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나든 말든 소지유는 상관하지 않았으나 황후 마마의 이 한 마디 평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몸의 주인이 그녀에게 준 기억으로 보면 눈앞의 이 세계에서 세론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지금 황후가 밖에 내놓기 부끄러운 여식이라는 말을 했으니 그녀는 앞으로 영원히 내놓기 부끄러운 천하고 덜돼 먹은 여자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어딜 가든 사람들은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여자는 밖에 내놓기 부끄러운 천한 여자라지?”
사람들은 그녀와 교제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혼인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비록 소지유는 세론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으나 이 사람들이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 몸의 주인이 어떻게 물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했는지 그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으나 그녀가 어떻게 궐에 들어왔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히 소지연이 몸의 주인에게 둘째 대군과 만남을 약조하였다고 하여 속여진 채 궁으로 들어온 것이다.
지금 보아하니 둘째 대군과 만남이 아니라 저승사자와의 만남인 것이 틀림없다.
금위군이 이미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자 소지유는 뭔가가 떠올라 얼른 입을 열었다.
“황후 마마께서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소녀의 옷매무새가 단정치 못하여 황후 마마께 못 볼 꼴을 보였사옵니다. 하지만 소녀도 어쩔 수 없었사옵니다. 소녀의 어머니께서 남겨준 유일한 유물을 부주의로 연지에 떨어트렸나이다. 이는 어머니와 소녀의 마지막 연결고리이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소녀가 유물을 찾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물건만 되찾으면 소녀는 바로 떠나겠나이다.”
황후는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가 이 꼴이 된 이유가 물속에 들어가 어머니의 유물을 찾으려 했기 때문인 게냐?”
소지유가 흐느끼며 말했다.
“황후 마마님께 아뢰옵니다. 그리하옵니다.”
“하지만 그 물건이 어찌 연지에 떨어진 게냐?”
황후가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소지유는 속으로 생각했다. 절대 그녀가 물속에 던져졌다고 말하면 안 된다. 후궁에서 모살을 꾸미는 것은 매우 큰 죄였다. 그녀는 증거도 기억도 없으니 한 마디로 소란을 끌어내면 문제는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반드시 큰일을 작은 일로 만들어야 했다. 작은 일로 만들어 눈앞의 위기부터 모면하고 볼 일이다.
소지유는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황후 마마께 아뢰옵니다. 소녀는 확실히 언니를 따라 몰래 궁에 들어왔사옵니다. 어화원에서 순찰을 돌고 있는 호위를 보고 순간 놀라 발을 헛디뎠사옵니다. 유물은 소녀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것이라 급한 와중에 품에서 떨어져 연지에 떨어졌사옵니다. 소녀의 잘못이니 변명하지 않겠나이다. 다만 황후 마마께서 자비를 베풀어 소녀가 어머니의 유물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옵소서.”
소지유가 자신을 위해 애써 변명하지 않자 황후는 오히려 그녀가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비록 이 소씨네 셋째 아씨가 떠도는 소문이 좋지 못하나 궐내에서 젖은 몸으로 남자를 유혹할 지경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니 십중팔구는 남의 모략에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황후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후궁에서 지낸 지 어언 몇 년이다. 이 정도의 수작과 모략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았다. 그녀는 소지유를 동정하진 않았지만 조금 전처럼 짜증 나지도 않았다.
황후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지자 소지연이 다급하게 말했다.
“셋째야, 잘못하면 그만이지 어찌 헛소리까지 하는 게냐. 마마께 거짓을 고한 죄는 소씨 가문 전체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것을 모르는 게야? 난 왜 작은어머니께서 너에게 유물을 주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지?”
소지유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저보다 한 살이 더 많지만 십육 년간 부생 각에 한 걸음이라도 내디딘 적 있었사옵니까? 어머니께서 저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는 둘째 치고 어머니께서 어떤 모습인지조차 언니는 알아보지 못할 것 같네요.”
소지연은 이 말을 듣자 대뜸 화를 내며 말했다.
“작은 어머니일 뿐이다. 본디 노비 출신인데 아씨인 내가 하루가 멀다고 인사라도 해야 한단 말이냐?”