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구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야. 네 일은 우리가 이미 다 알아냈다니까. 너한테 정말 1억 달러가 있으면 어떻게 6천만 원의 예물 비용을 내놓지 못해서 서 씨 가문에서 빈털터리로 쫓겨날 수 있는 거지?”
주영란은 눈을 부릅뜨고 진천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최고 부자들만 신청할 수 있다는 블랙카드는 들어봤어도 이 미러 퍼플카드는 뭐야, 카드 사기꾼들한테 속은 거 아니야?”
박 씨 가문은 오늘 오전 사람을 시켜 진천하의 일에 대해 확실하게 조사했다.
박미주는 평소에 아주 똑똑한 아이였는데 어떻게 이번에 이렇게 멍청한 일을 벌인 것일까?
만약 이 씨 가문의 바람둥이 이준혁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멀끔하고 정상적인 방패를 찾아야지 이렇게 빈털터리로 쫓겨나고 게다가 지능까지 부족한 바보를 찾았으니 이건 정말 남이 들으면 웃을 일이었다.
“블랙카드는 일반 부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이 미러 퍼플카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한정적으로 발행한 절판 본이에요. 전 세계에 딱 99장 밖에 없고 기본적으로 각국 왕실의 손에 들어가 있어 신분의 상징이라 할 수 있죠. 이 카드는 돈이 있다고 해서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박미주의 부모님이 미러 퍼플카드에 대해 무지한 모습을 보이자 진천하는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으나 돌아온 것은 그들의 경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각 나라 왕족들이 다 가지고 있고 신분의 상징이라면 네가 대체 어느 나라 왕자인지 한번 지껄여봐.”
박기환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졌고 진천하가 그 담배꽁초인 양 발에 힘을 주어 밟았다.
“아버님, 전 왕실 사람이 아니라 예외예요. 그냥 제가 증명해 보여드리죠.”
진천하는 청룡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20억의 현금을 인출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으나 이때 물건을 사러 나갔던 박미주가 마침 돌아왔다.
“연락도 없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박미주는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부모님이 와 있는 것을 보았고 게다가 두 사람이 진천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어서 달려가 분위기를 풀어주려 했다.
“네가 어떤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는지 한번 봐라. 이래서 우리가 안 올수 있겠어?”
박기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주영란은 화난 표정으로 박미주에게 말했다.
“엄마, 저 진천하랑 만나는 거 진심이에요. 그리고 저에게도 잘해주는 성실한 사람이니까 밖에서 떠들어대는 쓸데없는 말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박미주는 부모님들에게 둘러대기 위해 스스로도 낯이 붉어지는 얘기를 했다.
그녀는 어젯밤 이준혁이 전화를 걸어 자신의 부모님을 협박할 것이라 예측하고 두 사람이 진천하에 대해 조사를 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박기환과 주영란은 입만 열면 허풍을 치는 무능한 놈을 감싸는 박미주를 지켜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주영란은 곧바로 박미주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 계집애야, 너 혹시 저 자식 아이라도 임신한 거야?”
주영란은 박미주에게 낯부끄러운 질문을 했다.
“엄마,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박미주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으며 애매한 대답을 내뱉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주영란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어 몸을 돌렸다. 아직 처녀인 박미주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엄마와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되니 부끄러웠다.
늘 솔직하기만 하던 박미주가 이런 애매한 말로 자신에게 대답하는 것을 들은 주영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영란은 어쩐지 진천하가 그들이 제시한 1억 원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했다. 알고 보니 박미주는 정말 서 씨 가문에서 말한 것처럼 벌써 이 가난한 녀석과 사이가 가까워져 아이까지 가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박미주가 왜 부잣집 사모님의 자리도 마다하고 심지어 가문의 안위마저 생각하지 않은 채 진천하와 먼저 혼인 신고부터 하게 되었는지 쉽게 이해가 갔다.
“제대로 혼날 짓을 했네!”
주영란은 한숨을 쉬며 방을 나갔다.
“이 자식아, 너 우리 미주 눈에서 눈물이라도 흘리게 하면 우리 두 사람이 목숨 걸고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여보, 우린 이만 가요.”
물은 이미 엎질러졌기에 주영란은 더 이상 진천하와 박미주가 만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기로 했고 거실로 나와 진천하에게 호되게 경고한 후 영문도 모르는 박기환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주영란의 말에 진천하는 그녀가 두 사람의 교제를 동의한다는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방에 있던 박미주는 그저 주영란이 그녀에게 또다시 낯부끄러운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을 하느라 주영란이 떠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질문에 대한 대답에 대해 생각을 마치고 나왔을 때 주영란은 이미 떠난 뒤였다.
“우리 엄마 아빠는?”
거실로 나가니 진천하 한 사람만 보일 뿐 누구도 없어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가셨어. 방에서 어머님한테 뭐라고 했길래 이렇게 효과가 좋은 거야? 어머님이 나오셔서 나한테 경고하고는 카드도 여기 둔 채 바로 아버님 데리고 나가셨어.”
진천하는 박미주가 무슨 방법을 썼길래 3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신속하게 주영란을 설득했는지 매우 궁금했다.
“큰일 났다! 설마 내 말을 잘못 이해하신 건 아니겠지?”
박미주는 무언가 알아챈 듯 큰소리를 지르며 책상 위의 카드 석 장을 집어 들고 쫓아나갔다.
“저기…”
진천하는 박미주가 그의 미러 퍼플카드까지 함께 가져가는 것을 보고 입을 열고 말을 하려 했으나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그 카드는 그저 그의 명의로 된 1억 달러가 들어있는 또 다른 카드였고 박기환과 주영란이 힘들게 박미주를 키웠으니 자신이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파트 단지 아래.
주영란은 아무 말 없이 박기환을 끌고 아파트 단지 대문을 나섰다.
“여보,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 자식하고 만나는 걸 허락하는 거야?”
박기환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주영란에게 물었다.
“그럼 딸이 임신했다는데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요?”
주영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뭐라고, 이 계집애가 감히 집안 망신을 시켜, 당장 때려죽여야지.”
박기환은 자신의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젠 이 씨 가문과 인연을 맺을 희망조차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씨 가문은 명망 높은 가문이라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거기 서요, 미주가 그렇게 충동적인 건 다 당신의 저급적인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에요. 애초에 제가 독하게 굴었더라면 지금처럼 힘들게 살지 않았을 거라고요!”
주영란은 박기환이 돌아가서 박미주를 혼내려고 하는 것을 보고 서슬 퍼런 얼굴로 욕을 퍼부었다.
처음에 그녀는 박기환의 아이를 가지는 바람에 그와 결혼을 했지만 지금은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
“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일단 돌아가서 얘기해!”
박기환은 욕을 먹고 창피한지 고개를 숙이며 말했고 곧이어 주영란을 차에 태운 후 재빨리 차를 몰고 박미주의 전셋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를 떠났다. 박미주가 아래로 내려갔을 때 두 사람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