차를 몰고 박미주의 전셋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를 떠났다. 박미주가 아래로 내려갔을 때 두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 박미주는 곧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몰고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